'우리는 한 가족'이라는 말,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그 말 한마디로 두 사람 사이가 정말 가까워질까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떠오릅니다. 가난한 기택네 식구는 부잣집 박 사장 집에 하나둘 들어가 한 지붕 아래 살게 되지만, 끝까지 두 가족은 섞이지 못합니다. 아무리 가까이 붙어 있어도 좁혀지지 않는 거리가 있었거든요. 영화에서 박 사장은 그 거리를 '냄새'라고 부릅니다.
두 가족은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부잣집은 일손이 필요하고, 가난한 식구는 일자리가 필요하죠. 그런데 막상 위기가 닥치자 둘은 '한 가족'은커녕 위와 아래로 쩍 갈라집니다. 가까이 산다고 해서 같은 편이 되는 건 아니었던 겁니다.
그런데 2026년 5월, 한국의 한 대기업에서도 '한 몸·한 가족'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5월 27일 삼성전자 노사가 올해 임금협약을 최종 타결했거든요. 총파업 직전까지 갔던 노사가 마지막에 손을 맞잡았고, 조합원 투표에서는 73.7%가 찬성했습니다.
타결 직후 삼성전자 사장단은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앞으로 5년간 5조원을 풀겠다고 약속했거든요. 돈이 가는 곳은 위가 아니라 아래입니다. 2·3차 중소 협력사, 산업재해를 입은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 그리고 AI 인재를 키우는 청소년 교육. 사장단은 '우리는 한 몸·한 가족'이라는 말을 협력사와 사회를 향해 건넸습니다.

Parasite (2019), 봉준호 감독. 부잣집 가족과 가난한 가족이 한집에 얽히지만 끝내 좁혀지지 않는 거리를 그린 블랙코미디 드라마의 한 장면. ⓒ NEON / CJ ENM
다시 기생충으로 돌아가 볼까요. 영화가 묻는 건 마음 따뜻한 말이 아니라, 그 말이 실제로 무엇을 바꾸느냐입니다. 박 사장네도 기택네에게 모질게 군 적은 없습니다. 다만 둘 사이를 진짜로 좁히려 한 적도 없었죠. '한 가족'이라는 말이 말로만 남으면, 위기가 닥치는 순간 사람들은 다시 위아래로 갈라섭니다. 그래서 5조원이라는 액수보다 중요한 건, 그 돈이 정말 2·3차 협력사와 골목의 자영업자에게까지 가닿느냐입니다.
사실 '낙수'라는 말은 오래된 약속입니다. 위가 잘되면 아래로 흘러내린다는 거죠. 그런데 기생충이 그린 집에서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되, 폭우가 쏟아지면 가장 낮은 반지하부터 잠깁니다. 좋은 것은 천천히 내려오고 나쁜 것은 먼저 들이친다면, 흘러내린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하겠죠. 5조원이 어느 속도로, 어디까지 닿느냐를 따져 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서울 광장시장. 거대 기업의 상생 약속이 가닿아야 할 자리, 곧 협력사와 영세 자영업자라는 '아래'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기사 속 특정 장소는 아닙니다. ⓒ Wikimedia Commons (CC0)
오해는 마시길 바랍니다. 이 글은 특정 기업을 흠잡으려는 게 아닙니다. 삼성의 5조원 약속은 오히려 그 거리를 좁히려는 분명한 노력이죠. 기생충은 한 회사 이야기가 아니라, 큰 원청과 그 아래 수많은 하청·영세 사이의 모든 관계에 던지는 질문입니다. 그리고 그 약속이 진심이었는지는 발표가 아니라 시간이 말해 줍니다.
5월 다섯째 주에 기생충을 다시 꺼내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한 몸·한 가족'이라는 말은 분명 따뜻합니다. 다만 그 말이 진짜가 되려면, 위에서 푼 돈이 가장 아래에 있는 작업대와 시장 좌판까지 내려가야 합니다. 영화가 보여준 건, 끝내 가닿지 못한 호의가 얼마나 차갑게 식는가였으니까요. 5조원이 그 거리를 넘는 약속이 될지는 이제부터 지켜볼 일입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위기가 오면 위아래로 갈립니다. 따뜻한 말이 실제 구조를 바꾸는지가 진짜 관건이죠.
중요한 건 액수가 아니라, 2·3차 협력사와 영세 자영업자라는 맨 아래까지 그 돈이 가닿느냐입니다.
상생 약속은 한 번의 발표가 아니라 5년간 어떻게 지켜지느냐로 판가름 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