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5월 14일, 데이비드 벤구리온이 텔아비브 박물관에서 이스라엘의 독립을 선언했다. 유엔의 팔레스타인 분할안이 통과된 지 6개월 만의 일이었다. 2천 년 만에 되찾은 약속의 땅이라는 유대인들의 환호 속에서, 70만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야 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대대로 살아온 땅에서 난민이 되었다. 나크바, 아랍어로 '대재앙'이라 불리는 이 사건은 중동 분쟁의 원점이 되었다. 한 민족의 귀환이 다른 민족의 추방을 의미했던 역사의 아이러니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스라엘 건국과 팔레스타인.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이스라엘 건국은 단순한 영토 분할이 아니었다. 그것은 서로 다른 역사적 기억이 충돌하는 현장이었다. 유대인들에게 팔레스타인은 2천 년의 디아스포라 끝에 돌아온 약속의 땅이었다. 홀로코스트의 상처를 안고 온 그들에게 이스라엘은 생존의 문제였다. 반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그곳은 수백 년간 올리브나무를 가꾸며 살아온 삶의 터전이었다. 영국의 이중적인 약속, 시온주의 운동, 아랍 민족주의가 얽히면서 한 땅을 둘러싼 두 민족의 권리 주장은 해결 불가능한 난제가 되었다. 정의와 정의가 맞부딪치는 비극의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에란 리클리스 감독의 Lemon Tree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한 여성의 레몬나무를 통해 조명한다. 팔레스타인 미망인 살마는 서안지구에서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레몬 과수원을 가꾸며 살아간다. 그런데 이스라엘 국방장관이 바로 옆집으로 이사 오면서 그녀의 나무들이 '안보 위협'으로 규정된다. 살마는 자신의 나무를 지키기 위해 이스라엘 대법원까지 가는 긴 법적 투쟁을 시작한다. 히암 아바스가 연기한 살마의 고요하지만 단호한 저항은, 거대한 국가 권력 앞에 선 개인의 존엄을 보여준다. 영화는 정치적 메시지보다 인간의 얼굴에 집중하며, 분쟁의 일상적 폭력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Lemon Tree (2008), 에란 리클리스 감독. ⓒ Production Company
레몬나무는 단순한 과수가 아니라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뿌리 그 자체다. 영화 속에서 나무를 베어내라는 명령은 1948년 나크바의 축소판처럼 보인다. 한 민족의 안보가 다른 민족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구조, 법적 정당성으로 포장된 폭력, 일상에 침투한 점령의 논리가 반복된다. 살마가 지키려는 것은 경제적 가치가 있는 과수원이 아니라 아버지의 기억이고 자신의 정체성이다. 이스라엘 건국 과정에서 고향을 잃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처럼, 그녀 역시 자신의 뿌리를 지키기 위해 싸운다. 역사적 비극이 개인의 삶으로 체현되는 순간, 우리는 추상적 갈등 너머의 구체적 고통을 목격하게 된다.
이스라엘 건국으로부터 77년이 지난 지금도 중동의 비극은 계속되고 있다. 2023년 10월 이후 가자 지구에서 벌어진 참상은 이 갈등이 얼마나 깊은 증오의 나선 속에 갇혀 있는지를 보여준다. 안보와 생존권, 역사적 권리와 현실적 점유, 가해와 피해가 뒤엉킨 이 분쟁은 선악의 이분법으로 재단할 수 없는 복잡함을 띤다. Lemon Tree가 보여주듯, 갈등의 본질은 거대 담론이 아니라 일상의 차원에 있다. 검문소를 통과해야 하는 삶, 담장으로 분리된 이웃, 뿌리 뽑힌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상처는 세대를 거쳐 전승된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하지만 Lemon Tree는 패자의 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이스라엘 건국이라는 한 민족의 승리가 다른 민족에게는 나크바라는 재앙이었듯, 모든 역사적 사건은 복수의 얼굴을 가진다. 살마의 레몬나무처럼, 권력의 논리에 의해 베어진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안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 폭력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지켜야 할까. 한 그루의 나무를 둘러싼 투쟁이 역사의 거대한 비극을 비추는 거울이 될 때, 우리는 비로소 타자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4월 3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https://pltpjrfdfxxbnivrtoew.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films/lemon_tree_backdrop.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