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8월 15일 자정, 인도 대륙은 두 개의 국가로 갈라졌다. 영국령 인도의 마지막 총독 루이 마운트배튼은 뉴델리 총독 관저에서 권력 이양 문서에 서명했고, 동시에 수백만 명이 새로 그어진 국경선을 넘어 이동하기 시작했다. 펀자브와 벵골 지역은 종교를 기준으로 분할되었고, 힌두교도와 무슬림들은 각자의 '조국'을 찾아 길을 나섰다. 이 대이동 과정에서 10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고, 1,500만 명이 난민이 되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강제 이주였으며, 그 상처는 오늘날까지 남아시아를 관통하고 있다.
인도 파키스탄 분단.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분단의 씨앗은 영국의 '분할 통치' 정책에서 싹텄다. 1905년 벵골 분할 이후 종교적 정체성은 점차 정치적 무기가 되었고, 1940년대에 이르러 무슬림 연맹의 진나와 인도 국민회의의 네루 사이의 갈등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마운트배튼은 단 몇 주 만에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대륙을 나누는 선을 그었다. 시릴 래드클리프가 그은 이 경계선은 마을을 반으로 가르고, 가족을 찢어놓았으며, 공동체를 파괴했다. 영국은 서둘러 철수했고, 남겨진 사람들은 피와 눈물로 새로운 국가 정체성을 만들어가야 했다.
거린더 차다 감독의 Viceroy's House는 이 비극적 시기를 총독 관저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포착한다. 휴 보네빌이 연기한 마운트배튼과 길리언 앤더슨의 에드위나는 선의를 가졌지만 무력한 권력자로 그려진다. 영화는 위층의 영국인들과 아래층의 인도인 하인들의 대비를 통해 식민 지배의 위계를 드러낸다. 특히 흠 쿠레시와 마니쉬 다얄이 연기한 힌두교도와 무슬림 연인의 이야기는 분단이 개인의 삶에 미친 파괴적 영향을 생생히 보여준다. 차다 감독은 자신의 가족사를 바탕으로 거대한 역사를 친밀한 인간 드라마로 압축했다.
Viceroy's House (2017), 거린더 차다 감독. ⓒ Production Company
총독 관저라는 공간은 그 자체로 분단의 은유다. 위층과 아래층, 영국인과 인도인, 힌두교도와 무슬림의 구분은 곧 다가올 분열을 예고한다. 영화는 마운트배튼이 처음부터 분단이 결정된 상태에서 인도에 왔다는 관점을 제시하며, 개인의 선의가 구조적 폭력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를 보여준다. 래드클리프가 지도 위에 선을 긋는 장면과 연인들이 헤어지는 장면의 교차 편집은 추상적 결정이 구체적 삶을 파괴하는 과정을 시각화한다. 권력의 중심에서 내려진 결정이 주변부로 퍼져나가며 수백만 명의 운명을 바꾸는 과정은 오늘날에도 반복되는 정치적 폭력의 원형이다.
분단 이후 78년이 지난 지금도 인도와 파키스탄은 카슈미르를 둘러싸고 대치하고 있으며, 두 국가 모두 핵무기를 보유한 상태다. 종교적 민족주의는 양국에서 여전히 강력한 정치적 동원 수단이며, 분단의 기억은 세대를 거쳐 전승되고 있다. 방글라데시의 독립, 실론의 내전, 미얀마의 로힝야 위기까지, 남아시아의 많은 갈등은 식민 지배가 남긴 경계선과 정체성의 정치학에서 비롯되었다. 브렉시트로 다시 드러난 영국의 고립주의, 전 세계적으로 부상하는 배타적 민족주의는 분단의 논리가 여전히 우리 시대를 지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역사는 한 번 그어진 선을 지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가르쳐준다. Viceroy's House가 보여주듯, 권력자들의 회의실에서 내려진 결정은 평범한 사람들의 침실까지 침투하여 가장 친밀한 관계마저 파괴한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시하는 국경선들도 언젠가는 누군가의 결정으로 그어진 것이며,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찢어졌다. 분단은 단순히 지리적 경계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속에 심어진 타자화의 논리다. 우리는 여전히 선을 긋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 선이 만들어낸 상처를 치유할 방법은 정녕 없는 것일까?

![[6월 1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총독 관저라는 공간은 그 자체로 분단의 은유다](https://pltpjrfdfxxbnivrtoew.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films/viceroy_s_house_backdrop.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