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6월 1일, 네팔의 나라얀히티 왕궁에서 총성이 울렸다. 디펜드라 왕세자가 가족 만찬 도중 총기를 난사해 비렌드라 국왕과 아이슈와랴 왕비를 포함한 왕실 가족 9명이 목숨을 잃었다. 범인으로 지목된 왕세자 역시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살아남은 갸넨드라가 왕위를 계승했다. 히말라야의 작은 왕국에서 벌어진 이 참극은 240년 이어온 샤 왕조의 실질적 종말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공식 발표는 왕세자의 우발적 범행이라 했지만, 네팔 국민들은 왕위 계승을 둘러싼 음모론을 제기했고, 진실은 여전히 안개 속에 묻혀 있다.
네팔 왕실 학살 사건.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이 사건은 단순한 가족 비극을 넘어 네팔 현대사의 분수령이 되었다. 왕실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고, 2008년 왕정은 완전히 폐지되었다. 하지만 더 깊은 층위에서 이 사건은 전통과 근대의 충돌, 신성과 세속의 경계 붕괴를 상징했다. 힌두교 전통에서 왕은 비슈누 신의 화신으로 여겨졌지만, 총알은 그 신성함을 무참히 깨뜨렸다. 네팔인들에게 왕실 학살은 단지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 우주적 질서의 균열이었다. 신들이 떠난 자리에 무엇이 올 것인가. 이 질문 앞에서 2천8백만 네팔인은 망연자실했다.
스테파니 스프레이와 파초 벨레즈가 공동 연출한 Manakamana는 네팔의 마나카마나 사원으로 향하는 케이블카 안의 승객들을 11번의 왕복 여정으로 담아낸 실험적 다큐멘터리다. 카메라는 케이블카 안에 고정되어 있고, 각 여정은 하나의 롱테이크로 구성된다. 노부부, 젊은 여성들, 염소를 데리고 가는 농부, 아이스크림을 먹는 관광객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대화는 간헐적이고, 침묵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히말라야의 장엄한 풍경이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동안, 승객들은 각자의 소망을 품고 힌두교 여신을 향해 천천히 상승한다.
Manakamana (2013), 스테파니 스프레이 감독. ⓒ Production Company
왕실 학살과 이 영화는 일견 무관해 보이지만, 둘 다 네팔의 신성한 것과 세속적인 것의 경계를 탐구한다. 왕실 학살이 폭력적으로 그 경계를 파괴했다면, Manakamana는 그 경계가 여전히 유효한지를 조용히 관찰한다. 케이블카라는 근대적 기계를 타고 전통적 성지로 향하는 순례자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역설이다. 영화는 판단하지 않는다. 다만 보여줄 뿐이다.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셀카를 찍는 젊은이들과 염소를 희생 제물로 바치려는 농부가 같은 공간에 존재한다. 이것이 왕정 이후 네팔의 초상이다.
2001년의 비극으로부터 20여 년이 흘렀지만, 네팔은 여전히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다. 민주주의는 정착했지만 정치적 혼란은 계속되고, 경제 발전은 더디며, 젊은이들은 해외로 떠난다. 그럼에도 마나카마나 사원의 케이블카는 여전히 운행되고, 사람들은 여전히 기도한다. 전통은 사라지지 않았고, 다만 형태를 바꾸었을 뿐이다. 왕실이 사라진 자리에 무엇이 들어섰는가. 아마도 그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 신앙, 소박한 희망, 그리고 계속되는 삶일 것이다.
역사의 격변 속에서도 삶은 계속된다. Manakamana가 보여주는 것처럼, 사람들은 여전히 케이블카를 타고 산을 오르며 각자의 소원을 빈다. 왕이 신이었던 시대는 끝났지만, 신을 향한 인간의 갈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어쩌면 진정한 신성함은 왕궁의 황금 왕관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 순례 속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산을 오르는가. 신을 만나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우리 자신을 만나기 위해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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