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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4째주 · 2025
[12월 4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그들은 거짓된 이데올로기에 속아 현실을 보지 못한 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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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4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그들은 거짓된 이데올로기에 속아 현실을 보지 못한 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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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6월 25일,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가 독립을 선언하면서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의 해체가 시작되었다. 이날 류블랴나와 자그레브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지만, 베오그라드에서는 침묵이 흘렀다. 요시프 브로즈 티토가 1980년 사망한 후 억눌렸던 민족 간 갈등이 폭발하기 시작했고, 슬로보단 밀로셰비치가 이끄는 세르비아는 연방 유지를 위해 무력을 동원했다. 발칸반도는 다시 한번 '유럽의 화약고'가 되었고, 이후 10년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코소보에서 25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벌어진 최악의 참극이었다.

역사 사건

유고슬라비아 해체.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유고슬라비아의 해체는 단순한 영토 분할이 아니었다. 그것은 '형제애와 단결'이라는 구호 아래 억압되었던 역사적 트라우마의 분출이었다.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보스니아인, 알바니아인 등 각 민족은 서로 다른 역사적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다. 우스타샤의 학살, 체트니크의 보복, 파르티잔의 숙청 등 제2차 세계대전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은 채 봉인되어 있었다. 티토 체제는 이러한 기억을 금기시하며 통합을 강요했지만, 그의 죽음과 함께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경제 위기와 정치적 혼란 속에서 민족주의 정치인들은 과거의 원한을 부활시켜 권력의 도구로 삼았다.

에미르 쿠스투리차의 Underground는 유고슬라비아의 비극적 역사를 초현실적 서사시로 그려낸다. 1941년부터 1992년까지 반세기에 걸친 이야기는 마르코와 블라츠키라는 두 친구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나치 점령기에 파르티잔으로 활동하던 그들은 해방 후 다른 길을 걷는다. 마르코는 지상에서 권력자가 되고, 블라츠키와 동료들은 지하 벙커에서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는 거짓말에 속아 20년간 무기를 만든다. 쿠스투리차는 집시 음악과 카니발적 광기, 동물들의 등장으로 역사의 부조리를 희비극으로 승화시킨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3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웃음과 눈물, 환상과 현실을 뒤섞는다.

영화 스틸

Underground (1995), 에미르 쿠스투리차 감독. ⓒ Production Company

지하 벙커에 갇힌 사람들의 운명은 유고슬라비아 인민의 역사적 경험을 은유한다. 그들은 거짓된 이데올로기에 속아 현실을 보지 못한 채 살아간다. 마르코가 만든 가짜 뉴스릴을 보며 여전히 나치와 싸우고 있다고 믿는 그들의 모습은, 티토 체제 하에서 '형제애'라는 환상에 갇혀 있던 유고 인민을 연상시킨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지하 사람들이 지상으로 나왔을 때, 그들이 마주한 것은 또 다른 전쟁이었다. 1992년 보스니아 내전의 포화 속에서 그들은 혼란에 빠진다. 과거의 적이 누구였는지, 현재의 적이 누구인지 구분할 수 없는 상황은 유고 해체 과정의 비극적 아이러니를 압축한다.

유고슬라비아 해체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지금, 발칸반도는 표면적으로 평화를 되찾았다. 그러나 민족 간 불신의 골은 여전히 깊고, 역사 해석을 둘러싼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세르비아는 여전히 코소보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으며, 보스니아는 복잡한 권력 분점 체제 속에서 불안정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한편 전 세계적으로는 새로운 형태의 분열이 확산되고 있다. 브렉시트, 카탈루냐 독립 운동, 미국의 정치적 양극화 등은 통합의 이상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준다. 소셜미디어는 마르코가 만든 가짜 뉴스릴처럼 각자의 신념을 강화하는 정보만을 제공하며, 사람들은 자신만의 지하 벙커에 갇혀 살아간다.

쿠스투리차는 Underground의 마지막 장면에서 모든 등장인물들이 다시 만나 축제를 벌이는 환상을 보여준다. 죽은 자와 산 자, 가해자와 피해자가 함께 춤추는 이 초현실적 결말은 화해에 대한 갈망인 동시에 그 불가능성에 대한 인정이기도 하다. 유고슬라비아라는 '지하'에서 나온 사람들은 각자의 길을 찾았지만, 그들이 공유했던 기억과 상처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도 각자의 이념적, 문화적 지하 벙커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우리가 믿고 있는 현실은 얼마나 진실한가?

공식 예고편

Underground (1995) — 에미르 쿠스투리차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