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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째주 · 2026
[1월 2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코차밤바의 교훈은 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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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코차밤바의 교훈은 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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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4월, 볼리비아의 제3도시 코차밤바에서 물을 향한 절규가 터져 나왔다. 미국계 다국적 기업 벡텔이 수도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물값이 300퍼센트 이상 치솟자, 일일 임금 2달러로 살아가던 도시 빈민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오스카르 올리베라가 이끄는 '물과 생명수호연대'는 "물은 상품이 아니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도시를 봉쇄했다.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대를 투입했지만, 시민들의 저항은 멈추지 않았다. 넉 달간의 투쟁 끝에 정부는 백기를 들었고, 벡텔은 볼리비아에서 철수했다. 17세 소년 빅토르 우고 다사의 죽음으로 얻어낸 승리였다.

역사 사건

볼리비아 물 전쟁.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코차밤바 물 전쟁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었다. 세계은행의 압력으로 추진된 공공 서비스 민영화는 효율성 증대라는 명목 아래 기본권을 상품으로 전락시켰다. 물이라는 생존의 필수재가 시장 논리에 종속되는 순간, 가난한 이들은 목마름과 싸워야 했다. 이 투쟁은 단순히 물값 인상에 대한 저항을 넘어, 신자유주의 체제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원주민과 도시 빈민, 중산층이 하나로 뭉쳐 다국적 자본에 맞선 이 사건은 21세기 반세계화 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볼리비아는 2006년 에보 모랄레스 정권 수립으로 이어지는 좌파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이시아르 보야인 감독의 Even the Rain은 이 역사적 사건을 영화 속 영화라는 이중 구조로 담아낸다. 스페인 영화 제작진이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도착을 다룬 영화를 찍기 위해 코차밤바를 찾는다. 제작비를 아끼려 볼리비아를 선택한 그들은 뜻하지 않게 물 전쟁의 한복판에 서게 된다. 주인공 다니엘 역을 맡은 원주민 배우가 실제 시위의 지도자로 나서면서, 500년 전 식민지배와 현재의 신자유주의 착취가 겹쳐진다. 루이스 토사르와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의 섬세한 연기는 선의를 가진 지식인의 위선과 한계를 날카롭게 포착한다. 영화는 역사를 재현하려는 이들이 현실의 역사 앞에서 무력해지는 아이러니를 통해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영화 스틸

Even the Rain (2010), 이시아르 보야인 감독. ⓒ Production Company

콜럼버스의 침략과 벡텔의 수탈 사이에는 500년의 시차가 있지만, 그 본질은 놀랍도록 닮아 있다. 금을 찾아 대서양을 건넌 정복자들과 물을 상품화하려 태평양을 건넌 기업들은 모두 타자의 생존권을 자원으로 환원시켰다. 영화는 이 구조적 유사성을 시각화하면서도, 단순한 도식화를 경계한다. 과거를 재현하려는 영화 제작진 역시 현지인들을 저임금으로 고용하는 또 다른 착취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역사의 반복은 단지 권력자들의 탐욕 때문만이 아니라, 선의를 가진 이들의 무관심과 방관 속에서도 이루어진다는 통찰이 빛난다.

코차밤바의 승리로부터 26년이 흐른 지금, 물은 여전히 전 세계 곳곳에서 분쟁의 씨앗이 되고 있다. 기후 위기가 심화되면서 물 부족은 더 이상 제3세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선진국에서도 가뭄과 홍수가 일상화되고, 물의 상품화를 둘러싼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물을 인권으로 선언하는 국제적 움직임이 확산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물 시장을 개방하라는 압력도 거세다. 코차밤바의 교훈은 명확하다. 생명의 근원인 물 앞에서는 시장도, 이윤도, 효율도 부차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영화의 제목처럼 '비조차도' 상품이 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을 모으는 것조차 불법이 되는 지역이 늘어나고, 깨끗한 물은 부유층의 전유물이 되어간다. 그러나 코차밤바가 보여준 것처럼, 인간의 존엄을 위협하는 체제는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다. 500년 전 원주민들이 그랬듯, 오늘의 시민들도 저항의 깃발을 든다. 역사는 나선형으로 전진한다고 했던가. 우리는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행동해야 할까? 목마른 이들의 절규 앞에서 우리는 어떤 대답을 준비하고 있는가?

공식 예고편

Even the Rain (2010) — 이시아르 보야인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