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5년 4월 24일, 오스만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서 약 250명의 아르메니아 지식인들이 체포되었다. 이날은 후에 '붉은 일요일'로 불리게 될 아르메니아 대학살의 시작점이었다. 당시 내무장관 탈라트 파샤와 전쟁장관 엔베르 파샤가 주도한 이 체계적인 학살은 1923년까지 이어지며 약 150만 명의 아르메니아인이 목숨을 잃었다. 강제 이주 과정에서 수많은 이들이 시리아 사막에서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어갔고, 여성들은 성폭력의 대상이 되었으며, 아이들은 강제로 이슬람교로 개종당했다. 오스만 제국은 제1차 세계대전의 혼란 속에서 기독교 소수민족인 아르메니아인들을 '내부의 적'으로 규정하고 조직적으로 제거하려 했다.
터키 아르메니안 학살.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이 학살의 배경에는 19세기 후반부터 쇠퇴하던 오스만 제국의 불안정한 정치 상황이 있었다. '유럽의 병자'로 불리던 제국은 발칸 지역의 영토를 잃어가며 위기감을 느꼈고, 청년 튀르크당은 범튀르크주의를 내세우며 제국 내 비튀르크 민족들을 위협으로 간주했다. 특히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동부 지역의 아르메니아인들은 러시아의 잠재적 협력자로 의심받았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은 이미 존재하던 민족적, 종교적 긴장을 극단적 폭력으로 전환시켰다. 제국의 붕괴 위기 속에서 소수민족은 희생양이 되었고, 근대적 관료 체계는 대량 학살의 효율적 도구가 되었다. 이는 20세기 최초의 조직적 제노사이드로 기록되며, 이후 홀로코스트를 비롯한 여러 집단 학살의 불길한 전조가 되었다.
2016년 개봉한 테리 조지 감독의 The Promise는 바로 이 비극적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오스카 아이작이 연기한 미카엘은 의학을 공부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 콘스탄티노플로 온 아르메니아 청년이다. 그는 약혼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크리스천 베일이 연기한 미국인 기자 크리스의 연인 아나(샤를로트 르 봉)에게 끌린다. 삼각관계의 멜로드라마로 시작한 영화는 1915년 학살이 시작되면서 급격히 생존 투쟁의 서사로 전환된다. 미카엘은 가족을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크리스는 저널리스트로서 학살의 참상을 세계에 알리려 애쓴다. 영화는 개인의 사랑과 민족의 비극을 교차시키며, 역사의 거대한 폭력 앞에서 인간이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존엄과 연대를 그려낸다.
The Promise (2016), 테리 조지 감독. ⓒ Production Company
영화와 역사적 사건은 여러 층위에서 공명한다. 미카엘이 의사가 되겠다는 '약속'을 지키려 했듯이, 오스만 제국도 한때는 다양한 민족과 종교가 공존하는 체제를 '약속'했었다. 그러나 전쟁과 민족주의의 광기는 모든 약속을 배신으로 만들었다. 영화 속 크리스가 카메라로 학살을 기록하려 했던 것처럼, 당시 헨리 모겐소 미국 대사와 아르민 베그너 같은 독일 장교들은 실제로 이 참극을 사진과 문서로 남겼다. 영화가 보여주는 무사 다그 산의 저항은 실제 역사적 사건이며, 프란츠 베르펠의 소설로도 유명하다. 이처럼 The Promise는 역사의 거대 서사를 개인의 미시사로, 정치적 폭력을 인간적 비극으로 번역한다. 영화는 잊혀진 제노사이드를 21세기 관객에게 전달하는 매개체가 된다.
아르메니아 학살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논쟁적인 역사다. 터키 정부는 여전히 '제노사이드'라는 용어 사용을 거부하며, 많은 국가들은 외교적 이유로 이를 공식 인정하지 않고 있다. 2021년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이를 제노사이드로 공식 인정했을 때도 큰 파장이 있었다. 역사적 진실과 정치적 현실 사이의 긴장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시리아 내전, 로힝야 학살, 우크라이나 전쟁 등 21세기에도 민족과 종교를 이유로 한 집단 폭력이 반복되고 있다. 인류는 과거의 비극에서 무엇을 배웠는가? 국제사회의 '절대 다시는'이라는 약속은 왜 반복해서 깨지는가? 역사 부정과 망각은 새로운 폭력의 토양이 되고 있지 않은가?
영화의 마지막, 미카엘은 고아가 된 아르메니아 아이들과 함께 미국행 배에 오른다. 새로운 삶을 향한 여정이지만, 그들이 등진 고향은 영원히 사라졌다. 오늘날 전 세계에 흩어진 800만 아르메니아 디아스포라는 바로 그 역사의 산 증인들이다. The Promise라는 제목은 여러 의미를 품고 있다. 지켜지지 못한 약속, 배신당한 약속,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약속. 우리는 과거의 비극을 기억하고 증언하는 것이 미래를 향한 약속임을 안다. 그러나 기억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혐오와 배제의 언어가 다시 세계 곳곳에서 들려오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을 잃어가는 시대에, 영화라는 매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2월 3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영화와 역사적 사건은 여러 층위에서 공명한다](https://pltpjrfdfxxbnivrtoew.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films/the_promise_backdrop.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