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세상
세계와 스크린 사이
3월 3째주 · 2026
[3월 3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해적도, 선원도, 회사도 모두 거대한 시스템의 부품일 뿐이다
영화로 세상을 보다

[3월 3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해적도, 선원도, 회사도 모두 거대한 시스템의 부품일 뿐이다

기사 듣기

2008년 11월 15일, 케냐 몬바사 항구에서 330마일 떨어진 인도양. 사우디아라비아 국영회사 소유의 초대형 유조선 시리우스 스타호가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납치되었다. 길이 330미터, 200만 배럴의 원유를 실은 이 거대한 선박이 단 15분 만에 AK-47 소총과 로켓추진 유탄발사기로 무장한 해적 8명에게 장악된 것이다. 선원 25명은 인질이 되었고, 해적들은 2,500만 달러의 몸값을 요구했다. 이는 당시까지 소말리아 해적이 납치한 선박 중 최대 규모였으며, 전 세계 해운업계에 충격을 안겼다.

역사 사건

동아프리카 해적선.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동아프리카 해적의 역사는 1991년 소말리아 내전과 함께 시작되었다. 정부가 붕괴되자 외국 선박들이 소말리아 영해에서 불법 조업을 시작했고, 유독 폐기물을 투기했다. 생계를 잃은 어부들은 자경단을 조직해 외국 선박을 쫓아냈지만, 곧 이것이 수익성 높은 '사업'임을 깨달았다. 2000년대 들어 해적 행위는 조직화되었고, GPS와 위성전화로 무장한 이들은 아덴만을 지나는 연간 2만여 척의 선박을 위협했다. 국제사회는 해군을 파견했지만, 3,300킬로미터에 달하는 해안선을 모두 감시하기란 불가능했다.

덴마크 영화 A Hijacking은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화물선과 선원들의 103일을 그린다. 토비아스 린홀름 감독은 할리우드식 액션 대신 극도로 건조한 리얼리즘을 선택했다. 인도양 한가운데서 고립된 선원들과 코펜하겐 본사 회의실을 오가는 교차편집은 현장의 공포와 협상 테이블의 냉정함을 대비시킨다. 특히 선박 요리사 미켈(필스보 아스백)의 점진적인 정신적 붕괴와 CEO 피터(쇠렌 말링)의 협상 과정은 실제 인질 협상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놀라운 사실성을 획득했다.

영화 스틸

A Hijacking (2012), 토비아스 린홀름 감독. ⓒ Production Company

시리우스 스타호 사건과 영화는 현대 자본주의의 취약성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닌다. 첨단 기술로 무장한 초대형 선박이 구식 무기를 든 소수 해적에게 무력하게 당하는 아이러니, 인간의 생명과 기업의 이익 사이에서 저울질하는 협상의 잔혹함, 그리고 글로벌 공급망의 가장 약한 고리에서 벌어지는 폭력. 영화는 이 모든 것을 영웅주의나 선악 구도 없이 담담하게 보여준다. 해적도, 선원도, 회사도 모두 거대한 시스템의 부품일 뿐이다.

2026년 현재, 소말리아 해적은 거의 사라졌다. 민간 무장 경비원의 승선, 국제 해군의 순찰, 그리고 소말리아 정치 상황의 개선이 주효했다. 하지만 서아프리카 기니만에서는 새로운 해적이 출현했고, 홍해에서는 예멘 반군이 상선을 공격한다. 기술은 발전했지만 바다의 무법지대는 여전히 존재한다. 글로벌 무역의 90%가 해상으로 이루어지는 세계에서, 우리는 여전히 17세기 해적 시대와 다르지 않은 취약성을 안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구출된 미켈이 가족과 재회하는 장면은 안도감보다 공허함을 남긴다. 트라우마는 끝나지 않았고, 다음 항해를 준비하는 배들은 여전히 위험한 바다로 나간다. 우리가 매일 소비하는 상품들이 누군가의 목숨을 담보로 운송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얼마나 의식하고 있을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우리의 일상은 정말 무관한 것일까?

공식 예고편

A Hijacking (2012) — 토비아스 린홀름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