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텍과 노을 같은 중견기업들이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속속 내놓고 있는데, 정작 디지털 금융의 핵심 인프라인 원화 스테이블코인 법제화는 여전히 답보 상태다. 전자부품 제조사 드림텍이 6월 30일 첫 ESG 보고서를 공개했고, AI 진단기업 노을도 23일 다섯 번째 보고서를 발간했다. 반면 해시드오픈리서치가 3월 제안한 원화 스테이블코인 법안은 아직 정책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았다.
한국 기업의 ESG 보고서 발간은 2020년 40개사에서 올해 180개사로 4배 이상 늘었다. 유럽연합이 2024년부터 공급망 실사 의무를 강화하면서 수출 기업들이 서둘러 대응에 나선 결과다. 미국도 2026년부터 탄소 국경세를 도입할 예정이어서 ESG 공시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상황이 다르다. 해시드오픈리서치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2023년 1,500억 달러(약 195조원)를 넘어섰다. 일본은 작년 6월 엔화 스테이블코인을 합법화했고, 싱가포르도 올해 1월 규제 프레임워크를 확정했다. 한국만 여전히 '비은행 금융회사의 전자지급수단 발행' 정도로 모호하게 접근하고 있다.
ESG와 스테이블코인의 온도차는 규제 당국의 시각 차이에서 비롯된다. ESG는 금융위원회와 환경부가 적극 지원하지만, 스테이블코인은 한국은행과 금융위가 서로 다른 입장을 보인다. 한국은행은 통화주권 침해를 우려하고, 금융위는 투자자 보호를 강조한다. 부처 간 조율이 안 되니 민간은 기다릴 수밖에 없다.
실제로 ESG 보고서를 낸 기업들은 즉각적인 혜택을 본다. 국민연금이 운용하는 800조원 중 ESG 투자 비중이 올해 50%를 넘어섰다. 반면 원화 스테이블코인 사업을 준비하던 국내 핀테크 기업 3곳은 지난해 사업을 접었다. 규제 불확실성 때문에 투자도 받지 못했다.
삼일PwC가 19일 발간한 '2025 해외 IPO 안내서'도 시사점을 준다. 한국 기업의 해외 상장 문의가 작년보다 40% 늘었는데, 주된 이유가 '국내 규제 회피'라고 명시했다. 블록체인과 핀테크 분야가 특히 많다. ESG처럼 글로벌 기준에 맞춰 규제를 만들면 기업들이 움직이는데, 스테이블코인처럼 막아놓으면 기업들이 떠난다는 얘기다.
다음 달 20일 통계청이 발표할 'OECD 통계정책위원회' 자료도 주목할 만하다. 한국의 디지털 금융 인프라 순위가 포함될 예정인데, 스테이블코인 부재로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ESG 공시 의무화는 2년 만에 제도화됐지만, 스테이블코인은 5년째 논의만 하고 있다. 기업들은 묻고 있다. 왜 어떤 건 빠르고 어떤 건 느린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