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뮈니케자본시장

기술특례 상장사 실적 압박, 혁신 기업 성장 가로막는 모순된 규제

맥락기술특례 상장 제도가 실적 전망 요구로 본래 취지 퇴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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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회의실. 기술특례 상장을 준비하는 바이오 스타트업 대표가 서류 더미를 뒤적인다. 혁신 기술력으로 상장 문턱을 넘으려 했지만, 2025년과 2026년 실적 전망치를 요구하는 규정 앞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한국거래소가 기술특례 상장 기업에 향후 2년간 사업연도별 실적 전망을 제출하도록 요구하면서 스타트업들이 진퇴양난에 빠졌다. 기술력만으로 상장할 수 있도록 만든 제도가 정작 일반 상장과 다름없는 실적 증빙을 요구하는 아이러니가 벌어진 것이다.

기술특례 상장은 매출이나 이익이 없어도 기술성만으로 코스닥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통로다. 2005년 도입 이후 카카오, 셀트리온 같은 혁신 기업들이 이 제도를 통해 성장 발판을 마련했다. 그런데 최근 거래소가 기술성평가 과정에서 구체적인 실적 계획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최근 기술특례 상장을 추진한 A사는 2025년 매출 300억 원, 2026년 500억 원이라는 전망치를 제출했다가 낭패를 봤다. 아직 제품 출시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억지로 만든 숫자가 오히려 신뢰성을 떨어뜨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반대로 보수적으로 전망치를 낮추면 성장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는 일반 상장과 차별화를 둔 제도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일반 상장은 최근 2년간 당기순이익 20억 원 이상, 자기자본 30억 원 이상 등 구체적인 재무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기술특례는 이런 기준 대신 기술력과 시장성을 평가받는다. 그런데 실적 전망을 요구하면서 두 제도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벤처캐피털 업계 관계자는 "초기 스타트업이 2~3년 후 매출을 정확히 예측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며 "오히려 과도한 전망치 때문에 상장 후 주가 폭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023년 기술특례로 상장한 기업 중 절반 이상이 공모가 아래에서 거래되고 있다. 상장 당시 제시한 장밋빛 전망이 현실과 동떨어졌기 때문이다. 투자자 보호를 위해 도입한 실적 전망 요구가 오히려 투자자 피해를 키우는 역설이다.

해외 사례와 비교하면 한국의 규제 모순이 더욱 선명해진다. 미국 나스닥은 기술 기업 상장 시 미래 실적보다 기술의 혁신성과 시장 잠재력을 중심으로 평가한다. 테슬라는 상장 후 7년간 적자를 기록했지만 시장에서 퇴출되지 않았다. 일본도 2022년부터 그로스 시장을 신설해 적자 기업도 상장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췄다.

거래소는 투자자 보호를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실적 전망 대신 기술 검증과 지배구조 개선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숫자 맞추기에 급급한 기업보다 정직하게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기업이 더 신뢰할 만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2024년부터 기술특례 상장 요건을 완화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실적 전망 요구는 그대로 유지됐다. 제도 개선의 핵심을 비켜간 것이다. 기술 혁신을 지원한다면서 실적을 요구하는 모순된 규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한국의 유니콘 기업들은 여전히 해외 상장을 고민하고 있다.

이 기사는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맥락과 통계를 추가해 재구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