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부터 시작된 일이다. 국민연금이 대기업 사외이사 선임에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포스코와 CJ그룹 계열사들이 첫 타깃이 됐다.
국민연금은 이들 기업의 주주총회에서 경영진이 추천한 사외이사 후보에 반대표를 던졌다. 단순한 반대가 아니었다. 독립성이 부족한 이사진 구성이 주주 가치를 훼손한다는 구체적인 이유를 제시했다.
경영계는 즉각 반발했다. 경총은 "노동·시민사회 단체가 사주들의 이사 연임을 반대하고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요구한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연기금의 경영 개입이 과도하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숫자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국민연금이 보유한 국내 주식 자산은 약 200조 원. 이는 국민 1인당 400만 원에 달하는 규모다. 코스피 시가총액의 7%를 차지하는 최대 기관투자자가 주주권을 행사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다.
해외에선 이미 일상이다.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2023년 한 해 동안 9,400개 기업의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했다. 이 중 20%에서 경영진 제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일본 연기금 GPIF도 2022년부터 ESG 기준에 미달하는 기업 이사 선임에 반대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한국투자공사, 교직원공제회 등 주요 기관투자자들이 국민연금의 움직임에 동조하고 있다. 이들이 보유한 지분을 합치면 대부분 대기업에서 10%를 넘는다.
금융당국도 방향을 같이한다. 금감원장은 최근 기관투자자들의 사외이사 추천권 활용을 독려했다. "주주 가치 제고를 위해 이사회의 독립성 강화가 필수"라는 입장이다.
다만 실효성에는 의문이 남는다. 국민연금이 반대해도 경영진 추천 이사가 선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배주주의 지분율이 높은 한국 기업 구조에서 연기금의 영향력은 제한적이다.
앞으로 국민연금의 행보가 주목된다. 단순 반대를 넘어 대안 후보를 직접 추천하는 단계로 나아갈지, 아니면 현재 수준의 견제 역할에 머물지 관건이다. 2026년 3월 주총 시즌이 진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