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회의실. 지난달 27일 오전, 거래소 심사 담당자들이 삼천당제약이 제출한 계약 관련 서류를 펼쳐놓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회사가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5.3조원'이라는 천문학적 계약 규모가 명시됐지만, 정작 공시 문서와 실제 계약서 어디에도 이 숫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삼천당제약은 지난달 대규모 의약품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회사가 언론에 알린 계약 규모와 공식 공시 내용이 전혀 달랐다는 점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계약서 원본을 확인했지만 5.3조원이라는 금액은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았다"며 "회사 측에 해명을 요구한 상태"라고 전했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제약업계에서는 계약 규모를 부풀려 발표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한다. 2024년에는 한 바이오 기업이 '1조원대 기술수출'을 발표했다가 실제로는 계약금 100억원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나 투자자들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당시 주가는 발표 직후 30% 급등했다가 사실이 밝혀지자 반토막이 났다.
삼천당제약의 경우 더욱 교묘하다. 공시에는 구체적인 금액을 명시하지 않으면서도, 언론 배포용 자료에는 거액을 제시하는 '이중 플레이'를 펼쳤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정식 공시가 아닌 보도자료로만 큰 숫자를 흘리면 법적 책임을 피해갈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금융감독원은 이미 유사 사례들을 주시하고 있다. 작년 한 해만 해도 허위·과장 공시로 제재받은 제약·바이오 기업이 15곳에 달했다. 과징금 총액은 82억원. 하지만 주가 조작으로 얻는 이익이 제재 금액보다 크다 보니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자구책이 나오고 있다. 온라인 투자 커뮤니티에서는 "제약회사 발표는 공시 원문과 대조해봐야 한다"는 게시물이 인기를 끌고 있다. 한 개인투자자는 "보도자료만 보고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봤다"며 "이제는 계약서 원본 공개를 요구하는 운동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문가들은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자본시장연구원 김모 연구원은 "미국에서는 기업이 언론에 배포하는 자료도 공시와 동일한 수준의 검증을 거친다"며 "한국도 공시 외 발표 자료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삼천당제약 사태는 아직 진행 중이다. 회사는 "계약 세부 사항은 영업 비밀"이라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5.3조원이라는 숫자가 어디서 나왔는지는 끝내 밝히지 않고 있다. 거래소의 조사 결과에 따라 추가 제재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투자자들이 알아야 할 것은 명확하다. 화려한 숫자 뒤에 숨은 진실을 확인하는 습관, 그것이 자산을 지키는 첫걸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