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48.3%보다 더 센 숫자, '지역간 거래 1302조원'의 의미
수도권 생산 비중 48.3%, 절반 육박
그런데 더 센 숫자는 '지역간 거래 1302조'
서울은 100조원대 순유입, 강원은 46조 순유출
GRDP가 못 보던 '돈이 흐른 경로'를 드러냄
핵심은 '얼마 만드나' 아닌 '어디서 쓰이나'
지역에 남는 돈을 묻는 새 잣대
지역경제를 말할 때 우리는 보통 "그 지역이 얼마나 생산했나(GRDP)"를 봅니다. 그런데 그 돈이 정작 그 지역에 남았는지, 들여다본 적 있으신가요? 5월 18일 국가데이터처가 처음 공개한 '지역공급사용표'가 바로 그 질문을 던집니다. 본문은 수도권 집중이라는 익숙한 결론을 반복하지 않습니다. 그 결론 아래 숨은 '돈의 경로'를 봅니다.
■ 익숙한 숫자: 수도권 48.3%
먼저 눈에 띄는 건 집중입니다. 이번에 공표된 2020~2023년 17개 시도 통계에서, 전국 생산의 48.3%가 수도권에서 나온 것으로 보도됐습니다. 절반에 육박하죠. 여기까지는 우리가 아는 이야기입니다. "수도권에 다 몰렸다"는 그 말.
그런데 생산 비중만으로는 지역경제의 '혈류'가 안 보입니다. 같은 1조원을 만들어도, 그게 지역 안에서 소비·중간투입으로 돌면 체감이 크고, 곧장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가면 지역에 남는 건 적거든요. 생산 총액은 '얼마나 만들었나'만 답할 뿐, '그 돈이 어디로 흘렀나'는 답하지 않습니다.
■ 더 센 숫자: 지역간 거래 1302조원
그래서 이번 통계의 진짜 후크는 따로 있습니다. 지역 간에 오간 재화·서비스 거래가 1302조원으로 보도됐다는 점입니다. 이 숫자가 말하는 건 분명합니다. 한국의 17개 시도는 따로 노는 17개의 섬이 아니라, 서로 촘촘히 사고파는 하나의 거래망이라는 것.
[※참고: 지역공급사용표는 지역별로 무엇을 생산·수입하고(공급), 어디에 소비·투자·이출했는지(사용)를 함께 보여주는 통계입니다. 생산 총액만 보던 GRDP를 '경로' 차원으로 넓힌 셈입니다.]
■ 순유입과 순유출, 그러나 '승패표'는 아니다
거래망을 들여다보면 지역마다 역할이 다릅니다. 서울은 다른 지역에서 들어온 재화·서비스가 100조원대 순유입된 것으로 보도됐고, 강원은 반대로 46조원이 역외로 순유출된 것으로 지역지가 전했습니다.
여기서 조심할 게 있습니다. 순유입이 '이긴 지역', 순유출이 '진 지역'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순유출은 그 지역에 생산 기반이 있다는 뜻일 수도 있고, 지역 안 소비·중간수요가 약하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순유입은 소비·서비스 중심지라는 뜻이면서, 동시에 외부 공급 의존이 높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같은 숫자가 정반대로 읽힐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 통계를 지역 순위 경쟁처럼 쓰면, 모처럼 나온 '경로 데이터'의 의미가 납작해집니다.
■ 정책이 놓치는 빈틈: '유치'가 아니라 '잔존'
이 통계가 정책에 던지는 질문은 날카롭습니다. 지역정책은 흔히 "기업 몇 곳, 투자 몇 조원 유치"를 성과로 내세웁니다. 그런데 공장을 세운 것과, 그 공장이 지역 안에 거래·고용·소비를 남기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지역내 거래율 — 한 지역의 생산·소비가 지역 안에서 얼마나 맞물리는지 — 이 낮은 곳은, 생산이나 소비의 상당 부분을 외부 네트워크에 기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유치 실적'이 곧 '지역에 남는 부가가치'는 아니라는 얘기죠. 이번 표는 그 차이를 숫자로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지역별 세부 수치는 공식 원자료 표의 단위·연도를 확인해 읽어야 합니다.)
■ 그래서, 질문이 바뀐다
정리해 볼까요. 수도권 48.3%는 '집중'을, 지역간 거래 1302조원은 '연결'을, 순유입·순유출은 '경로'를 보여줍니다. 익숙한 건 집중 숫자지만, 새로 보이는 건 그 아래 흐르는 돈의 길입니다.
그러니 지역경제를 두고 던질 질문은 바뀌어야 합니다. "어느 지역이 얼마나 만들었나"가 아니라, "어디서 만든 것이, 어디서 쓰이고, 무엇이 그 지역에 남았나"입니다. 수도권 대 지방이라는 구호가 아니라, 거래망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의 문제로요. 첫 공급사용표가 던진 건 결론이 아니라, 이제야 제대로 던질 수 있게 된 '질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