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 '6년 연속 흑자'라는데, 흑자는 32억 → 3억 달러로 쪼그라들었다
'6년 연속 흑자'라는 헤드라인은 사실이다
그런데 흑자는 2021년 32억 8000만 달러 → 2025년 3억 3000만 달러
수입이 +9.3%로 수출(+2.2%)보다 4배 빨리 늘었다
국내 시장의 수입점유율은 60.3%까지 올라갔다
'코로나 진단키트' 특수가 가고 임플란트·초음파가 그 자리를
흑자라는 간판은 지켰지만, 무게중심은 수입으로 기울고 있다

'6년 연속 흑자.' 5월 28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내놓은 2025년 의료기기 산업 실적의 제목입니다. 무역수지 4789억 원(3억 3000만 달러) 흑자, 생산·수출 반등세 지속. 듣기 좋은 소식이죠. 그런데 같은 발표 자료를 한 꺼풀 들추면 결이 조금 다릅니다. 결론을 먼저 귀띔하면, '흑자가 이어졌다'는 말과 '흑자가 커졌다'는 말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 기사는 K-의료기기가 잘했나 못했나를 따지지 않습니다. '6년 연속'이라는 간판 뒤에서 숫자의 무게중심이 어디로 옮겨갔는지를 봅니다.
■ '6년 연속 흑자'는 맞다
먼저 사실 확인. 식약처에 따르면 2025년 국내 의료기기 생산액은 12조 3558억 원으로 전년보다 8.1% 늘었고, 무역수지는 4789억 원(3억 3000만 달러) 흑자를 기록했습니다. 2020년 이후 6년 연속 흑자입니다. 코로나19 엔데믹 이후 진단기기 수요가 빠지며 위축됐던 생산·수출이 2년 연속 반등세를 이어간 것도 맞습니다. 여기까지는 헤드라인 그대로입니다.
[※참고: 무역수지 흑자는 달러로 3억 3000만 달러, 원화로는 4789억 원입니다. 환율과 표기 방식에 따라 숫자가 달라 보일 수 있어 둘을 함께 적었습니다. 또 '6년 연속 흑자'는 2020년부터 흑자가 끊기지 않았다는 뜻이지, 흑자 규모가 커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 그런데 흑자가 10분의 1로 줄었다
문제는 흑자의 '크기'입니다. 흑자 추이를 따라가 보면, 2021년 32억 8000만 달러였던 무역수지 흑자는 2022년 29억 9000만 달러로, 그리고 2025년에는 3억 3000만 달러까지 내려왔습니다. 4년 만에 흑자가 10분의 1 토막이 난 셈이죠. 바로 전년인 2024년의 6억 5000만 달러와 비교해도 절반 가까이 줄었습니다. '연속'이라는 말은 지켜졌지만, 그 안의 숫자는 빠르게 얇아지고 있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수출과 수입의 '속도 차이' 때문입니다. 2025년 의료기기 수출액은 53억 7000만 달러로 전년보다 2.2% 늘었습니다. 같은 기간 수입액은 50억 4000만 달러로 9.3% 증가했습니다. 증가율로 보면 수입이 수출보다 약 4배 빠른 셈입니다(규모가 4배라는 뜻이 아닙니다). 둘의 격차가 흑자였는데, 수입이 더 빨리 따라붙으니 그 격차가 좁아진 것이죠. 오해는 말아야 합니다. 산업이 쪼그라든 게 아닙니다. 생산액은 8.1%, 시장 규모는 12.6% 늘었습니다. 다만 '흑자'라는 간판 숫자가 빠르게 얇아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 이미 '수입이 60%'인 시장
속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비중도 기울어 있습니다. 2025년 국내 의료기기 시장규모는 11조 8769억 원으로 전년보다 12.6% 커졌는데, 이 시장에서 수입품이 차지하는 비중, 즉 수입점유율은 60.3%에 이릅니다. 전년 59.6%에서 더 올라갔습니다. 국내 시장의 다섯 중 셋은 이미 외국산 의료기기가 채우고 있다는 뜻입니다. 시장이 커질수록 그 과실의 더 큰 몫이 수입 쪽으로 가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참고: 수출이 늘어도 수입이 더 빨리 늘면 무역수지 흑자는 줄어듭니다. '수출 호조'와 '흑자 확대'가 늘 같은 말이 아닌 이유입니다. 시장이 성장한다는 사실과 국내 산업이 그 성장을 가져간다는 사실도 구분해서 봐야 합니다.]
■ 'K-진단'이 지고, 주인공이 바뀌었다
흑자가 얇아진 배경에는 성장축의 교체가 있습니다. 코로나19 시기 수출을 떠받쳤던 체외진단(진단키트) 특수가 가라앉은 자리를, 이제 다른 품목들이 메우고 있습니다. 2025년 생산액 1위 품목은 치과용임플란트고정체로 2조 4429억 원, 전년보다 12.2% 늘며 3년 연속 1위를 지켰습니다. 수출액 1위는 범용초음파영상진단장치로 5억 2900만 달러, 10.2% 증가했습니다. 체외진단의료기기 수출은 7억 3800만 달러로 6.0% 늘긴 했지만, 더 이상 산업 전체를 끌고 가는 단일 엔진은 아닙니다.
성장축이 임플란트·초음파처럼 여러 품목으로 분산되는 것 자체는 나쁜 일이 아닙니다. 다만 진단키트 특수만큼 두꺼웠던 '흑자 기둥'을 이 새 주인공들이 대신 떠받칠 수 있느냐는 아직 증명되지 않았습니다. 흑자의 폭이 줄어든 지금이 바로 그 시험대입니다.
6년 연속 흑자는 사실이지만, 흑자 규모는 2021년 32억 8000만 달러에서 2025년 3억 3000만 달러로 급감했다. 헤드라인은 '지속'을, 데이터는 '축소'를 말한다. 같은 표 안의 두 사실을 함께 봐야 한다.
수출은 2.2% 늘었지만 수입은 9.3% 늘어 약 4배 빨랐고, 수입점유율은 60.3%까지 올라갔다. 흑자라는 간판 뒤에서 시장의 무게중심이 수입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코로나 진단키트 특수가 끝나고 임플란트·초음파가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분산된 새 주인공들이 옛 '흑자 기둥'만큼 두꺼워질 수 있을지가 K-의료기기의 다음 질문이다.
발표는 이렇게 말했다. 식약처는 "2025년 의료기기 무역수지가 4789억 원 흑자로 6년 연속 흑자를 달성했고, 생산·수출이 반등세를 이어갔다"고 밝혔다. 틀린 말이 아니다.
데이터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같은 자료 안에서 흑자는 2021년 32억 8000만 달러에서 3억 3000만 달러로 줄었고, 수입(+9.3%)이 수출(+2.2%)보다 4배 빨리 늘어 수입점유율이 60.3%까지 올라갔다. '흑자의 지속'과 '흑자의 확대'는 다른 이야기다.
아직 모르는 것. 진단키트 특수가 빠진 자리를 임플란트·초음파 등 분산된 품목들이 대신 떠받쳐 흑자 폭을 다시 두껍게 만들지, 아니면 흑자가 계속 얇아질지는 2026년 숫자가 나와야 확인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