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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쉼터는 왜 어떤 골목에선 텅 비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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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요약
행정안전부가 지난 6월 24일 여름철 폭염 대책을 내놨습니다. 전국의 행정복지센터와 도서관, 금융기관을 무더위쉼터로 열고 얼음조끼를 갖춘 119 폭염구급대를 굴립니다.

1995년 7월, 미국 시카고의 기온이 섭씨 41도까지 치솟았습니다. 일주일 남짓한 폭염에 700명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냉방장치가 없었다거나 나이가 많았다는 설명은 절반의 진실일 뿐이었지요. 사회학자 에릭 클라이넨버그는 이 참사를 시신을 가르듯 파고들었고 그 기록이 『폭염 사회』입니다.

책의 방법론은 제목처럼 서늘합니다. 그는 이 재난을 '사회적 부검(social autopsy)'이라 부릅니다. 부검이 시신을 열어 사인을 찾듯 그는 도시를 열어 어떤 사회적 조건이 사람을 죽음으로 밀어 넣었는지 살핍니다. 고사망 지역에는 빈곤과 범죄, 고립의 요인이 겹쳐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검의 진짜 소견은 그다음에 나옵니다. 같은 조건의 동네들 사이에서도 거리와 상점, 관계망의 차이가 생사를 갈랐다는 것입니다.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대목은 서로 붙어 있는 두 동네의 비교입니다. 노스론데일에서는 19명이 죽었고 바로 옆 사우스론데일에서는 3명이 죽었지요. 두 곳 모두 주민의 90%가 넘는 소수인종 동네였고 혼자 사는 가난한 노인의 수도 엇비슷했습니다. 폭염의 세기가 담을 사이에 두고 달랐을 리 없는데 사망자는 여섯 배 넘게 벌어졌습니다.

무엇이 갈랐을까요. 클라이넨버그가 찾은 답은 냉방기 대수가 아니라 '거리의 생김새'였습니다. 라틴계가 다수인 사우스론데일에는 사람들이 걸어 나가 장을 보고 밥을 사 먹는 상점가가 살아 있었지요. 이웃을 상대로 장사하는 사람이 많으니 골목에는 늘 인기척이 돌았습니다.

노스론데일은 사정이 달랐습니다. 일주일에 몇 번씩 총격이 벌어지는 동네에서 사람들은 공원에도 나가지 않고 문을 걸어 잠갔지요. 노점은커녕 동네 안에 돈을 벌 곳도, 쓸 곳도 마땅치 않았습니다. 폭염이 닥치자 이 고립은 곧장 치사율로 바뀌었습니다. 문밖의 위험이 문안의 노인을 가둔 셈입니다.

이 대목에서 책의 통찰이 또렷해집니다. 폭염 사망은 기상도가 아니라 고립의 지도에서 발생합니다. 같은 기온, 같은 나이, 같은 가난이어도 누군가는 살고 누군가는 죽습니다. 차이를 만든 힘은 이웃의 눈길이 닿는 상점가였고 안심하고 걸을 수 있는 보도였고 문을 두드려 줄 관계였습니다.

이 렌즈를 끼고 행정안전부의 대책을 다시 봅니다. 무더위쉼터, 폭염구급대, AI 예측. 어느 하나 없어선 안 될 장치들입니다. 다만 시카고가 알려 준 교훈은 냉방의 세기가 아니라 접근의 문제였습니다. 아무리 시원한 쉼터라도 거기까지 걸어갈 관계가 끊긴 사람에게는 없는 셈이니까요.

무더위쉼터의 성패는 에어컨의 출력이 아니라 '거기까지 가게 만드는 힘'에 달려 있습니다. 홀로 사는 노인이 폭염 사흘째에 스스로 신발을 꿰어 신고 도서관까지 걸어갈까요. 총격이 아니어도 가파른 계단과 낯선 길과 말 붙일 사람 하나 없는 골목은 그 자체로 사우스론데일과 노스론데일을 가르는 담이 됩니다.

우리 골목을 떠올려도 그렇습니다. 폭염 경보가 뜬 오후, 3층 반지하에서 홀로 여름을 나는 노인에게 두 블록 밖 행정복지센터는 결코 가깝지 않습니다. 정작 그를 쉼터로 데려가는 힘은 냉방 온도가 아니라 안부를 챙기는 발걸음, 문 앞의 쪽지, 함께 나가자고 벨을 누르는 이웃의 손일 것입니다. 클라이넨버그가 사우스론데일에서 발견한 핵심도 결국 그 손의 밀도였지요.

AI 예측도 같은 자리에 놓입니다. 사흘 뒤 위험도를 4단계로 아는 일은 분명 진보이지요. 그러나 위험도가 붉게 뜬 그 지역에서 누가 누구의 문을 두드릴지가 비어 있다면 예보는 벽에 붙은 숫자에 그칩니다. 클라이넨버그의 부검이 끝내 짚은 핵심은 냉방 예산의 크기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사회적 기반시설'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쉼터의 지도 위에는 또 하나의 지도를 겹쳐야 합니다. 어느 골목에 상점가가 살아 있는지, 어느 동네에서 노인이 저녁마다 벤치에 앉는지, 어느 계단이 폭염에 사람을 가두는지를 아는 지도입니다. 그 위에서라야 119의 얼음조끼도, AI의 붉은 신호도 비로소 사람에게 가닿을 겁니다.

폭염은 공평하게 내리쬐지만 죽음은 결코 공평하지 않았습니다. 노스론데일의 19라는 숫자는 하늘이 아니라 끊어진 골목이 적어 낸 숫자였지요. 올여름 어느 쉼터가 붐비고 어느 쉼터가 텅 빈다면 우리가 먼저 살필 곳은 그 빈 의자 뒤에 놓인 골목의 안부일지 모릅니다.

이 기사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
1

'사회적 부검'이라는 이 책의 방법론입니다.

2

클라이넨버그는 재난 통계를 넘어 도시 자체를 해부하듯 분석해, 폭염 사망이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이웃 관계·상점가·치안이 얽힌 '사회적 조건'의 산물임을 밝혀냈습니다.

3

노스론데일과 사우스론데일이라는 붙어 있는 두 동네의 사망률 격차는 그 증거의 결정판으로, 오늘의 무더위쉼터 정책을 냉방이 아닌 '관계'의 문제로 다시 읽게 만듭니다.

이 기사의 근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