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분 | 수치 |
|---|---|
| 소부장 특화단지 1기 지정(2021년) | 5곳 |
| 2026년 8월 무역수지 | 347.5억달러 |
| 월별 수출액(2026년 6월) | 1,020억달러 |
지난 9월 17일 한국수출입은행에 정부 위원회가 모였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날 제18차 소재·부품·장비 경쟁력강화위원회를 열어 새 특화단지 지정안을 심의하고 의결했습니다. 지도 위 몇몇 도시 이름 옆에 산업의 씨앗을 심을 자리를 정하는 회의였습니다.
위원회가 고른 곳은 네 군데였습니다. 조선해양플랜트를 맡은 경남 거제, 방산 전자·광학부품의 대전, 반도체 화학소재의 전북 군산·익산 그리고 반도체 후공정을 걸머진 충남 천안·아산입니다. 정부는 단지마다 연구개발과 기반구축, 인력양성에 5년간 약 400억원씩, 모두 1,600억원을 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왜 낯선 흙에 무언가를 심는 이야기는 늘 마음을 붙드는 걸까요? 영화 「미나리」(정이삭 연출, 2020)가 꼭 그렇습니다. 정이삭 감독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되짚어 각본을 쓰고 연출한 이 작품은 1980년대 미국 아칸소로 건너간 한인 가정이 낯선 땅에서 농장을 일구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이 가족은 남들이 잘 손대지 않는 작물에 승부를 걸었죠. 순제작비 약 22억원의 작은 독립영화가 그리는 건 거창한 성공담이 아니라 낯선 땅에 뿌리를 내리려는 사람들의 하루하루입니다. 큰 판돈을 건 도박처럼 보이지만 사실 한 가정이 홀로 감당해야 할 몫이었습니다.
■ 낯선 땅에 걸린 판돈
천안·아산에 걸린 판돈은 훨씬 큽니다. 이 후공정 특화단지에는 2030년까지 민간 투자 3,700억원이 들어올 예정입니다. 여기에 삼성전자가 아산 온양사업장에 고대역폭메모리(HBM)용 첨단 패키징 생산시설을 짓겠다며 약 46조원 규모 투자를 추진 중입니다.

공장이 다 올라가면 온양사업장 연면적은 27만㎡에서 42만㎡로 넓어집니다. 새 일자리 약 700명과 2조6000억원의 생산유발 효과가 따라붙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미나리 속 가족이 건 것이 한 집안의 살림이었다면 이곳에 걸린 건 국가 예산과 대기업 투자가 함께 얽힌 판입니다.
이 판돈이 헛된 꿈일까요? 그렇게 보긴 어렵습니다. 2026년 8월 반도체 수출은 1년 전보다 209.0% 늘어난 466.5억달러로 역대 최대를 찍었거든요. 같은 달 전체 수출은 982.5억달러, 무역수지는 347.5억달러 흑자였습니다.
월별로 보면 6월 1,020억달러로 역대 1위, 7월 990억달러로 2위, 8월 982.5억달러로 3위를 기록해 석 달 연속 900억달러대를 지켰습니다. 반도체가 이 흐름의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 뿌리는 아직 얕다
화면으로 돌아가 볼까요. 영화가 낯선 땅에 심는 것을 하필 미나리라는 이름으로 부른 데는 까닭이 있어 보입니다. 자리를 잡는 일은 씨앗을 심는 순간이 아니라 뿌리가 흙을 붙드는 시간에 달려 있으니까요. 가족의 승부도 심은 뒤부터가 진짜였습니다.
그렇다면 씨앗만 심으면 뿌리는 절로 내릴까요? 그렇게 보긴 어렵습니다. 국내 반도체 소부장 전체 국산화율은 아직 약 29%에 머물러 있거든요. 정부는 2022년 발전전략에서 국산화율을 그때 30%에서 2030년 5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내걸었습니다.
낯선 땅에 온 것은 산업만이 아닙니다. 아산시 인구는 2026년 8월 기준 36만5,299명으로 충청남도에서 천안 다음으로 많습니다. 정부는 2026년 외국인 계절근로자를 10만9,000명 규모로 배정하기로 했는데 2025년 배정 인원 9만5,700명이 이미 전년보다 41% 늘어난 규모였습니다.
40여 년 전 아칸소로 향한 영화 속 가족처럼 오늘의 낯선 땅에도 새로 뿌리내리려는 사람들이 옵니다. 산업의 씨앗과 사람의 발걸음이 같은 흙 위에서 만나는 셈입니다.
이 특화단지는 처음 뿌린 씨앗도 아닙니다. 1기는 2021년 2월 용인·청주·천안·창원·전주 5곳, 2기는 2023년 7월 안성·부산·오송·대구·광주 5곳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1기 5곳과 2기 5곳에 이번 3기 4곳이 더해져 전국 특화단지는 모두 14곳으로 늘었습니다.
작은 씨앗이 큰 결실을 맺기도 합니다. 22억원짜리 독립영화 「미나리」는 2021년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비롯한 6개 부문 후보에 올랐고 배우 윤여정은 2021년 4월 26일 여우조연상을 받아 한국 배우로는 처음 오스카 연기상을 안았습니다.
낯선 아칸소 흙에 쪼그려 앉아 씨앗을 묻던 그 가족의 손길이 오늘 아산의 새 단지 위로 겹쳐 보입니다.
개인이 건 농사 도박과 국가 예산·대기업 투자가 함께 걸린 특화단지를 나란히 놓으면 낯선 땅에 미래를 심는 승부의 무게가 다르게 읽힙니다.
8월 반도체 수출 466.5억달러라는 역대 최대 실적과 29%에 머문 소부장 국산화율을 함께 보면 지금이 씨앗을 심는 국면임이 드러납니다.
외국인 계절근로자 10만9,000명 배정과 아산 인구 지표는 산업과 이민이 같은 흙에서 만나는 오늘을 보여 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