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을 안다는 것
동물을 안다는 것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책이나 방송을 통해 동물들에 대한 지식을 습득할 수도 있고 일상의 잦은 접촉과 관찰을 통해 알 수도 있다. 그러나 동물에 대한 지식이 많다고, 혹은 동물과 오랫동안 함께 살았다고 해서 동물을 더 잘 안다고 하긴 힘들 것이다. 그러기에는 동물이 인간과 분리돼 온 역사가 너무 길다. 인간 외 다른 동물들은 오랫동안 인간에게 이용, 판단되어왔고, 그로 인해 인간과 동물 사이에는 이미 심한 비대칭적 권력 관계 내지오해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물을 알려고 할 때 곧장 방법으로 나아가기보다 그 방법론의 타당성을 고찰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동물에 접근할 때 '나를 잠시 유보하고 조심스럽고 끈질기게 접근하는 태도도 필요하다. 이런 면에서 제인 구달은 지금까지 동물을 알고자 했던 알았던 사람들 중에 단연 으뜸으로 사표로 꼽을 수 있는 인물이다.
『제인 구달, 침팬지와 함께 한 50년』은 제인 구달의 그러한 면모를 아주 꼼꼼하게 기록하되, 그녀의 연구 대상'이었던 침팬지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알려주는 책이다. 이 책은 제인 구달에 대한 기록이면서 동시에 침팬지에 관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제인이 알고 싶어서였건 침팬지가 궁금해서였건 책을 펼친 독자들은 자신들의 궁금증을 해결하는 데 실패함이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제인 구달이 1960년 현 탄자니아(구 탕가니카)의 곰베로 들어가서 침팬지를 관찰하기 시작한 지 50주년이 된 것을 기념하여 나왔다. 이전에도 제인 구달을 다룬 책들과 다큐멘터리가 여럿 나왔지만, 이 책은 가히 그런 결과물들의 압축판이자 결정판이라 해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그동안의 시간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으면서도 독자들이 제인과 침팬지들을 생생히 느낄 수 있도록 고심한 흔적이 역력히 드러난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제인뿐 아니라 곰베의 풍경과 침팬지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에 시원하게 공간을 할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의 기획자들은 마치 독자들이 그 현장 속에서 침팬지들을 직접 만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기를 원하는 듯 보인다. 이 책의 기획 의도가 그것이었다면 성공한 듯하다. 사진 속에는 침팬지들의 주름마저 생생히 드러나서 침팬지를 접할 기회가 없었던 나 같은 사람마저 그레이 비어드와 플로, 피피와 플린트등 침팬지들을 각각 구별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제인, 그녀는 성보다 이렇게 이름으로 칭하는 것이 왠지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것은 고운 백발을 한 맘씨 좋은 할머니 같은 그녀의 모습 때문일 수도 있고, 이 책에서 호칭이 그렇게 통일 쓰이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녀를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데는 그녀 자신이 침팬지들에게 이름을 지어주던 습관도 한몫했을 것이다. 침팬지들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것은 제인이 공들여 한 일이자 제인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제인은“침팬지 각각의 독특한 얼굴과 성격을 인식하고 구분하기 시작” (30) 하자 침팬지들에게 이름을 붙여주었다고 한다. 이 책에 실린 침팬지들의 사진에는 일일이 그 이름들이 명시되어 있다. 제인이 곰베 캠프에 가서 제일 먼저 마주친 데이비드 그레이 비어드, 그리고 곰베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암컷 침팬지인 플로, 그리고 그녀의 자손인 피피와 플린트, 그 밖에 패니, 고블린, 프로도, 가이아, 글리타 등 수없이 많은 침팬지들에게 제인은 이름을 지어주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 책을 처음 펴들었을 때는 사진 설명에 이름이 적혀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도통 침팬지들의 얼굴을 구분할 수 없었다. 고양이 집사력 10년 차'가 넘는 사람으로서 고양이 얼굴이라면 한 번 보고도 단번에 구별할 자신이 있지만, 침팬지는 몇 번을 봐도 그 개체들이 구별되지 않았다. 그러나 책을 세 번쯤 읽었을 때 비로소 플로와 피피, 그리고 다른 침팬지들이 구별되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제인이 침팬지 각각의 “독특한 얼굴과 성격을 인식하고 구분할 수 있었던 것은 사소한 발견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시간과 지속적인 관심을 필요로 하는 일이며, 이후에는 역으로 그런 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동력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제인의 이름짓기는 단순한 이름짓기가 아니라 동물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하나의 결과였다.
동물 연구에서 (기계적인 객관적' 관찰을 극도로 중시하던 1950년대 과학계의 관행에서는 이 같은 제인의 이름 붙이기는 쉽게 받아들여지기 힘든 일이었다. 그 이유는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이름을 붙임으로서 과학의 객관성이 훼손된다는 것이었으며 그로 인해 제인의 방식은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한편으로 다행스럽게도, 제인은 가계가 어려워 대학에 입학하지를 못했고, 따라서 전문적인 훈련을 받지 않고 그 일을 시작했던 터라 그런 비판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자기 소신을 밀고 나갈 수 있었다. 이 책에 곰베 침팬지들의 가계도(F 가계도와 G 가계도)가 실릴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일 것이다(42-43쪽), 곰베침팬지들의 가계도는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페이지 중 하나이다. 침팬지들의 생몰 연대를 표기한 이 가계도는 그 대상이 인간이었다면 그리 별다르게 다가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침팬지들의 가계도라서, 침팬지에게도 가계도가 있나? 라는 의문과 함께, 우리가 동물들에게는 가계도가 없다고 전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면서 일면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비난을 받아가면서도 꿋꿋하게 몇 시간이고 침팬지를 관찰하며 알아가고 이름을 붙였던 제인이 자신의 연구는 단지 침팬지들에 대한 분석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주장하는 포스터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제인 구달의 성공적 연구의 조건은 뭐였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그녀의 타고난 성정이다. 무엇보다 먼저 동물에 대한 그녀의 진심과 끈기 있는 성실함이 눈에 띈다. 그녀는 아주 어릴 때부터 동물을 관찰하는 데 열정을 보였다. 불과 5살 때 아이가 없어져 온 식구가 찾으러 다니는 동안, 혼자 닭장에서 5시간을 기다리며 닭이 알을 낳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눈을 반짝이며 나타났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 일화는 동물에 대한 제인 구달의 접근 방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즉, 그녀의 동물 연구의 기본 태도는 '기다림이다. 그녀는 몇 시간이고 동물을 가만히 지켜본다. 동물이 관찰자인 자신에게 익숙해질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 곧 자신에 대한 신뢰를 키운다는 점을 어릴 적부터 몸소 터득하였다. 제인의 '기다릴 줄 아는 미덕은 이후 곰베의 침팬지 연구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였다.
“먹거나 쉬지 않고도 오래 버틸 수 있는 제인의 능력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았다고 한다(26쪽). 찾아보니, 그녀의 아버지 모티머 H. 모리스 구달(Mortimer Herbert Morris-Goodall)은 자동차 엔지니어였는데 당시 유일한 카레이서였다. 그러나 제인의 그런 성정이 침팬지 연구에 기여 하는 요인으로 자리 잡는 데는 어머니 '밴'(Margaret Myfanwe Morris-Goodall)의 적극적인 지원이 큰 역할을 한 듯하다. 그녀의 어머니는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딸의 특이한 야망을 지지했다. 그녀의 친구들은 아프리카에서 동물들을 공부하고 싶다는 제인의 꿈을 현실적인 꿈으로 유도하라고 주의를 주었으나, 밴은 뭔가를 정말로 원한다면 열심히 하라. 포기하지 않으면 길이 생긴다'라고 제인에게 말해주었다. 비현실적인 꿈을 꾸는 자식을 격려해줄 수 있는 어머니가 얼마나 있으랴. 이런 어머니를 둔 제인을 운이 좋은 사람이라 불러도 좋으리라. 그런 특이한 어머니의 자질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밴이 소설가였기에 가능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그녀는 밴 모리스 구달(Vanne Morris-Goodall)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한 소설가였다. 밴의 지원은 단지 말의 격려로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제인이 아프리카로 떠날 때 당시 젊은 여성 혼자 산림지대에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자 기꺼이 동행자가 되어 준다. 그뿐 아니라 곰베초기에 제인이 침팬지를 관찰하러 나간 동안 현지 주민들을 치료해주곤 했는데, 이것은 제인이 이후 현지 주민들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제인이 우연히 고생물학자 루이스 리키(Louis Leakey)를 소개받아 비서로 일하다 그의 주선으로 곰베에서 침팬지 연구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도 제인의 행운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제인이 결정적으로 누렸던 행운 중의 행운은 바로 그녀가 '대영제국의 후손이라는 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탕가니카(현 탄자니아)는 영국의 보호령이었고 만일 제인처럼 젊은 아가씨(곰베에 갈 때 제인은 26살이었다)가 영국인이 아니었다면 아예 이런 시도 자체를 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시아의 한 젊은 처녀가 아프리카로 가서 침팬지 연구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엄두라도 낼 수 있었을까? 당시에도, 지금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인의 성공을 국가라는 배경으로만 환원시킬 수는 없는 일인 것은 분명하다.
현재 우리가 침팬지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은 제인의 연구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침팬지가 인간과 유사하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 책에서 침팬지가 보통 5살까지 젖을 먹고 7살까지 어미와 밀착하여 지낸다는 사실, 8~13살 사이에 사춘기가 온다는 것등을 읽으며 새삼 놀랐다. 그리고 어미가 자식과는 짝짓기를 하지 않으며 일종의 단일혼에 해당하는 비교적 영구적인 교제관계(consortship)을 형성한다는 것, 어머니 역할(Mothering)이 자식들의 성격과 사회성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 '알파 수컷이 짝짓기 권리와 최상의 먹이 보장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다만 다른 침팬지들의 존경을 받는 지위를 의미한다는 사실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과 영장류의 유사함이란, 그저 추상적인 수사 수준에 머물러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제인의 연구는 단지 침팬지들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녀는 생계를 위해 침팬지의 서식지인 숲을 파괴하는 지역주민들과 공생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다. 이것은 침팬지에 대한 진심을 가진 연구자로서 일면 당연한 행보일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이것을 당연하게 느끼는 것도 어쩌면 제인의 영향 때문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좀 달라졌지만 학문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영역을 학계에 국한 시키려는 경향을 보인다. 연구자와 활동가, 이 사이에는 의식적 · 무의식적 경계가 존재하며 나 또한 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는 한편으론 개인이 가진 능력의 한계 때문일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 학문의 '순수성'을 지켜야 한다는 전통적 관념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제인은 이런 틀에 별로 구애받지 않은 듯하다. 적어도 이 책에는 그런 것에 대한 그녀의 갈등이 드러나지 않는다. 곰베의 마을 인구가 증가하면서 땅이 파괴되고 물이 오염되고 산사태 위험이 커지는 문제가 순환적으로 커져갈 때 제인은 '타카리 (TACARE)라는 공동체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영어의 takecare'에서 따온 이 프로그램은 공동체 중심의 환경 보존 및 회복을 목표로 하면서 동시에 마을 사람들의 기본적인 필요, 즉 교육, 보건, 깨끗한 물, 경작 가능한 땅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도왔다. 인상적인 부분은 이런 목표를 위해 제인이 그 지역민 7명으로 꾸려진 팀을 만들어 지역 사람들의 요구를 경청하러 다녔다는 대목이다. 이것을 보면 제인이 얼마나 원칙에 충실하게 일을 해나가는 스타일인지 알 수 있다. 그녀는 그냥 ~ 위해 일하는 척을 하지 않았다. 침팬지에 대해서도, 그 지역주민들에 대해서도
1994년에 곰베에서 시작된 타카리 프로그램은 인근 지역으로 퍼져갔고 2006년에는 곰베 광역 생태계(Greater Gombe Ecosystem) 프로그램으로 발전된다. 이 프로그램은 지리정보시스템을 적극 이용한 지도 작성과 분석을 통해 토지 이용과 보존 계획까지 연계시키는 더욱 포괄적인 생태 보존 기획이다. 이 책의 후반부는 타카리 프로그램을 비롯하여 미래 세대인 전 세계의 어린이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인 '뿌리와 새싹 활동, 야생동물 거래에서 구출된 침팬지들을 위한 침팬지 보호지 개장, 그리고 전 세계 (특히) 연구소에서 자행되는 실험동물 구호 활동을 펼쳐가는 제인의 행보를 담고 있다. 제인 구달은 동물에 관심과 애정을 가진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범주의 일을 굵직굵직하게 행한 표본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녀의 행보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제인 구달은 코비드19가 인간의 세계를 뒤흔들자 가장 바빠진 사람 중 한 사람이다. 세계 각지에서 그녀에게 인터뷰와 글쓰기를 요청했고 한국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2021년 현재 여든 일곱 살인 제인은 여전히 총기가 또렷한 눈과 목소리로 “모두가 (지구에) 더 가벼운 '생태 발자국을 남기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조근조근 말한다. 그녀는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갔고 남들이 가망 없다고 지레 포기했을 법한 일에 뚜벅뚜벅 임했으며 그래서 늘 희망을 이야기하는 사람으로 세간에 각인되었다. “우리가 사는 혼란스러운 삶 속에서도 각자 해야 할 역할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는 그녀의 말에서 드러나듯, 그녀는 변화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의 삶에서 각자가 만들어내는 소소한 변화들에서 더 나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 일종의 낙관주의자이다.
동물을 안다는 건 단지 지식 차원의 문제만은 아니다. 동물을 안다는 건 그 아는 주체가 사는 방식까지 바꾸는 문제이다. 동물을 진정으로 알면 동물들의 고통과 기쁨에 무심할 수 없고, 또한 그들이 처한 불리한 삶의 환경을 보게 된다. 그래서 동물을 진정으로 알게 되면 나의 삶의 짐은 더욱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내 주변이나 매체를 통해 접하는 '동물을 아는 사람들의 사례에서 나는 늘 크든 작든 그런 점을 확인하곤 한다. 그런데 제인 구달을 보면 그녀가 그런 어려운 짐을 지고 있으면서도 그리 짐스러워 하지 않는 것 같다. 제인은 항상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잔잔한 호수 위에서 천천히 배를 저어가는 듯한 태도로 자기 앞의 동물들과 그로 인해 생겨나는 과제들을 대한다. 제인 구달이 어떤 희망이 될 수 있다면 무엇보다 바로 그런 점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제인은 동물을 잘 안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몸소 보여준 인물이자, 동물을 아는 것이 고역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최성희
부산대 영어영문학과 강사. 현재 정동이론과 동물성에 대한 관심을 갖고 영문학을 연구하고 있다. 공역서로 『정동 이론』, 『젠더와 모빌리티』, 『존재 권력』등이 있다. pypmk@hot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