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신문 기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일자리를 잃은 30대 가장이 아이들이 보고 싶다며 372km 떨어진 고향 집까지 걸어가다 길에서 세상을 떠났다. 말레이시아 당국에 따르면 이 남성은 조호르주 세가맛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다 코로나19사태로 직장을 잃었다. 이후 자식들을 보기 위해 고향인 트렝가누주로 길을 떠났다. 트렝가누주는 조호르주에서 372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자동차로 5시간 정도면 도착하는 곳이다. 하지만 이동제한 명령으로 주(states)간 이동과 대중교통이 끊겨 남성은 걸어서 집에 가야 했다. 현지 매체들은 이 남성이 창백한 얼굴로 힘들게 걷는 모습을 여러 사람이 봤다고 전했다. 한 목격자는 “사람들이 그에게 음식을 주면서 여행을 계속하지 말라고 했지만, 고집을 꺾지 않았다”고 말했다. 고인은 사후 검사에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사망자의 가족은 장례비 1천500링깃(42만 원)을 낼 돈도 없어 주변의 도움으로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인도의 도시에서 일자리를 잃은 수백만의 사람들이 고향으로 걸어가다 죽고 다친 이야기. 유명 영화배우가 그들을 자비로 고향에 보내 준 미담이 보도되었다. 인도는 국제적 이주노동자를 가장 많이 송출하는 나라다. 또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국내에서 이주한다. 방향은 당연히 농촌에서 도시로 집중된다. 그들은 왜 집으로부터 그렇게 먼 곳으로 이동했을까? 누구나 답을 안다. 일자리를 찾아서다. 자신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판매하기 위해 구매자를 찾아 힘들고 고통스럽게 이동한다. 이 이동은 사실상 강요된 것이다. 떠나지 않으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생존이 가능하다 해도 더 부자가 되어야 한다고 끊임없이 강요하는 사회의 압력을 개인이 이기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이런 강요된 이동과는 사뭇 달라 보이는 이동도 있다. 한국 사회도 그랬지만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해외여행은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극히 일부의 사람들에게만 가능했다. 삼십 년 사이에 해외여행자의 수는 세계적으로 무려 수백 배나 늘어났다. 여행자들은 노동자들의 이주와는 다르게 즐겁고 자발적으로 이동한다. 자발적이라는 말은 순전히 자기 의지로, 자기 두 발로만 이동하고, 자신들이 준비한 음식만 먹거나 유료숙박 시설을 이용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자기 돈을 기꺼이 지불해 교통과 숙박과 식음료 상품을 구매하는 방식으로 여행한다. 또 가는 장소, 먹는 음식까지도 가이드와 가이드북과 SNS의 지침을 충실히 따른다. 여행이란 이동이 딱히 자발적인 것 같지는 않지만 당사자에게 주는 영향, 느낌은 일자리를 찾아가는 이동과 확실히 다른 것이다.
대조적 방식의 두 이동은 1980년대 말 이후 삼십 년 동안 똑같이 급증했다. 그리고 정확하게 같은 시기에 역시 급증한 상품과 화폐의 세계적 이동의 결과라는 공통점도 가지고 있다. 엄밀하게 보자면 두 이동 자체가 상품과 화폐의 이동이다. 노동이주자는 노동력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이동하고 관광객은 상품을 소비하는 방식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그 대가로 이제는 주로 전자신호로 전환된 화폐가 이동한다. 상품과 화폐 그리고 특수한 상품인 노동력은 왜 이렇게 먼 거리를 이동하게 되었을까? 왜 사람들은 생산하거나 소비하기 위해 지구 둘레만큼을 이동하는 수고를 자처할까?
해답은 자본주의의 성격에 있다. 자본주의는 애초에 지구적 범위의 수탈과 교역을 바탕으로 성립되었다. 이는 자본주의의 형성에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수탈, 노예무역, 아편무역이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가만 보아도 금세 알 수 있다. 그리고 발전한 자본주의는 다시 공간적 범위를 확장한다. “부르주아지는 세계시장의 개발을 통해서 모든 나라들의 생산과 소비를 범세계적인 것으로 탈바꿈시켰다.” 마르크스가 1848년 “공산당선언”에서 한 말이다. 이 경향은 일시적 부침은 있었지만 멈추지 않고 지속되었다. 생산과 소비의 지구적 확장이 사람들의 이동이 확대된 원인임은 더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먼 거리 이동만 늘어난 것이 아니다. 돈을 벌거나 쓰기 위해 깨어있는 시간의 상당 부분을 이동하는 데 써야 하는(한국 수도권 직장인의 하루 출퇴근 소요시간은 왕복 두 시간 가까이나 되는데, 이런 상황은 세계 대도시 어디에서나 비슷하다) 우리의 일상이 이를 알려주고 있지 않은가?
원인보다 중요한 것은 대규모 이동이 가져오는 결과다. 생산과 소비의 공간적 범위 확장과 이동의 증가는 생산과 소비 사이의 연결을 잊게 만든다. 어느 사회, 어느 시기에서든 인간은 소비하기 위해서 먼저 생산해야 한다. 당연히 생산과 소비는 하나로 이어져 있다. 자본주의 생산양식 아래에서 생산은 소비자에게 판매하여 이윤을 획득하기 위해서만 생산한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생산과 소비 사이의 경제적, 사회적 연관은 강화되지만 공간적, 문화적, 심리적 거리는 오히려 멀어진다. 유니클로, 자라, H&M 등의 의류 회사는 디자인에서 소매 판매까지를 일관된 하나의 계열로 조직해 효율성을 높였다. 이런 의류 브랜드들을 SPA브랜드(Special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 Brand)라고 한다.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상품 기획부터 소매 판매까지를 일관된 체계 안에서 긴밀하게 연결시킨 이 브랜드들의 본사는 서구 선진국에 있고 생산은 지구 반대편의 주변부 국가에서 이루어진다.
생산자가 눈에서 멀어지면 소비자의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코코아 열매를 보고 자기들이 즐기는 기호 식품의 최초 형태임을 알아보는 초콜릿 소비자는 드물다. 싸게 사서 부담 없이 입고 버리는 티셔츠에서 낮은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짜내어진 주변부 여성노동자들의 피와 땀 냄새를 알아채는 소비자는 더 드물다. 붕괴 사고로 천 백 명 이상의 여성노동자가 사망한 방글라데시의 라나플라자는 SPA 브랜드의 옷을 제조하는 봉제 공장들이 가득 찬 큰 건물이었고 사망자들 대부분은 하루 2달러 이하만을 받던 저임금 노동자들이었다. 열대우림에 불을 지른 자리에 만들어진 플랜테이션에서 재배된 환금작물들이 최종적으로 판매되어 얻어진 수익의 가장 큰 몫은 주변부 의류 산업 노동자의 저임금을 지불하고 남은 이윤과 마찬가지로 어김없이 선진국의 자본에게로 돌아간다. 피땀 흘려 작물을 생산하는 주민들은 ‘저임’과 ‘과로’는 물론 급등락하는 시장 가격의 위험도 고스란히 떠안는다. 생산과 소비의 겉으로 보이는 분리 밑에 놓인 흔들리지 않는 연결 덕분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그 연결을 가치사슬이 라고 부른다.
생산과 소비, 노동과 향유, 도시와 농촌의 겉으로 보이는 분리는 사적 소유를 근간으로 한 자본주의 체제의 결과물이다. 이 말을 역사적으로 설명해 보자. 자본주의적 산업화로 농촌은 도시로의 판매를 위한 식량 생산지가 되었다. 농촌 지역에서의 소비를 위한 생산은 의미 없을 정도로 줄어들었다. 반면에 도시는 농산물을 소비하기만 하면서 판매를 위한 공산품을 생산한다. 그 생산을 위한 원료는 다시 다른 어딘가에서 공급된다. 게다가 대규모 공업 생산은 소비가 일차적인 목적이 아니다. 이윤을 남기는 것이 생산의 근본 목적이 된다. 도시에서나 농촌에서나 생산자들의 소비는 생산의 부차적인 목적이 된다.
도시와 농촌으로 나누어진 생산과 소비의 분리는 한 나라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생산은 전 세계에 걸친 연쇄적 과정으로 확장된다. 운동화 한 켤레를 만들기 위해 전 세계 여러 나라, 지역의 노동자들과 자원이 동원된다. 그러나 그들 사이의 관계는 결코 우호적이지도 평등하지도 않다. 앞서 본 초콜릿, 티셔츠와 마찬가지로 주변부의 저소득 노동자들이 생산한 제품은 중심부의 소비자들에게 판매되고 그 이익의 대부분은 선진국에 근거를 둔 초국적 자본의 몫이 된다. 생산 과정에 노동과 자원을 제공하는 지역에게는 아주 작은 몫만이 돌아간다. 그 지역 안에서도 자원을 소유한 집단과 노동만 하는 사람들 사이의 불평등은 확대된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도시에서나 농촌에서나 노동은 대체로 가혹한 일이었다. 비생산적인 소비인 향유는 노동하지 않는 유한 계급의 전유 행위다. 그러나 유한 계급들은 자신들이 향유라는 특권을 누리기 위해 생산하는 사람들이 누군지를 정확히 알고 있고 그들에 대한 통제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 전통사회의 지배자들은 가혹한 혹사와 자애로운 보살핌을 번갈아 사용하며 생산자들과 향유자들 사이의 끈을 유지하려 했다. 전통 사회에서는 일하는 사람들은 축제 기간처럼 노동하지 않는 예외적 시간에만 향유할 수 있었다. 향유는 생산과 다른 종류의 인간 행위지만 생산 활동과 분리되지는 않았다. 농경 사회의 축제가 모두 농업의 순환주기 속에 있었음을 기억하자.
하지만 지배자들의 끈에 생산자들이 더 이상 묶여있지 않으려 했을 때 그 사회는 무너졌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가 열렸다.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자는 상품을 구매하는 방식으로만 향유할 수 있다. 그나마 이 소비도 여가 시간이 보장되어야 가능하다. 지배계급은 소비를 진작하기 위해, 그래서 자본이 이윤을 얻을 수 있도록 선심 쓰듯 노동 시간을 줄여 주고, 가끔 임시 공휴일도 지정해준다. 소액의 현금을 나눠주고 소비를 부추기는 일도 드물지만 있다. 소비를 자극해 생산을 활발하게 해야 이윤을 낳는 시스템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현대의 소비로서의 향유도 생산과 분리될 수 없다. 그러나 둘 사이의 거리를 멀게 하고 연관성을 눈에 보이지 않게 할 수는 있다. 이런 생산과 소비의 외견상의 분리는 계급 사회에서는 언제나 일어난 일이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인류가 농경을 시작한 이후로 지배 계급은 생산수단과 권력을 독점해 생산에서 면제되고 소비만 하는 집단이 되었다. 이것이 일차적인 생산과 소비의 분리다. 생산력이 낮은 사회에서 생산의 과정은 대체로 힘들고 위험하지만 소비행위는 안전한 향유의 과정이다. 한 사람의 행위에서도 생산행위와 소비행위가 나뉜다. 그리고 생산은 부정적인 성격, 소비는 긍정적인 성격의 행위가 된다. 생산행위가 바로 노동이다. 소비는 향유와 연결된다. 그러나 인류는 오랫동안 생산과 소비, 향유를 하나의 일관된 리듬, 흐름 속의 여러 국면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모내기 노동을 하며 노동요를 부르고, 추수 노동을 마치고 과해 보이는 소비를 하는 집단적 의례를 치른다. 이 의례에는 대체로 놀이가 함께 한다. 그러나 근대 사회 이후에는 이 흐름은 분리되어 별개의 활동이 된다. 노래만 하는 사람, 노동만 하는 사람, 소비만 하는 사람, 제의만 집행하는 사람은 서로 대면하지 않고 시장을 통해서만 이어진다.
또 다른 생산과 소비의 분리는 생산자가 자기가 생산한 것만을 소비하지 않고 다른 생산자의 생산물을 소비하는 것이다. 사회적 분업이 확대되면서 이런 의미의 생산과 소비의 분리가 늘어난다. 근대 이후의 노동자는 생산자이면서 소비자이지만 그가 생산하는 물건 외의 많은 물건을 시장을 통해 구매해 소비한다. 사회적 분업은 생산이 소비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판매해 돈을 벌 목적으로 행해지면서 더 확대된다. 즉 사용가치가 아닌 교환가치를 위한 생산으로 생산과 소비의 거리가 벌어진다.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가 이런 현상의 원인이다. 생산수단을 독점한 자본가는 이윤만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노동자를 고용해 생산하는 자본가는 이윤을 얻으려는 목적에서 생산을 조직하고 실행한다. 그 결과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과 소비의 구조적 연관은 강화되면서 물리적, 심리적 거리는 멀어지는 모순이 발생한다. 자본가가 이윤을 늘리기 위한 생산과 소비의 새로운 방식을 고안하면서 생산 소비 사이의 관계는 모순되고 복잡해진다.
우선 생산의 시공간과 소비의 시공간이 멀어진다. 자본주의 초기 시공간적 멀어짐의 전형적인 양상이 농산물 생산지인 농촌과 소비지인 도시의 분리다. 이 분리는 평등한 지위에서 단순하게 기능만 나누는 방식이 아니다. 도시는 농촌을 지배하고 수탈한다. 농촌은 열등한 사회적 위상에서 도시의 늘어난 인구를 위해 식량을 공급하지만 도시가 더 많은 경제적 이익을 얻고 농촌은 빼앗긴다. 전 세계적으로 나타난 도시의 확장과 농촌의 쇠퇴가 결과로서 이를 입증한다. 생산과 소비의 분리는 대등한 역할 분담이 아니라 위계적인 분할이 되고 그 분할은 경제적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재구성된다. 생산과 소비는 이제 적대적인 겉모습을 띄게 된다.
도시와 농촌의 분리는 생산과 소비의 방식 자체도 변화시킨다. 오랫동안 인간 생산 활동의 중심이었던 농업은 자연 속에서 자연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해왔다. 인간의 노동은 자연 속에서 자연과 상호 영향을 미치는 과정이었다.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소비자가 농산물이 내 입으로 들어오기 전에 있었던 인간과 자연, 생산자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발달한 식품 가공 기술은 식품의 생산 과정은 물론 원래 형태도 상상할 수 없게 만들었다. 외양만이 아니라 성분도 극적으로 변형된다. 생산과 소비의 분리는 인간과 자연 사이에 넘기 힘든 벽을 쌓았다.
근대 초기에 큰 사회 문제였던 농촌의 지력 고갈과 도시의 배설물 처리 문제는 도시 농촌의 분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농촌에서는 도시로 실어 보낼 곡물의 양이 늘어나면서 땅이 급속히 황폐해지는데 그것을 보충할 충분한 배설물을 구할 수 없게 된다. 반면에 인구가 갑자기 늘어난 도시는 사방이 배설물로 덮인다. 배설물을 밟는 불쾌함을 줄이려 만든 하이힐, 창문에서 쏟아지는 배설물을 피하려 여성을 건물에서 떨어져 걷게 하는 에티켓 따위로는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여과 없이 쏟아져 나오는 배설물은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지는 물론 도시의 강까지 완전히 오염시켰다. 불결한 물과 공기 때문에 전염병이 만연했다.
근대 세계는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했을까? 자본가들은 천적이 나타나면 모래 구덩이에 자기 머리만 숨기고 적이 없다고 믿는다는 타조처럼 대응했다. 도시를 구획해 빈민구역과 부유층 구역을 기술적으로 격리시켰다. 근대적 도시 계획이 여기서 출발한다. 물론 하수처리시설, 도시 내 녹지, 공장 환경 규제 등으로 도시의 오염을 일부는 줄였다. 그러나 이윤 추구를 위해 무한정 늘어나는 산업 생산의 환경 파괴를 근본적으로 막을 방법은 없었다. 차츰 자본가들은 임금이 낮고 환경 규제가 적은 곳으로 공장을 옮겼다. 교통과 통신 기술이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는 더 먼 곳으로 오염원을 보내버릴 수 있었다. 쾌적한 선진국의 환경은 주변부의 오염된 도시와 동전의 양면일 뿐이다. 하지만 주변부의 가난한 사람들이 동전의 반대편으로 건너오려면 전 재산 혹은 목숨까지도 걸어야 한다. 과거의 노예수송선 만큼이나 꽉 찬 컨테이너 안에서 질식사한 수많은 이주자들의 사례를 우리는 알고 있다. 이제 인간과 자연 사이에서처럼 인간들 사이에도 높은 벽이 자리 잡았다.
대규모 이동과 견고한 장벽이 공존하는 모순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사소한 소비재 하나도 전 세계를 몇 바퀴나 돌아 최종소비자에게 도달하는 세상이기도 하다. 미국에 간 한국인이 메이드인 코리아 제품을 사서 한국으로 다시 가져오는 일은 흔한 경험이다. 가치사슬이라 부르는 전 세계를 포괄하는 정교한 생산망이 만들어졌다. 자본이 이처럼 복잡한 일을 하는 이유는 낮은 임금과 느슨한 규제를 찾아서다. 즉 이윤을 극대화하는 다른 방식을 찾은 결과 생산과 소비의 분리, 농촌과 도시의 분리는 전 세계적 스케일로 확대되었다.
한 나라 안에서 도시와 농촌 사이의 위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의 격차가 나라와 나라 사이에 나타났다. 남북문제라고 부르는 중심부와 주변부의 경제적 불평등 문제다. 가치사슬의 고리들 사이의 격차가 클수록 사슬의 끝에 있는 이에게는 더 큰 이윤이 돌아간다. 수평으로 놓인 사슬이 아니라 수직으로 늘어진 사슬이다. 그 맨 아래에는 주변부의 하층 민중들이 생존에 필요한 만큼도 거의 소비하지 못하며 평생을 생산 활동으로 내몰린다. 중심부 소비자들의 미친 듯한 대량 소비와 금융투기에 힘입어 최상위 부자들은 인류 대부분의 부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이 소유하게 되었다.
석탄 냄새나는 굴뚝 사업장과 땀내 나는 노동자들을 지구 반대편으로 보내 눈앞에서 치워버린 서구의 대도시는 소비의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도심재생이란 말은 그렇게 잔인한 말이다. 생산과 소비의 분리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로 다시 태어났다. 생산과 소비, 도시와 농촌, 노동과 향유의 분리는 위계와 불평등의 세계적 확산으로 나타났다. 1984년 인도 보팔시에서는 유니온카바이트라는 미국계 화학 회사의 공장에서 독성 가스가 누출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불구가 되었다. 삼십 년이 더 지났지만 아직도 보상은 완료되지 않았다. 제대로 된 책임 추궁은 더더욱 없었다. 몇 달 전 한국 기업이 인도의 또 다른 도시에서 가스를 누출시켰다. 한국도 이제는 주요 가해자 중 하나가 되었다. 이것을 국력 신장이라고 좋아해야 할까?
다시 한 번 생산 활동 즉 노동은 천대받는 고역이 되고 생산과는 완전히 분리된 향유가 찬양된다. 그러나 시장만능 사회에서 향유는 실은 생산자, 공급자가 주는 것만 받아먹는 상업적 소비에 지나지 않는다. 온전히 주체적이고 이해관계로부터 초연한 순수한 향유는 이 세상에 없다. 향유는 상품 소비의 방식으로만 가능한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비의 관행, 방식, 소비자의 취향은 생산과 소비가 맺는 관계에 의해 대부분 결정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소비가 생산과 하나로 이어져 있음을 알지 못하고, 소비자로서의 입장에서만 세상을 본다. 나는 소비자일 뿐이다. 소비자로서의 취향과 권리를 행사하는 것 말고 더 무엇이 필요한가?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게끔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생각이 아니다. 힘센 생산자들이 그 생각을 우리에게 심어주었다.
몇 년 전 겨울이 유독 추웠던 해에 인구 오천만인 한국에서 롱패딩이라는 같은 종류의 옷이 천만 벌 이상 판매되었다. 제복을 입힌 것도 아니고 자신들이 자발적으로 각자 구입한 것이다. 한국 문화의 획일성, 소비패턴 등등 갖은 설명이 나왔지만 가장 큰 원인은 생산자가 같은 디자인의 옷을 생산해 적극적으로 팔았기 때문이다. 아이폰은 소비자가 고안해 애플에게 주문제작을 의뢰해서 나온 상품이 아니다. 자본가들의 이윤을 위해 대중들은 강박적 소비로 내몰리고 있다. 돈이 없어 좁은 집에 살아야 하는 대중들이 광고에 현혹되어 사들인 물건을 둘 공간조차 부족하다. 그러자 미니멀리즘, 비우기 등등의 미사여구로 포장된 정리하고 버리기 기술이라는 새로운 상품이 등장했다. 구매하기도 부족해버리고 구매하는 역설이 발생했다. 소비자 개인의 선의나 의지로 맞서기에 이 모든 압력은 너무 치밀하고 강력하다.
선진국 소비자가 주변부의 생산자와 대등하게 거래하겠다는 선의에서 고안된 공정무역도 자본주의가 갈라놓은 간극을 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남미의 커피 농장 노동자, 농민에게 이탈리아 커피 메이저 기업에게 돌아갈 이윤의 상당 부분을 배당한다고 해서, 남미의 커피 생산자가 (선진국의 커피 메이저 기업은 고사하고) 소비자와 경제적으로 대등해지기는 힘들다. 안타깝지만 현실은 그렇다. 커피를 생산하는 남미의 플랜테이션이라는 생산수단, 생산방식이 애초에 서구의 식민주의자들이 유럽에 유리하도록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즉 열등한 생산자의 지위는 남미에 위치시키고 이익을 보는 유통과 소비의 역할은 유럽인들이 하도록 인위적으로 구성한 생산 체계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남미의 대규모 커피 농장이 수천 년 전부터 커피나무가 대규모로 자생해온 군락지였을 리가 있는가? 남미의 생산자들이 까마득한 과거부터 커피 농사만 해온 사람들일까? 남미 플랜테이션의 생산자들은 대부분 아프리카가 고향인 사람들인데 말이다.
선진국의 하층 민중에게도 생산과 소비의 분리는 고통스럽게 나타난다. 생산과정으로부터의 분리가 바로 실업이기 때문이다. 생산수단을 독점한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생산이 이윤이 남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위해 실제의 생산자들에게 더 낮은 임금과 더 불안정한 일자리를 강요한다. 그러나 그로 인해 줄어든 소비는 자본가들 스스로를 파산으로 몰고 간다. 생산과 소비가 이어져 있음을 잊은 대가다. 거듭 말하지만 생산과 소비의 관계가 현재의 모습이 된 것은 생산수단의 사적소유와 이를 통한 이윤추구가 원인이다. 생산을 이윤추구의 목적에 부합하게 재조직한 결과가 지금의 생산과 소비 방식이다.
이렇게 은폐되고 왜곡된 생산과 소비의 관계를 복원하기 위해 사람들은 멀리 이동해야 한다. 상품을 나르기 위해, 상품을 만들기 위해(최근의 대규모 인구 이동 이전의 인류사적 규모의 이동이 바로 플랜테이션에서 노동할 노예의 무역이었음을 기억하자) 스스로 상품이 되어, 상품을 소비하러 낯선 나라로 간다. 신자유주의 시대 제조업을 대신해 이윤을 올릴 수단으로 관광산업이 등장한다. 해외여행자의 비약적 증가는 이 결과다. 단순히 수득 수준이 올라간다고 해서 이렇게 많이 이동하지는 않는다. 대중 매체를 통해 부추겨진 욕망의 발현이다. 히말라야 고봉들 아래에서 수 천 년을 살던 사람들이 그곳에 오르기 시작한 것은 서구 등반가들의 짐을 나르고 돈을 받기 위해서였다. 정상에 오르고 싶은 욕구를 천 년간 억누르며 참아온 것이 아니라 관광산업으로 돈을 벌고 싶은 욕구를 자본주의가 심어주었기에 산을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에도 역시 생산이 소비를 규정한다.
180년 전, 마르크스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생산과 소비의 겉으로 보이는 분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실제 생산 관계와 소비 관계를 전혀 모르므로 진정 사회주의자의 최종적인 은신처 즉 인간 본성으로 도주하는 길밖에 없다. 마찬가지 이유로 그는 생산에서 출발하지 않고 소비에서 출발하는 것에 집착한다. 생산에서 출발한다면 우리는 실제의 생산조건과 인간의 생산 활동에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그러나 소비에서 출발한다면, 우리는 지금은 소비가 ‘인간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설명으로 만족하거나 ‘인간적 소비’라는 요청이나 진정한 소비를 위한 교육이나 그와 같은 상투어들에 만족하면서 조금이라도 인간의 실제 생활 관계나 인간의 활동에 관여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최종적으로 한 가지 더 언급하자면 바로 소비에서 출발했던 모든 경제학자는 반동적으로 됐으며 경쟁이나 대산업에서 존재하는 혁명적인 요소는 무시됐다.”
생산과 소비는 애초에 분리될 수 없는 인간의 두 활동이다. 소비가 없다면 생산을 계속할 이유는 없어지고 생산이 없었다면 소비는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그러나 생산수단을 특정 개인이 독점하고, 이윤을 얻는 목적으로만 생산수단을 사용하면서 생산과 소비의 관계는 변화한다. 사람들은 그 둘이 하나라는 사실조차 망각한다. 아무런 관계도 없이 멀리 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생산과 소비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물건과 사람과 돈은 미친 듯 지구 곳곳을 떠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대유행이 인류의 이동을 극적으로 줄일 것이라고들 예측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미래를 섣불리 예단하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적인 태도는 아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즉 생산수단을 개인들이 독점하고 모든 필요한 것을 시장을 통해서 분배하는 사회가 지속된다면 지역적 고립과 자립적 생활로 인류가 돌아가지 않으리란 것은 분명하다. 인류는 자본가들에게 이윤을 보장해주는 새로운 방식으로 이동하도록 강요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새로운 이동의 방식이 자본가들을 제외한 인간과 자연에게 고통스러운 방식일 가능성은 더 높을 것이다.
이 방식을 종식시키거나 완화하기를 원한다면 생산을 다른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이윤 추구만이 목적이 아닌 생산을 해야 하고 생산수단을 사적으로 독점하지 않아야 한다. 소비는 이런 방향으로의 전환을 촉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즉 생산과 소비가 상호보완하면서 함께 바뀌어야 우리의 삶도 달라질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미래에 대해 확실히 아는 한 가지다.

 

 

 

한형식

철학자. 저서로 “맑스주의 역사강의”, “처음 읽는 독일 현대철학”, “현대 인도 저항운동사”, “인도 수구 세력 난동사”, “마르크스 철학 연습”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