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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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채림, 『매력만점 철거농성장』 리뷰

조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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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531일간 지속된 두리반 철거농성에 대한 기록이다. 이 책에 대한 서평을 부탁받았을 때, 한편에서는 두리반 투쟁에 좀 더 일찍부터, 좀 더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으로, 다른 한편에서는 두리반 투쟁이 갖는 중요성에 대한 생각이 겹쳐, 아무리 바빠도 쓰지 않으면 안 될 글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두리반 투쟁이 웃음과 유머가 넘치는 방식이었다고는 해도, 솔직히 말해 철거 투쟁의 기록을 읽는 일에 대해 특별한 즐거움이나 재미를 기대하지는 않았다. 모든 것이 내팽겨쳐진 철거 현장에서, 전기마저 끊어진 상태로 장기 투쟁을 지속한다는 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큰 어려움과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니 말이다.

더구나 내가 아는 두리반의 ‘남편 철거민’ 유채림은 수줍고 진지하며, 소설가라고는 해도 차라리 어눌하고 과묵한 이였기에, 그가 쓴 투쟁의 기록을 읽는 것은 그 고통에 공감하며 ‘고통을 나누는’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책을 손에 잡고 스무 쪽도 넘기기 전에 어눌하고 ‘어벙한’ 어조로 구사하는 유머에 웃음을 지으면서 내 예상과 아주 다른 책임을 알게 되었다. 덕분에 최근에 정신없이 이어지는 일들 속에서도, 책이 손에서 떨어지지 않아서 바쁜 일정을 더욱 바쁘게 만들었다. 이 책은 끝없이 웃게 만들며, 즐겁게 해줄 뿐만 아니라 슬그머니 감동까지 주는 어이없는 책이다. 또한 사람의 외모와 인상, 혹은 성격이 다른 사람을 얼마나 크게 속일 수 있는지 알려주는 책이기도 하다.
두리반 투쟁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비장하고 결연하게 시작하여 결국은 처참하고 처연하게 끝나는 투쟁이 아니라, 투쟁하자는 건지 놀자는 건지 모를 정도로 이런저런 공연과 영화 상영회, 바자회와 벼룩시장 등을 벌여, 두리반이 무슨 공연장이나 ‘문화 공간’인 양 착각하게 만든 새로운 투쟁이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나중에는 철거민 투쟁에 대해서 잘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 이들조차 공연이나 행사 때문에 들르게 만들고, 철거민 투쟁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재미삼아 모이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처음에는 고독하게 시작했던 농성이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을 모이게 했고, 그로 인해 두리반은 시간과 싸우는 투쟁이 아니라 시간을 친구로 삼는 투쟁이 될 수 있었다. 그것이 두리반이 승리한 결정적 요인이었다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나중에 건설회사와의 협상이 타결되어 두리반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얘기를 두리반 주인인 ‘졸리나’에게 들었을 때, “어, 안 되는데…… 그럼 이제 밴드들 공연은 어디서 하죠? 우리는 어디서 놀고?”라며 어이없는 반문을 했던 기억이 있다. 정말 아쉬웠다. 두리반은 타결되어서는 안 되었다. 철거민 두 분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농성은 계속되어야 했다. 그래야 우리 모두의 ‘문화 공간’ 두리반을 계속해서 즐길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이런 투쟁 방식은 그곳에 몰려든 사람들의 ‘아나키스트적인’ 성격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수줍고 말없고 어눌하고 진지한 주인장은 그 ‘대책 없는’ 사람들과 다를 것이라고, 다만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는 넓은 품을 가진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책을 집어 들고 얼마 되지 않아, 투쟁 방식에 대한 주인장 자신의 입장이 거기에 크게 새겨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니, 사실 그보다 먼저 몇 페이지 읽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웃게 만드는 이 책의 펑크적인 유머와 위트는 저자이기도 한 ‘남편 철거민’ 역시 그 ‘대책 없는’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종종 한술 더 뜨는 사람임을 알게 했다. 펑크록(punk rock)을 앞세운 펑크적인 투쟁에 대한 ‘펑크적인 기록(펑크錄)’, 부제 그대로 정말 대책 없이 웃기는 책이다.
두리반 투쟁의 주역 중 한 사람인 야마가타 트윅스터(Yamagata Tweakster)의 유명한 노래처럼 “돈만 아는 저질”들, 그 저질 프로(여기서 프로란 직업적인 자, 즉 ‘돈 버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자’를 뜻한다)들에 대한 수많은 아마추어들의 저항과 반란, 대책 없이 살고 철없이 놀 줄만 아는 아마추어들의 즐겁고 유쾌한 반란의 기록. 이게 이 책에서 내가 본 것이다. 동시에 이 책은 거기에 끼어들었던 그 아마추어들에 보내는 헌사이기도 하다. 그것은 오래 시가 투쟁에 함께해준 이들에 대한 개인적인 감사 인사라기보다는 그런 종류의 활동, 그런 방식의 삶을 즐길 줄 아는 이들에 대한 진심 어린 헌사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일종의 ‘헌정 앨범’이지만, 많은 사람이 어떤 한 사람을 위해 경의를 표시하는 통상적인 기념 문집이나 헌정 앨범과 달리, 한 사람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보내는 소박하고 따뜻한 헌정 앨범이다.
이런 식의 헌정 앨범을 만들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사실 어떤 투쟁의 기록도 대개는 투쟁의 중심이 되는 인물이 있기 마련이다. 그 투쟁 과정을 하나의 서사로 만들려고 할 경우 특정 주인공을 축으로 쓰게 되는 것은 피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는 이처럼 많은 동료들에게 헌정하는 책을 만들 수 없다. 그런 방식은 많은 인물들을 주인공을 둘러싼 배경으로 만들어버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놀랐던 것은 이 책에서는 그 수맣은 이들이 모두 책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점이다.
두리반의 주인인 ‘졸리나’가 책의 주인공이 되지 않기 위해 저자는 그의 고집 세고, 의연하며, 당당한 행동이 때로는 사람들을 난감하게 만드는 모습을 그렸다. 두리반의 다른 인물들과는 스타일이 다른 그가 종종 사태를 꼬이게 하고 어렵게 만드는 것으로 주변화 해버리는 것이다. 저자 자신을 그릴 때도 마찬가지다. 그는 철거민들에게 거리를 두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의연한 ‘영웅’과는 거리가 먼, 원래는 오히려 비굴한 자였음을 고백하며 소심하고 ‘어벙한’ 인물이 되어 주인공의 자리에서 슬그머니 이탈한다. 이처럼 주인공이 될 것이라고 믿었던 인물들을 의도적으로 약화시키는 장면들은, 웃음을 유발하는 탁월한 유머 감각 뒤에 그 위도마저 감추어져 정말 사실인 양 묘사된다. 뿐만 아니라 투쟁의 장면에서도 소음과 소란, 뜻밖의 사건과 뜻하지 않은 전개가 나타나 ‘배경’을 전면화함으로써 특별한 인물들을 모두 그 배경 속에 묻어버린다. 이런 식으로 인무로가 배경, 형상의 구별은 지워진다.
이 책은 새로운 문학적 표현 형식을 실험하고 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영웅적인 인물 없는 투쟁기, 특정한 주인공을 지워버리거나 모든 인물을 주인공으로 만들어버리는 ‘비인칭적 서사’ 같은 것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필경 두리반의 주인들이, 거기 들어온 대책 없는 저 아마추어들과의 관계에서 스스로를 주인공으로 삼지 않으려 했던 태도로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감히 말하건대,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책은 그리고 이들의 삶은 어떤 새로운 종류의 성취를 거두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이진경

1963년생. 철학 및 경제학 관련 연구자.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 저서 『철학과 굴뚝청소부』, 『불온한 것들의 존재론』, 『뻔뻔한 시대 한 줌의 정치』, 『대중과 흐름』, 편저 『모더니티의 지층들』, 역서 『노마디즘 1, 2』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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