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답하다
신간

이성진 시집 『미래의 연인』

차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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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의 제목 『미래의 연인』에는 시집을 읽어내기 위한 힌트가 숨어있다. 연인처럼 가깝고 친밀한 세계에 대해서 써내려가지만 그것은 미래에 존재한다는 것.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 손을 뻗어도 만질 수 없고, 온기를 느낄 수는 없다는 것.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막연한 상상이라고 치부해서는 안 된다. 이성진의 시적 세계를 따라가다 보면 단순한 꿈이 아니라 시인이 미래에서 보고 돌아온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물론 아직 미래가 도착하지 않았으므로 정말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는 그저 감각적인 장면들을 관람하는 일에만 집중하면 된다. 아름다운 꿈을 떠올린 시인은 그 안으로 들어간다. 이때 꿈속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다른 무언가로 변신하는 것이다. 시 「미래의 연인-미래와 연인에게」를 살펴보면 “낡은 항구가 되”어야 “너의 이불에서 나오지 않을”수 있고 “수많은 귤들을 낳”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렵게 환상의 일부가 된 시인은 이 이상의 다른 일은 하지 않는다. 그저 언제나 영원한 꿈을 영원히 꾸고 있을 뿐이다. “종종 저 캔버스 안에서 조용히 시간을 견디는 물감이 되는 꿈을 꾸”는 방식으로, 그러나 꿈은 꿈에 불과하므로 현실에서 시인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그 모든 꿈들을 통과하는 동안 “구부러진 손바닥을 펴고 시간에 태웠던 귤껍질 냄새를 맡으면서 무릎에 비벼 보기도 하는 것이” 전부다. 이러한 태도를 유지하는 꿈의 여정은 이 시집의 첫 장부터 시작되어 마지막 장까지 계속된다. 그리고 시가 모두 읽히고 난 뒤에도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이 시인의 유일한 특기다. 그러니까 이 시집은 영원한 꿈을 영원히 꾸는 방식에 대한 것이다.
이곳이 꿈이라는 걸 알 수 있는 징후들은 시적 세계 곳곳에서 발견된다. 꿈속이기 때문에 ‘나’의 존재방식도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데, 「미래의 연인-하이퍼 리얼리즘」에서 “소나기로 환생한 나는/원두막에서 나는/내리는 나를/본다.” ‘나’는 여러 곳에 존재하며, 마음대로 존재하기 때문에 소나기로 환생할 수 있으며, 원두막에 있기도 하고 소나기처럼 내리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적 세계를 즐겁게 관람하게 위해서는 유령처럼 떠돌아다니거나 시인이 꾸고 있는 꿈의 흐름을 따라 흘러가는 것을 추천한다. 이러한 읽기의 방식은 마치 잔잔하게 흐르는 강에서 일인용 카누를 타고 아무런 노력 없이 흘러가는 것과 같다. 기억해야 할 것은 이곳이 꿈속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어떤 일에도 애쓰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눈을 껌뻑거리며 멍한 표정으로 “발굴되기 전까지/나는 그을린 침대”(「밤의 비행기 날개」)라는 시인을 구경하다 보면 “해가 질 무렵 벽 하나로 굳는”(「요술소녀」) 모습까지 관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세계에도 위기는 있다. 시집을 넘기다 보면 영원한 꿈이라고 해서 영원히 평화롭다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이 세계에서 위기란 무엇일까. 그것은 꿈속을 유영하고 있는 시인의 눈감은 얼굴을 누군가 현실에서 서늘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는 것과 같다. 꿈속에서 외부의 낯선 존재를 의식하는 순간, 시인은 현실과 꿈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지나가게 된다. 시 「밑그림」에서는 이런 순간에 대해 “새가 뒤로 날아가는 날”이라고 설명하고, 유일한 위로는 “내 얼굴을 만지는 딸이 보”이는 것이며 “내 발자국을 줍고 걸어가고 있을” 너의 존재라고 말한다.
이 시적 세계의 모든 위기는 시적 존재를 위협할 정도의 재난은 아니며, 위로 또한 모든 위기로부터 완벽하게 시인을 구원하지 못한다. 시인에게는 “바닷가에 남은 친구들도 점점/폐장된 해수욕장처럼 할 일이 없”고, “관광객이 버리고 간 유리병 파편에/발바닥이 찍히는 일”(「윈드서퍼」), “누나들의 눈빛은 반짝이지 않는”(「누나들」) 것도 위기다. 그래서 시인은 이 세계에 어울리는 생존법을 발명했다. 그것은 바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낭만을 즐기는 것이다. 시인은 꿈속에서 낭만을 즐기는 방식에 능숙하다. “날씨가 있으면 어디든지 갈 수 있었으니까”(「슈게이저」) “애인과 내가 화롯가에 앉아 있다 지구 쪽에서는 오르트 구름이 일고 우린 화성의 물 없는 바다 구역에서 야영을 한다” “애인이 아가미가 달린 파란 팔로 나를 안아준다 대신 비를 기다리는 텐트 안의 풍경 정도는 갖고 있는 애인은 따뜻하다”(「리빙스톤 캠핑클럽」) “우린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을 연주했어”(「슈게이저」) “너를 안아서 흑백영화가 되었다”(「미래의 연인-짐 모리슨을 듣는 날」) “겨울이 오면 그녀는 사랑의 빠지곤 했다”(「미래의 연인-2집 가수」) “붉은 창문 아래 남은 우린 담배를 말아 피고/가끔 서로의 입술에 얇은 키스를 하기도 한다”(「음악감상」). 다만 시적 세계에서 즐기는 낭만이 현실에서도 낭만일 수 있냐고 묻는다면, 시인은 못 들은 척할 것이다. 시인은 우리에게 영원한 꿈을 영원히 꾸는 비결을 알려 준다. 그것은 눈앞에 마주한 상황과 감정을 유예하는 것이다. 이 말을 그저 회피하는 것이라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시인이 보여 주는 시적 세계는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예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시 「거인의 공」을 살펴보면 “나는 나오지 않는다/흐르기 때문에”라고 말한다. 보통 나오기 위해서는 어딘가 들어가 있어야 하지만 흐르고 있기 때문에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흐르는 걸 멈춘다고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실제 마주한 상황에 대해서는 유예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다른 상황을 이해해 보자. “그 감정을/알게 되었지만/알고만 있기로”(「해가 떨어지는 빌딩에서 나는 여럿이서 춤을 추었지」) 하고, “갈 곳도 없었지만 가지/않아도 될 것 같”(「밤과 그라데이션」)은 것이다.

지금까지 이성진의 첫 시집 『미래의 연인』을 관람하는 법을 소개하였다. 정리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내용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꿈결을 따라 유유히 흘러가기(애써 헤엄치지 말자).
둘째, 이곳에도 위기는 있다는 사실 기억하기.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낭만 즐기기.
넷째, 영원한 꿈을 영원히 꾸기 위해 유예하기.
이 비법들을 참고하여 시집을 읽다 보면 문득 관람하던 꿈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면 언젠가는 깨닫게 될 것이다. 이 모든 일들이 현재는 만날 수 없는, 미래의 연인과 꿈속에서 영원히 함께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원보람
2018년 <대전일보>(시 부문)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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