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는 고딕 미스터리라는 어쩐지 낯선 장르의 대가로 불리는 미국의 작가 셜리 잭슨의 작품이다. 미디어믹스도 세 차례나 이뤄졌을 정도로 걸출한 작품을 남긴 작가지만, 애석하게도 작가 개인은 대중에게 그리 잘 알려지지 않았다. 덕분에 영화화가 되었음에도 작가의 원작을 강조하기보다는, 찰스 역의 배우인 세바스찬 스탠을 내세웠다. 주인공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셜리 잭슨의 대표작들 중에서도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멸시받는 블랙우드 가의 두 자매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폭력에 가까울 만큼 잔인한 시선과 배척 속에서 소외된 자들의 비뚤어진(혹은 그럴 수밖에 없는) 삶의 의식에 관해 심도 있게 다룬다. 화자인 메리캣의 목소리를 통해 진행되는 이야기는 독자로 하여금 의심하게 하고, 이 의심의 대답은 명확히 주어지지 않아 한층 더 공포스럽다.

 

하지만 영화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 불행하게도 그다지 훌륭하지는 않다. 매력적인 도입부에 반해 중반 이전까지는 다소 지루하고, 스토리는 난해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원작이 있는 영화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전개인데, 나름의 이유는 있었겠지만 글쎄. 영화의 마지막 장면까지도 관객이 미스터리 스릴러장르에 기대하는 한 방은 없다.

 

영화는 시종일관, 아일랜드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미장센을 보여준다. 블랙우드 가의 저택 곳곳과 아름다운 정원, 시대감이 물씬 풍기는 마을의 정경까지 서정적인 향기를 듬뿍 받고 있다. 이런 영상미는 분명 영화의 장점이자 매력이지만, 스릴러 영화에서 영상미는 그저 부수적인 장점 중 하나일 뿐이다.

 

스릴러물은 기본적으로 관객에게 긴장감을 조성하고, 이 긴장감을 중반부에서 터뜨리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대개의 경우 특정 범죄 사건을 제시하고, 사건의 진실과 그에 뒤얽힌 등장인물 간의 이해관계를 그리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 과정에는 진범이 누구인가 혹은 사건의 진상이 어떠했는가를 다루는 것이 보통이며, 진실이 드러나는 과정에서 다소의 반전이 가미되기도 한다. 셜리 잭슨의 소설은 이 문법과는 다소 다르다. 독자의 의문은 서서히 확장되고, 이야기에서 전말이 드러나기 훨씬 이전부터 예측 가능한 수준의 결말이 그려진다. 영화는 이 확장되는 불안감을 그대로 담아냈다. 이 영화의 맹점은 여기에 있다.

 

블랙우드 가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지극히 부정적이며 폭력적인 반응으로 시작하는 이 이야기는 사촌 찰스의 방문으로 기점을 맞는다. 메리캣의 오컬트적 습관과 더불어 언니인 콘스탄스를 기괴할 정도로 보호하려 드는 행동은 이들 가족이 어딘가 뒤틀려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사촌 찰스는 초반에는 언뜻 이들을 진심으로 도와주려는 조력자처럼 보이지만, 물질적인 목적과 더불러 콘스탄스에 대한 의도를 가지고 찾아왔음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행동이 변화를 거부하는 가장 강력한 존재인 메리캣에게 긍정적으로 비출 리 없었으며, 합당한 이유 없이 찰스의 흔적을 지우려고 애쓰며 집요할 만큼 그를 거부한다.

 

일관되게 스스로를 정당한 존재로 묘사하는 메리캣의 시점에서 모든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이 이상함은 더욱 불확실한 방식으로 드러난다. 얼핏 이들이 피해자인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는 의심을 품게 한다. 블랙우드 가를 미워하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죽어 없어지고, 시체를 밟고 지나가 일상적 행위를 고수하고 싶다는 부분에서 메리캣의 엇나간 정신상태를 엿볼 수 있는데, 단순한 소외에서 비롯된 고립감이라기보다는 메리캣이라는 인물 자체가 비정상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때문에 관객은 메리캣에 온전히 공감할 수 없고 자연스럽게 중립적인 입장으로 흘러간다. 그러면서 의문은 증폭된다. 사건의 진상은 무엇이었는가? 이들은 왜 고립되었는가? 그리고 이들의 은 어떻게 무너질 것인가?

 

스릴러 영화들이 흔히 그렇듯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기까지의 호기심, 그리고 예상을 벗어나는 반전된 진실을 그려내는 방식과는 상당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사건의 진상은 쉽게 예측할 수 있으며 이런 예측을 확인하는 과정에 가깝다. 엄밀히 모든 사건은 예측 가능하며, 영화 전체를 감도는 불안정함은 끝까지 해결되지 않은 채 더욱 큰 고립만 남는다.

 

이 영화는 절대 친절하지 않다. 화자의 메리캣과 언니 콘스탄스, 줄리안 삼촌, 그리고 사촌인 찰스까지 주요 등장인물 모두가 어떤 의도로 행동하고 있는지, 이야기 전체를 지배하는 살인 사건에 대한 진실은 끝까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으며 화자인 메리캣은 그에 대한 가치 판단조차 거부한다.

 

영화의 가장 극적인 장면은 블랙 우드 저택에 화재가 일어난 바로 그 날 밤이다. 물리적이거나 실질적인 피해를 줄 수 없었던 마을 사람들의 분노는 저택 화재라는 사건을 통해 광기로 변한다. 하지만 영화는 도입부의 마을 방문부터 화재 사건이 일어난 바로 그 날 밤까지, 이들 블랙 우드 가에 대한 외부인의 부정적인 감정을 지속적으로 보여준다. 때문에 이 화재는 시각적으로만 기능할 뿐 뭔가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블랙 우드 가의 저택은 거대한 감옥에 가깝다. 마을 사람 대부분이 그들을 경계하고 멸시하지만, 유일하게 바깥세상과 접촉하는 존재인 메리캣은 오만한 태도로 마을 사람들보다 훨씬 더 그들을 멸시한다. 사건과 감정, 행동의 원인은 모두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때문에 영화가 다루고 있는 이야기는 현재만 존재할 뿐, 과거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다. 그리고 이 그림자는 더 짙어진 채 무너진 성을 견고하게 지킨다.

 

영화는 소설과 다르다. 소설은 문장 그 자체로만 기능하지 않는다. 책 속의 문장과 더불어 독자의 상상력을 통해 지평을 넓히며, 그렇게 넓어진 세계가 문학의 가치가 된다. 하지만 영화는 평균 90분에서 120분 내외의 러닝타임 동안 관객이 눈을 떼지 못하게 해야 한다.

 

<아이언맨 1>의 마지막 내사 “I’m Iron man”은 원작을 얼마나 재현하고 얼마나 변형할 것인가에 대한 좋은 예시다. 코믹스 원작에는 이런 대사가 존재하지 않는데, 케빈 파이기는 이 대사를 두고 원작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시도해도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이 경험은 이후 작품의 제작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고 말했다. 대중은 언제나 새로운 것을 원하고, 콘텐츠 소비를 통해 이전에 느껴 보지 못한 어떤 감정이나 경험을 얻기를 원한다. 때문에 원작의 충실한 재현은 정답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플랫폼과 장르의 문법에 따르는 것이 언제나 옳은 방법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콘텐츠건 간에 관객 혹은 독자와의 대화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일정한 방법론도 필요한 법이다. 문학과 영화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문학이 독자의 상상력을 토대로 형성되는 매력이 더 강하다면, 영화는 시각적인 자극을 통해 명확한 장면과 사건을 재현하는 방식으로 관객에게 강렬한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어쩌면 셜리 잭슨의 작품은 영화화되기에는 너무 밀도가 높았을지도 모른다.

 

 

 

 

 

이예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