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연한 일

어제 같은데 벌써 20여 년 전이다. 2001년 겨울, 내가 공부하던 미국 동부의 어느 주립대학 도서관 서가에서 나는 영어로 번역된 한국문학 작품을 열심히 찾고 있었다. 수업 따라가기도 벅찬 박사과정 학생이 갑자기 먼 땅에서 애국심이 발로했다거나 세계문학 지형도 안에서 우리 문학의 위상을 찾는 자발적인 탐구심으로 그리 한 것은 아니었다. 영미 시사에서 모더니즘을 다루는 수업 중이던 어느 날, 은사님 찰스 번스틴Charles Bermstein이 한국의 모더니즘 시에 대해 소개해 달라고 주문하셨다. 머리가 하얘졌다. 한국의 모더니즘이라니. 부끄럽게도 시인 이상 외에는 떠오르는 이름이 없었다. 그래서 달려간 도서관이었다.

우리는 그때, 지금 생각하면 좀 선진적인 방식으로 온라인/오프라인이 절묘하게 결합된 수업을 했다. 읽을거리를 미리 당겨 읽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메일을 주고받으며 열띤 토론을 한 후 수업에서 쟁점들을 심화 토론해 마무리 짓는 식. 목요일 오후 3시에 시작되는 수업은 교수님의 너른 연구실에서 진행되었다. 큰 책상을 가운데 두고 뒷자리 소파까지 앉은 학생들은 졸아들어 쓴 약이 된 커피를 각자 따라 마시며 늦저녁까지 수업을 했다. 나는 늘 시인 로버트 크릴리(Robert Creeley, 1926~2005)와 함께 나란히 앉아, 넓은 창 너머 호수를 바라보며 성긴 눈발이 오늘처럼 땅으로 내리지 못하고 하늘로 폴폴 올라가는 걸 보면서 '지금쯤 한국은 새벽 다섯 시겠군!' 하며 두 겹의 시간을 가늠하곤 했다. 시 창작과 비평을함께 다루는 '버펄로 시 프로그램Buffalo Poetics Program'에서 시의 꿈을 좇는친구들은 그 자유롭고도 묵직한 수업에서 상상력과 지력을 최대한 끌어당겨 시를 둘러싼 모든 가능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국의 모더니즘 시를 소개하는 중차대한 임무에 달려간 락우드 도서관은 내게 꿈의 공간이었다. 한국의 빈약한 도서관 시스템에서 논문 하나 쓰려면 이 학교 저 학교 자료를 찾아 헤매던 경험을 싹 잊게 하는 곳, 당연히 많을 줄 알았던 영역 한국문학서들, 서가는 놀랍게도 거의 비어있었다. 소설책 몇 권, 누렇게 바랜 시집 몇 권이 긴 서가 한 구석에 비스듬히 서 있었다. 오후 햇살이 도서관 실내에 점점이 떠돌다 빈 서가에 내려앉는 먼지를 비추고 있었는데, 나는 그때 한국문학의 영토가 이 먼지 한 점의 질량으로 세계를 부유하고 있다고 느꼈다. 지금 같으면 사진을 찍었겠지만 손전화기가 없던 시절, 그 쓸쓸한 서가의 풍경, 햇살 속을 떠돌던 먼지들이 기억 속에 꿈처럼 남아있다. 여기서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먼지처럼 부유하던 한국문학이 커져서 세계문학의 현장을 누비는 풍경에 관한 것이다. 친구들에게 미리 읽을거리를 주지 못한 나는 기존에 출판된 모더니즘번역시를 찾는 작업은 포기하고 부랴부랴 시 몇 편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한국어에서 영어로 시를 번역하는 일은 그렇게 우연히 시작되었다.그때 미국 친구들에게 소개한 한국의 모더니즘 시는 이상과 김수영, 신경림의 작품이었다. 김지하의 시도 소개했는데, 김수영과 4·19를 이야기하다가 내친 김에 시 「회귀」에 곡을 붙인 김광석의 노래를 들려준 것이다. “목련은 피어 / 흰빛만 하늘로 외롭게 오르고 / 바람에 찢겨 / 한잎씩 꽃은 흙으로 가네”로 시작하여 “검은 등걸 속 / 애틋한 그리움 움트던 겨울날 / 그리움만 남기고 / 저 꽃들은 가네”로 이어지는 노래. 번역을 통해 의미를 어느 정도 짐작한 시인 친구들은, 가수의 비음 섞인 목소리가 독특하다며 노래가 슬프다 했다. “~고”, “~네” 음의 반복이 영시의 행 말미에 오는 운과 유사하냐고 묻던 기억이 난다.

시인 이상은 제롬 로덴버그Jerome Rothenberg가 편찬한 노튼 선집에 소개되어 있어서 알고 있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시집 『황토』의 시인이 노년에 한국의 정치적 지형도에서 어떻게 변절하게 되었는지는 말도 못 꺼냈다. 실험성과 정치성, 민주주의의 과제를 둘러싸고 한국 모더니즘 시사가 나름의 활달한 리듬과 형식을 다채롭게 선보였다는 정도로, 또 우리에게도 이상처럼 놀라운 시인이 있고, 김수영처럼 열렬하고 단단하게시학과 시의 운동성을 결합한 시인이 있다고 말하는 정도에 그쳤다. “시인들 이야기 더 듣고 싶어. 앞으로 네가 번역해 주면 좋겠다. 중국문학이나 일본문학에 비해 한국문학은 덜 알려졌잖아. 더 읽고 싶고 더 알고 싶어.” 친구들의 덕담은 시 프로그램의 유일한 한국인에 대한 친절한 배려였지 싶다. 나중에 보니 그 해 2001년은 한국문학번역원이 출범한 해. 번역원의 지원으로 출간된 시집이 두 권 있었는데, 첫 번째가 김수영, 신경림, 이시영 시인의 시들을 묶은 Variations : Three Korean Poet 였다. 한국시영역에 힘쓴 안선재 수사님Brother Anthony of Taizé과 영문학자 김영무 선생님의 공동 작업이었다.

가끔 시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시 번역을 하게 된 계기를 묻는 분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좋은 시를 알리고 싶어서요. 시는 눈을 뜨게 하는 가장 빠른 길이니까요"라고 답하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더 읽고 더 알고 싶다는 친구들의 말이 번역이라는 '업'을 은연중에 추동한 힘이었지 싶다. 시인이자 비평가로서 번역의 중요성을 강조한 번스틴은 영역 출판된 한국시를 읽게 되면 빠짐없이 그 소감을 전해주셨다. 미국 시인의 눈에 비친 한국시는 리듬감 있는 호흡이 가능한 영역이라고 했던가. 그렇게 나는 고단한 박사논문 집필 단계에서 시 번역을 드문드문 이어갔는데 그 힘은 순전히 시 이야기를 끝없이 되풀이한 친구들의 호기심 덕분이다.

2005년 논문을 마치고 졸업하던 해 이성복의 시집 『아, 입이 없는 것들』의 영역으로 대산문화재단의 번역지원을 받게 되었다. 논문 마무리로 미국에 있던 나를 대신해 남편이 양복을 입고 광화문에 가 축하 꽃다발을 받고 사진을 찍었다. 그때의 느낌은 영어를 모국어로 배우지 않은 내가 한영 번역을 할 수 있을까, 그 의구심에 대해 명분을 얻었다는 기쁨이었다. 그 기쁨은 그러나 너무 짧았다. 이후 오래도록 출판 현실과 마주하며 씨름해야 했기 때문이다. 한국계 미국 시인 명미 김Myung MiKim, 1957~이 함께 토론하며 읽어준 이성복 시의 번역은 빨리 마무리했지만 출판사를 만나는 데 아주 긴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번역을 하고 출판사를 만나지 못하는 당혹감이란! 묵히고 있던 원고는 안선재 선생님께시서 다시 보시고 다리를 놓아 2017년에 미국의 Green Integer 출판사에서 Ah, Mouthless Thing로 나왔다. 번역 2년, 출판 10년이 걸린 일이다.

이 고충은 나만의 것은 아니어서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많은 시와 소설들이 해외 출판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한국 문학의 협소한 영토에 관심을 보이는 출판사가 많지 않아서 한국의 출판사에서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판의 괴리에 대해 생각한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그동안 심보선 시인의 『슬픔이 없는 십오 초』를 영역하여 Fifteen Seconds without Sorrow라는 제목으로 2016년 Parlor Press에서 출판했고, 한국의 시인들 44명을 묶어 편집, 번역한 The Colors of Dawn : Tiventieth Century Korean Poetry (안선재 공역)가 하와이대학 출판부에서 나왔고, 강은교 시인의 『바리연가집』도 Bari Love Song으로 번역 후 곧바로 출판되었다. 다른 일과 마찬가지로 번역 출판도 인연의 일임을 실감했다. 출판사 편집자의 적극적인 기획과 역자의 노력, 독자들의 요청이 맞아떨어져야 번역에서 출판까지의 여정에 마침표가 가능하다. 2000 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한국문학이 번역문학으로서 세계문학 안에 기입되는 과정을 번역 현장의 안과 밖에서 직접 부대끼며 겪어보니, 떠도는 민지 몇 점의 부피에서 제법 묵직한 바위로 성장하는 활달한 변모의 시간대를 지나왔음을 알겠다. 그 현장에 어쩌다 우연히 함께 한 내가 번역가의 업을 갖게 된 조촐한 사연이다. 

2. 영토의 확장과 의미 있는 변화들

2001년 버펄로대학 도서관에서 긴 서가의 비어있는 선반, 먼지 한 점 정도의 부피로 자괴감을 느끼게 한 한국문학의 영토는 최근 20년간 엄청나게 커졌다. 한국문학번역원의 자료에 따르면 2001년 번역원 출범 첫해 번역원 지원으로 출판된 영역 작품은 현대문학 두 권과 훈민정음」이다. 앞서 말한 Variations : Three Korean Poets, 김수영, 신경림, 이시영 시인의 3인 시편들이 코넬대 동아시아 시리즈로 나왔고, 장정일의 시가 Voices in Diversity)란 제목으로 고원 번역가에 의해 번역되었다. 김동리와 천상병의 작품이 불어로, 김수영과 한용운의 시선집과 오정희, 박경리의 소설집이 독일어로 번역되어 나왔다. 이상 시선집도 스페인어로 출판되었고, 그밖에 체코어, 터키어, 이탈리아어 등 다양한 언어권에서 작품들이 출판되었는데, 특히 터키의 오르한 파묵Orhan Pamuk이 그해 노벨문학상을 타면서 터키어로 번역 출간된 『한국문학단편선이 출간 2개월 만에 초판 매진되기도 했다. 소수 언어권에까지 한국문학이 본격 진입하는데는 이런 기획 사업의 몫이 컸다.

한국문학번역원 출범 이후 이전에 대산문화재단에서 큰 몫을 했던 한국문학 번역과 출판 작업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큰 성장을 기록, 해마다 여러 언어권에서 작품들이 번역되고 또 주목받았다. 영어권 번역문학이 미국시장에서 주목받은 것은 김영하와 신경숙의 작품을 통해서다. 김영하의 첫 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가 I Have the Right to Destroy Myself' 라는 제목으로 2007년 Harcourt 출판사에서 나왔고(불역판은 1998년에), 폴란드어, 터키어 등 다양한 언어권으로 확산되었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의 영문판 Please Look After Mom 은 2011년 출간과 함께 아마존 서점 소설 부문 10위에 오르기도 했고, 뉴욕타임스 하드커버 소설 부분 14위까지 올랐다. 김영하, 신경숙의 경우, 한국문단의 지형도에서 대형작가였던 데 비해서 미국 평단의 관심은 생각보다는 저조했던 편이다. 번역문학으로서 한국문학은 영어권의 경우, 한강의 『채식주의자,2007』가 데보라 스미쓰Deborah Smith 의 번역으로 2016년 The Vegetarian 으로 출판되어 영국에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하면서 가장 큰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번역원의 지원을 받은 작품집은 영어권에서만 15권에 이른다. 시집으로 이원의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 이영주의 『차가운 사탕들』, 이설야의 『굴 소년들』, 김근의 『끝을 시작하기』, 황규관의 『호랑나비』, 김성규의 『자살충, 김언수의 『캐비넷』 등이 있고, 소설로는 권여선의 『레몬』,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 황석영의 『수인, 정유정의,『종의 기원』, 최진영의 『해가 지는 곳으로, 문보영의 『책기둥』 등이 있다. 특히 번역가 김소라Sora Kim-Russell와 이정민oungmin Lee Comfort이 번역한 SF작가 김보영의 On the Origin of Species and Other Storio는 지난해 전미도서상 1차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2001년에 8개 언어권 15건으로 시작된 번역이 2010년에는 15개 언어권 53건으로, 2020년에는 26개 언어권 172건으로 확장된 걸 보면 엄청난 성장이다. 보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해외에서 가장 팔린 한국문학 작품은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 한강의 『채식주의자』, 손원평의 『아몬드, 정유정의 『종의 기원』 등인데,특히 『82년생 김지영은 2020년 기준으로 10개 언어권에서 3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고, 영어권에서는 그래픽노블도 큰 주목을 받아 김금숙의『풀Gras」이 2019년, 마영신의 『엄마들Mom, 두 작품이 2020년 연이어 미국의 하비Harvey Award 국제도서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비상은 만화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상이고 모두 재닛 홍Janet Hong의번역이다.

이 자리에서 번역문학의 현황을 다 살펴보기란 불가능하고, 그게 이글의 목적도 아니다.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자면 번역의 양적, 질적 성장과 다변화는 번역가의 충이 두터워지는 변화와 함께 간다는 것이다. 한국문학 번역사에서 번역 첫 세대는 주로 선교사들이었다. 1889년 미국에서 『한국민담집』이 발간되고, 1892년 프랑스에서 『춘향전」이 『향기로운 봄wintere wpfare 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된 후 20세기는 한국문학 번역에서는 실로 척박한 시기였다. 최초의 한국문학 번역가라 불리는게일James Gale은 1888년 YMCA 선교사로 한국에 도착했는데, 1917년에서 1919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The Korea Magazine이라는 월간지를 편집했다. 2020년 버클리 대학UC, Berkeley에 연구교수로 가 있을 때, 그 바로 옆 언덕 위에 위치한 연합신학대학원 Graduate Theological Union에 자주 들러 그 잡지들을 탐독했다. 한국어, 한국의 문화와 문학, 생활상을 세밀히 엿볼 수 있는 귀한 자료였다. 당시 대공황의 여파로 외국에서 출판사를 찾기가 쉽지 않아서 게일은 김만중의 『구운몽』 번역을 오래 묵혀두었다. The Cloud Dream of the Nine이라는 제목으로 1922년 간신히 출판했다 한다. 게일의 번역 이후 1970년 무렵까지는 한국문학 영역이 불행히도, 거의 없었다.

1971년에 선교사 에드워드 포이트러스Edward Poitras가 박두진의 시를 영어로 옮겨 Sea of Tomorrow라는 제목으로 서울에서 출판했고, 시조에 관심이 있던 선교사 리차드 럿트Richard Rutt는 The Bamboo Grove : An Introduction to Sijo를 캘리포니아대학 출판부에서 냈다. 2020년에 작고한 아일랜드 출신 천주교 신부님 케빈 오록Kevin O'Rourke은 시조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 조병화의 시를 번역한 Where Clouds Pass By : Selected Poems of ChoByung Hwa 외에도 우리시를 다수 번역했지만 출판사를 찾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들었다. 지금까지 한국시를 가장 많이 번역한 서강대 명예교수 안선재 수사님은 50여 권이 넘는 시와 소설집을 번역한, 한국문학번역사의 산 증인이다. 케빈 오록과 안선재는 영문학자였다. 1990년대 이후 영미권에서 한국학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한국문학 번역 출판도 더 활기를 띠게 된다. 1992년 대산문화재단의 해외번역출판지원사업이 시작된 것도 이 흐름과 무관하지 않겠다.

한국문학 장에서 그간 고은, 황석영, 이문열 등 소수의 남성 작가들에 몰려 있던 번역 작업이 다른 작가들로 확장된 점도 바람직한 변화다. 고은 시인은 1996년 Morming Dew:Selected Poems로지 수사 번의 와 The Sound of MyWaves : Selected Poems 1960-1990안선재·김영무 공동 번역를 시작으로 16개 언어권, 50건이 넘는 시집들이 번역되었다. 시적 성취도 간과할 수 없지만 노벨상을 의식한 기획 번역이라 해도 무방한데, 해외에서의 반응도 나쁘지는 않았으나 성추행 관련 법정 소송이 알려지면서 한국문학에서 이룬 그간의 문학적 성취만큼이나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게 되었다. 2002년 The Columbia Anthology of Traditional Korean Poetry(Peter H. Lee 번역), 2006년 The Book of Korean Poetry : Songs of Shilla and Koryo(Kevin O'Rourke 번역), 2013 The Crane in the Clouds :Shijo, Korean Classical Poems in the Vernacularo(이성일 번역)등이 고전과 근대문학, 시조 등을 담고 있다면, 김소월, 윤동주, 조지훈, 백석, 박재삼, 조지훈, 백석, 김수영, 문덕수, 김종길, 최승호, 심보선, 이성복, 신용목 등의 시집 번역 외에 2006년 최승자, 김혜순, 이언주의 시를 엮은 Anxiety of Words : Contemporary Poetry by Korean Women 이 최돈미Don Mee Choi의 번역으로 나왔다. 그밖에 최승자, 유안진, 강은교, 김이듬, 김혜순, 최정례, 나희덕 등 여성 시인들의 작품이 영미권에서 반응이 좋다.

번역문학의 성과를 상으로만 말할 수는 없겠지만, 20세기에 영미권에서 홀대받던 한국문학이 최근 여러 번역상을 수상한 것은 짚어 볼 만한 일이다. 미국 번역문학협회가 주관하는 루시엔 스트릭 번역상Lucien Stryk Assian Translation Prive은 2012년 김혜순 시인의 『전 세계의 쓰레기여, 단결하라! All the Cambuy of the Woul, Vinice」에 이어 2020년 김이듬 시인의 『히스테리아 purin」에게 주어졌다. 김이듬 시집은, 제이크 레빈 Jake levin, 서소은, 최혜지 3인의 공동 번역이었는데, 2~3인의 공동 번역은 최근 젊은 번역가들 사이에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2020년에는 이상의 시집이 Yi Sang : Selected Works 로 출간되었고 이 또한 번역가 최돈미 Don Mee Choi, 잭 정uck Jung,엘 맥스위니 lovelle McSweeney의 공역이다. 이 책은 2021년 12월, 미국 현대언어학회 Modern Language Association, MLA에서 주관하는 알도 앤 잔 스칼리오네상 번역문학부문 Aldo and Jeanne Scaglione Prize for a Translation of a Literary Work을 수상했다. 일제 강점기의 우화, 판타지, 풍자, 패러디, 다다이즘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기 세계를 표현한 이상의 작품을 실험성 강한 역자들이 재창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여 년의 시간 동안 번역문학으로서 한국문학은 먼지가 공으로 굴려지는 역동적인 팽창을 거듭해왔다. 그 변화는 작가들과 언어권이 다양해진 점 외에, 역자들이 공동 번역을 통해 번역의 완성도를 높인 점, 과거와 달리 번역문학 보급에 적극적인 해외 유능한 출판사들과의 협업이 뛰어난 점 등을 들 수 있다.

3. 번역문학의 재영토화와 번역의 운동성

이 글에서 번역문학의 영토를 이야기할 때 그 영토는 거점이 고정된공간이 아니라 '움직이는 힘'을 의미한다. 내 요지는 이거다. 번역문학은자국문학을 다른 언어로 변주하여 탈영토화함으로써 세계문학 장을 재영토화한다. 2) 자국문학을 탈영토화하고 세계문학을 재편하는 가능성으로서 한국문학의 운동성을 이야기할 때 여성 시인들의 활약에 주목해 보고 싶다. 김혜순 시인은 2011년 루시엔 스트릭 번역상 외에 2019년 6월에 시집 『죽음의 자서전Autobiography of Death』으로 아시아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캐나다의 '그리핀 시문학상Griffin Poetry Prize,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했고, 2021년에는 스웨덴의 시카다상Cikada Prize을 수상했다. 한국 시인으로는 고은, 신경림, 문정희에 이은 네 번째 수상자다. 2020년 12월 스웨덴 대사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김혜순 시인은 한국시의 스펙트럼이 무척 넓고 깊기에 우주에 비견된다고 이야기했는데, 시상식 후 진행된 인터뷰에서 한국의 여성 시인들이 세계문학의 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여성들은 대부분 거절reject을 당해본 자리에서 시를 쓴다. 철학적으로, 존재보다는 부재의 자리, 거절당한 자리에서 시를 쓴다"고, 절절하다. 위트나 유머가 깔린 시의 기저에 대해서는 “위트나 유머가 없으면 누가 내 말을 듣겠냐”고 했다. 영미시에 풍부한 위트나 유머를 구사하는 한국시인이 많지 않고, 진지하고 감상적인 시가 많은 한국시단에서 시인의 통쾌한 일갈이 좋았다.

김혜순 시인의 시를 '움직이는 힘으로 볼 때, 시 쓰기는 하나의 행위, 특히 수행perform 하는 힘이다. 김혜순 시인의 시는 영미권 시인들의 시 창작에도 영향을 제법 미쳤는데, 가장 직접적으로는 번역가 최돈미Don Mee Choi다. 김혜순 시를 번역하면서 시 창작 의욕이 생겨서 시를 본격적으로 쓰게 되었다고 고백한 바 있으니. 최돈미는 2016년 『전쟁이라고 하기엔 Hardly War』 3)에 이어 DMZ 식민지MZ Colory』로 2020년 전미도서상을 받았고, 이어 미국에서 '꿈의 그랜트'라 불리는 맥아더 펠로우십MacArthur Fellowship에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이 두 시집은 모두 Wave Books에서 나왔는데, 앞서 언급한 이상의 시선집을 낸 출판사다. 번역문학과 자국문학의 경계를 따로 짓지 않고, 장르별 시적 특이성을 내세워 출판사의 독특한 색깔을 구현하는 편집이 그 빛을 보는 사례라 하겠다.

'움직이는 힘'으로 세계문학의 장에 진입하여 이를 재영토화하는 과정은 김혜순 시인이 다른 시인들과 주고받는 영향관계에서도 드러난다. 즉, 번역된 한국시가 영미 시인들의 창조 작업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미국의 한국계 입양 시인 신선영Sun Yung Shin 의 경우 세 번째 시집 『견딜 수 없는 광휘Unbearable Splendor』로 미국 PEN Award 최종 후보로 올라갔는.데, 이 시집이 김혜순의 시에서 큰 영감을 얻었다고 시인이 고백한 바 있다. 이민의 경험을 그리면서 시집은 변화하는 공간을 유영하는 주체의 목소리로 출발과 도착을 중층적으로 겹쳐 사유한다. 부재의 공간을 유영하는 운동성, 그것은 마치 어두컴컴한 공간을 햇살 속에 떠돌던 먼지가 어떤 힘으로 착지하고 다시 뭉쳐져서 구르는 과정과 흡사하다. 운동하는 힘으로 번역문학의 영토를 생각할 때, 작품집이 나오면 그에 대한 서평이나 비평 활동을 더 적극적으로 해 나갈 필요성도 절감한다. 지금까지 번역문학 비평은 원작과 번역을 비교하여 번역에서 상실되고 훼손되는 것을 지적하는 시선이 주가 되었는데, 세계문학의 영토에 번역문학을 함께 놓고 그 자체의 독립적인 미학을 읽어내는 방식이 더 적극적으로 요청된다. 손실은 필연적이고 불가피한 것, 손실 너머에서 살아남는 것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때로 번역문학은 거꾸로 자국문학 비평의 장에 재진입하기도 한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데보라 스미쓰는 이 소설을 번역할 당시 한국어를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기에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수상 직후, 우리 번역평론에서 번역의 창의성과 오역 논쟁이 불거졌다. 수정되어야 할 명백한 오역이 창의성으로 둔갑되기도 하고, 창의적인 번역이 오역으로 이야기되기도 했다. 번역문학을 '후생(afterlife, 이는 벤야민의 용어다)' 의 삶을 사는 문학이라 할 때, 그 후생은 문화적 추이와 변화 안에서 새로운 흐름을 만든다. 해외에서 큰 상을 받은 직후, 도심의 큰 서점 입구에서부터 이 소설이 탑처럼 쌓여있던 풍경이 기억난다. 페미니즘이나 생태비평등을 통해서 『채식주의자가 다시 평가받는 등, 한강이 한국문학 안에서 다시 발견되는 순간이었다. 이처럼 어떤 번역은 작품을 새로 태어나게도 한다. 번역은 그 모든 손실과 훼손 가능성을 지나 독자들을 기어이 만나게 하는 힘이다. 작품의 가치를 알아본 역자와 출판사와의 약속이자 자본과 시간, 문화적 흐름이 함께 개입되는 시스템의 일이다.

4. 불가능한 번역과 번역가의 꿈

번역가로서 나는 영한이나 한영 할 것 없이 작가로서의 자제력을 생각하면서 두 언어 모두에 낯설어지고자 노력하곤 한다. 언어의 결을 날아다니며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목소리를 내지르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고자 하는 것이다. 연구자로서 번역을 바라보고 비판하는 나와 교육자로서 번역하는 내 시선은 원작에의 충성심까지 더해 매우 까다로운 이중의 검열 장치로 작동한다. 부담과 고민에 비례해 번역이 완벽해지지는 않는 것도 딜레마다.

시는 특히 언어로 만들어내고자 하는 의미가 상징이나 은유로 자주 표현되고, 리듬이나 형식, 여러 겹의 의미의 층위를 다른 언어로 대체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인 손실이 발생한다. 원시가 품은 모든 가능성의 층위를 고스란히 겹쳐 살릴 수 있는 대칭 언어를 목표언어에서 찾으면 되겠지만 그건 마법의 영역이다. 번역의 불가능성과 지난함은, 누가 어떤 자격으로 어떤 경로로 번역을 하는 게 맞는지를 자주 묻게 한다. 과거 한국문학 1세대 번역가들은 소수의 역자를 제외하고는 주변의 요청으로 번역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본국에서 먼저 한국어를 배워 한국문화와 문학에 관심을 가져 번역을 하겠다는 이들이 많다. 해외 에이전시 또한 한국문학의 향방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인다. 반가운 변화다. 한국문학 번역아카데미에서 만나는 학생들을 봐도 바뀐 지형도를 실감한다. 가령 2020년 『코리아 타임즈』, 주관 제51회 '한국문학번역상'을 탄 마토Mattho Mierdersion 라는 네덜란드 청년은, 태권도가 너무 좋아 옥스퍼드대학에서 한국학을 공부하고 한국에 와서 번역가가 되었다. 지난 학기 번역아카데미 번역 실습 시간에 만난 학생들은 미국, 이탈리아, 싱가포르에서 왔는데, 모두 좋아하는 한국 시인이 있다. 이 활달한 개성이 앞으로 새로운 번역문학의 영토를 만들게 될 것이다.

약속한 분량을 넘겨 쓰면서도 한국문학 영역의 현장을 다 담지 못했다. 길문을 단순하게 바꾸며 글을 마칠까 한다. 번역문학의 영토는 정말로 어디에 있는기? 번역시집의 경우 2쇄로 넘어가기 쉽지 않을 정도로 객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은 세계분이 상에서 한국문학을 유영하게 하녀면 무엇이 필요일까? 1 가능성이란 가령, 이런 거다. 내가 복별히 소중하게 생각하는 번에 시가 하나 있는데, 최성 시인의 시 『캥거루는 캥거루나 나는 나』다. 몇 년 전, 미국의 시 읽기 행사 후에 만들어진 동영상이 Youtube에 올라 있어 심심할 때면 가끔 “Kangaroo is Kangaroo, I am I"로 검색해본다. 2022년 1월 17일 현재 2,998회 조회 수를 기록한다. 이런 방식의 새 영토 또한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독자들을 만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소수 언어로 창작된 작품을 영역하면서 똑같은 리듬과 느낌을 기대할 수는 없다. 번역이 불가능한 요소들을 언어적 지역성의 한계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창조적인 번역에 도전하는 역자들의 시도를 지속적으로 독려하는 것도 중요하다. 다른 언어의 옷을 입혀서도 살아남는 무언가로시의 독자를 만날 수 있다면, 그 작업은 영미권 평자나 독자들에게 인정받아야 한다는 인정 욕구가 아니라, 한국문학을 한국이라는 공간에서 끌어내 세계문학의 자장 안에 새롭게 재영토화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이 글은 한국문학의 세계화라는 거창한 명제를 의도적으로 피하려고 번역가로서의 내 자리를 점검하며 썼다. 세계화라는 어떤 기준점이 아니라, 세계 안에서 다른 자장을 만드는 한국문학의 움직이는 힘을 선보이는 것, 그것이 시 번역가로서 잊지 않으려고 하는 번역문학의 의미이자 번역가의 꿈이다.

정은귀 저서로 『바람이 부는 시간』, 한영 시집 역서로 Fifeem Seconds Without Sorow(심보선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 영역), Ab, Mouthblas Thing(이성복 시집 『아, 입이 없는 것들』 영역), Bani Love Song(강은교 시집 『바리 연가집』 영역), 영한 시집 역서로 앤 섹스턴의 『밤에 더 용감하지』, 크리스티나 로세티의 『고블린 도깨비』 시장,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의 『꽃의 연약함이 공간을 관통한다』, 『패터슨』 등이 있다. 
echung@hufs.ac.kr

1) 번역원의 모태는 1996년 재단법인 한국문학번역금고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1년에 한국문학번역원이 출범함으로써 2000년대 이전까지 대산문화재단 등 한국문화의 힘을 소중히 여기는 민간기관의 도움으로 주로 이루어지던 한국문학번역 사업을 번역과 각종 교류 사업으로 확장하여 한국문학을 세계문학 안으로 이입하는 데 번역원이 큰 역할을 했다. 최근에는 번역원 산하 한국문학번역아카데미에서 다양한 언어의 번역가를 양산하고 있으며, 번역아카데미를 거쳐 간 수많은 번의 지망생들이 실제로 지금 활발하게 책을 피내고 있는 전문번역가가 되었다.

2) 여기서 탈영토화/재영토화'라는 용어를 쓸 때 필자는 들뢰즈(Gilles Deleuze)의 소수의 문학 (Minor literature) 개념, 차이와 생성의 문학론에서 지주 거론되는 'deterritorialization'과 'ireterritorialization'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이 글에서 이론적인 작업은 하지 않으려 한다.

3) 어느 기사에 “전쟁이 일어나자마자”로 잘못 소개된 시집 Hardy War는 “참혹한 전쟁"이기도 하지만, 잊혀진 전쟁을 연약한 언어로 되살려내는 작가의 미학적 기제를 살려서 전쟁이라고 하기엔"으로 번역했다. 전쟁이라고 하기엔 너무 참혹하고 너무 미미한 그런 전쟁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