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답하다
리터러시

혐오시대의 문학의 미래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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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의 서점에서 바라본 혐오시대의 풍경

정확히 언제부터였을까. 일본의 서점에서 혐오 서적을 마주치는 게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일이 되었다. 일본에 출장이 있을 때마다 들르는 어느 대학 구내 서점에서 처음 혐한 서적을 맞닥뜨렸을 때 느꼈던 서늘한 당혹감이 아직 기억에 선명하다. 그래, 상업적 이윤을 우선하는 체인형 서점은 그렇다 치더라도, 지성의 요람'을 자처하는 대학의 구내 서점에서 원색적인 혐오 서적이라니 너무하는 것 아닌가? 일렁이는 가슴을 안고 다른 쪽으로 발길을 돌렸을 때, 같은 서점 한 편에서 내 시선을 붙든 것은 가지런히 진열된 한국문학 번역서들이었다. “여기에 날 선 폭력의 인어와는 다른 언어가 있어” 하고 다독이 버티고 선 책들, 이것이 혐오시대의 한일 문화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풍경이다.

서점에 진열된 책들을 그 자체로 한 사회를 비추는 자화상이라고 한다면, 사실 이는 2010년대 이후에 등장한 새로운 풍경이다. 더 정확히 말해 일본에서 혐한 서적의 효시는 2005년에 출간된 『만화 혐한류/ マンガ 嫌韓流, 晋遊舎』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혐한/반중 서적이 하나의 장르로 인식될 만큼 붐을 이루게 된 것은 2010년대 들어서이다. 붐은 '헤이트 스피치'가 유행어 대상에 선정된 2013년 무렵 정점을 찍고 이후로는 하향세를 그리다가 2017년 몇몇 베스트셀러를 계기로 다시 부상했고, 그 사이 '헤이트 책ヘイト本’이라 불리는 혐오 서적은 전국의 크고 작은 서점들을 잠식해 갔다. 서점 애호가들 사이에서 혐오 서적 때문에 책방에 가는 것이 더 이상 즐겁지 않게 되었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까닭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와 거의 동시기에 일본의 서점에서 한국문학이 처음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사실은 흥미롭다. 그간 뜻있는 소수의 번역자와 출판사들에 의해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양적으로는 미미한 수준에 머물렀던 한국문학의 번역출판이 최근 3~4년 새 급증한 것이다. 이제는 한국문학 코너가 서가에 따로 마련될 만큼 성장한 'K-문학의 수용에는 여성 독자층의 지지가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일본에서 한국 소설로는 처음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반응에서 보여지듯이, 이른바 'K-문학의 일본 수용은 여성혐오에 대한 반동과 연동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다시 말해 '혐오(혐한) 서적 붐'과 'K-문학붐'이라는 일견 모순되어 보이는 동향의 근저에는 혐오와 반혐오의 정동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기실 혐오는 비단 일본 출판계의 문제만도, 혹은 일본 사회의 문제만도 아니다. 지구촌을 빠르게 휩쓴 초국적 #MeToo 운동의 물결과 팬데믹 상황에서 한층 더 노골화된 형태로 표출된 인종 혐오와 외국인 혐오까지.혐오 정동의 확산은 이미 전 세계적 화두가 되었다. 이 글에서는 지금 여기,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혐오시대 번역문학의 가능성을 묻고자 한다.

2. 혐오 정동과 혐한/반중 서적의 유통 사이

먼저 하나의 질문을 던지는 데에서부터 출발해보기로 하자. 체인형 대형서점과 작은 동네 책방을 막론하고 일본의 서가를 잠식해간 혐오 서적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언뜻 생각하기에는 혐오가 있다면 그것이 표출된 서적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지만, 실제로 한 권의 책이 만들어져 서가에 진열되기까지는 많은 사람들의 의도적인 선택과 손길을 거쳐야만 한다. 따라서 혐오 정동의 확산과 혐오 서적의 유통 사이의 연관을 이해하려면 출판업계의 구조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프리랜서 편집자이자 라이터인 나가에 아키라가 『나는 책방을 좋아했었습니다 - 범람하는 혐오 서적, 만들어 팔기까지의 무대 뒤』에서 조명하는 것은, 혐오 서적이 출판되어 서가에 진열되기까지의 과정이다. 나가에는 라이터, 편집자, 출판사, 유통 매개자, 서점의 점원까지, 혐오 서적이 유통되는 각 단계에서 이에 관계된 이들을 차례로 인터뷰해 나간다. 이를 통해 그가 발견하게 된 것은, 일본의 출판계가 '아이히만들로 가득하다.는 현실이다. 독일 출신 유대인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일찍이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에 관여한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보면서 그가 특별히 신념에 찬 흉포한 '악마가 아니라 맡은 일을 담담히 수행할 뿐 그 일의 의미에 대해 사유하지 않은 평범한 인물이었음을 발견했듯이, 나가에가 혐오 서적의 추적 끝에 마주한 것 역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 이었다.

나가에에 따르면, 혐오 서적의 무분별한 확산은 일본의 독특한 서적 유통 시스템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일본의 출판시스템은 출판사, 유통사取次, 서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특히 유통사의 역할이 큰 것이 특징이다. 일본 출판업계의 관례상 출판사가 서점으로부터 직접 주문을 받아 책을 출하하는 것이 아니라, 양자 사이를 중개하는 유통사가 각 서점의 규모와 입지, 과거 판매 실적을 바탕으로 점포별로 배본本할 책들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전국의 서점은 이처럼 자신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반자동적으로 입하된 서적들에 일단 대금을 지불하고, 필요시에는 반품 절차를 거쳐 환급받게 된다. 이러한 방식은 출판사와 서점 상호 간에 경영 리스크를 최소화한다는 목적에 비추어볼 때 나름의 합리성을 지니지만, 이는 서점의 의향이 서적의 유통 흐름에 반영되기 어렵고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기 쉬운 구조라고도 할 수 있다.

혐오 서적의 경우, '붐'이라는 말이 주는 떠들썩한 인상과는 달리 실제 구매자는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기는 했으나, 불황에 접어든 출판계에서 혐한/반중 서적은 큰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고 일정한 수요를기대할 수 있는 상품으로 받아들여졌다. 현장에서 책을 판매하는 점원들은 대개 적극적으로 혐오 서적을 추천하지는 않는다. 다만 입하된 책들을 무비판적으로 매대에 진열할 뿐이다. 그렇게 혐오 서적은 결코 자랑스럽지는 않지만 바쁘게 지나가는 일상 속에서 눈감을 수 있는 '치부'로,때로는 기울어져 가는 출판업계의 수지를 지탱하기 위한 '필요악'으로간주되었고, 이를 도태시키고자 하는 적극적 행동이 따르지 않는 사이에증식해 간 것이다. 반한/반중 언설을 사회적으로 용인하는 분위기를 조성한 매스미디어의 책임도 작지 않다.

서둘러 덧붙이자면, 물론 일본의 출판계에는 자성의 목소리 역시 존재한다. 가장 선두에 서서 혐오 서적에 대한 대항운동을 이끌어온 이들로는, 2014년에 결성된 '헤이트 스피치와 배외주의에 가담하지 않는 출판관계자 모임ヘイトスピーチと排外主義に加担しない出版関係者の会'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출판업자, 편집인, 서점 종업원 등 출판업계 관련 종사자들이 모여반인종주의/반배외주의'를 기치로 내걸고 조직된 이 단체는, 배외주의적, 인종차별적인 서적의 철거'를 목표로 활동 중이다. 이들은 심포지엄개최, 반혐오 서적의 발간 등을 통해 타민족과 소수자를 향한 적대감을선동하는 언설에 대항하기 위한 사회적 경각심과 출판업계의 책임의식을 촉구하고, 혐오 서적의 범람에 맞서 행동하고 있다.

또한 혐오 표현에 맞서기 위해 서점의 사회적 역할을 회복하자는 취지1)에서, 후쿠시마 아키라는 서점 공간을 '언론의 아레나arena'로 만들자고 제안한다.2) 고대 로마에서 격투가 벌어지고 관객이 이를 관람하던 투기장鬪技場을 뜻하는 아레나처럼, 서점을 다양한 시각과 목소리들이 격돌하는 장으로 만들자는 이야기다. 혐오 표현을 담은 서적의 유통을 제도적 개입을 통해 금지시키는 것은 즉각적 효과가 있지만, 이는 선별 기준이 모호할 경우 자칫 부메랑으로 되돌아와 표현 활동을 옥죄일 수도 있다. 일본 헌법에 명시된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표현의 윤리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혐오 서적을 법적 규제를 통해 막기보다는 반혐오 서적을 함께 배치함으로써 대항담론의 힘으로 혐오의 확산을 막아내는 것이 최선책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처럼 서점을 다성多聲적 공간으로 만들고자 하는 대항적 움직임들은 분명 고무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누구를 위한 아레나인가? 나가에 아키라는 헤이트 스피치에 위협을 느껴 일본 밖으로 이민을 갈 수밖에 없었던 한 재일조선인 여성의 사례를 들면서, 당장 상처 입고 신변의 위협을 받고 있는 이들의 존재 앞에 '언론의 아레나가 충분한 대안이 될 수 있는지를 묻는다. 당사자인 소수자의 입장에 선 상상력이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

3. K - 문학' 과 여성혐오에 맞서는 연대의 언어

최근 몇 년 새 일본의 서점들에 한국문학코너가 등장한 것은 이러한 가운데서였다. 일본에서 'K-문학에 대한 수요는 두 가지 사건'을 통해 가시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잘 알려졌다시피, 일본의 'K-문학' 수용에 마중물 역할을 한 것은 단연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한국어판 2016년)이다. 한국에서도 100만 부 이상이 팔리면서 하나의 사회현상이 된 이 소설의 일본어 번역판은 2018년민 사『82년생 김지영』, 민음사, 2016. 12월에 출간되었다. 발매와 동시에 아마존 저팬 사이트에는 한국인 유저가 쓴 것으로 보이는 리뷰가 다수 투고되고 1점과 5점으로 평점이 크게 갈렸다는 흥미로운 일화는, 초국적 문학장의출현을 실감케 한다. 그러한 가운데 일본어판은 이틀 만에 2쇄, 나흘 만에3쇄가 결정되는 이례적인 속도로 팔려나갔고, 그 후 발매 한 달 만에 5만부, 2년 만에 20만 부를 돌파했다. 번역자 사이토 마리코齋藤真理子조차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뜻밖의 반향이었다.

그 불씨를 이어받은 것은 문예지였다. 『82년생 김지영』의 일본어판 출판 이듬해인 2019년 가을, 일본의 주요 문예지 가운데 하나인 『분게이公」는 '한국·페미니즘 일본'이라는 타이틀의 특집호를 기획해 한국 작기들로부터 작품을 받아 게제하고, 한국문학에 익숙지 않은 독자들의 이해를 도울 수 있는 대담과 에세이를 함께 배치했다. 한국과 일본 양국 작.가들의 이름이 일본어와 한글로 나란히 인쇄된 표지로 디자인된 이 특집호는, 2019년 7월 5일 금요일에 발매되자마자 그날부터 추가 주문이 쇄도해 주말을 끼고 월요일에는 이미 초판 재고가 소진되었고, 나아가 일주일 만에 3쇄를 찍는 유례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3쇄는 1933년 잡지가 창간된 이래 86년 만에 처음이었을 뿐만 아니라 증쇄도 17년만의 일로, 이는 출판업계의 침체가 지속되던 일본에서 문학계를 넘어 큰 화제를 모았다.

『82년생 김지영』과 『분게이』 특집호의 사례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일본의 K-문학' 수용의 밑바탕에는 무엇보다 여성혐오 이슈를 둘러싼 공감대가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글로벌한 #MeToo운동의 확산과 더불어, 일본에서도 82년생 김지영』의 번역판이 출간된 2018년에는 각종 성폭력 사건과 각계에 만연한 성차별적 관행이 발각되면서 사회적인 이목을 끌었다.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일본 독자들의 공감은, 이러한 사회적 사건들을 거치면서 반복적으로 드러난 일본사회의 성차별적 현실에 실망했던 독자들이, 조남주의 소설이 그려내는 한국 여성들의 현실이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데 대해 동질감을 느끼고 반응한 것으로 풀이된다. 물론 이를 반대로, 『82년생 김지영』의 서사가 독자들의 공감을 효과적으로 이끌어 냈다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번역자인 사이토 마리코가 이 작품에 대해 누구나 자신의 경험을 투영하고 공감하며 읽을 수있는 '템플릿(형) 소설'이라고 평했듯이, 여성이 일생동안 일상적으로겪는 어려움들을 콜라주처럼 엮어서 펼쳐내는 이 소설의 서사구조는 독자의 감정이입을 용이하게 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 『분게이』를발행한 가와데쇼보신샤山書房는 2019년 가을 특집호에서 파생된 단행본으로 『완전판 한국·페미니즘 일본과 『소설판 한국·페미니즘 일본』을 출간했다. 이후로도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이어진 한국문학의 소개와 수용에서 '페미니즘과 더불어 키워드가 되고 있는 것은, '공감'과 '연대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여성혐오는 국가 간 경계를 넘어 여성들을 묶어내는 계기로도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반反-여성혐오'의 공감대 외에도 일본의 K-문학' 붐에는 여러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판단된다. 우선, 'K-문학' 붐은 준비된 바탕 위에서 가능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1970년대부터 수는 적지만 꾸준히 한국문학이 번역되었고, 그러한 흐름 위에서 2015년에 박민규 『카스테라』가 제1회 일본번역대상을 수상했다.3) 이 작품은 일본의 독자들이 한국문학에 대해 갖고 있던 기존의 이미지 - 무겁고, 진지하고, 격조 높은 를 깨는 유머러스하고 세련된 문체를 통해 한국문학에 대한 독자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다. 2011년부터 쿠온 출판사가 간행을 시작한 '새로운 한국문학 시리즈'의 첫 작품으로 번역 출간된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2016년 아시아인 최초로 맨부커상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한 것 역시 순풍으로 작용했다. 또한 “K-POP' 다음은 'K문학”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처럼, 그간 한류를 통해 축적된 문화적 친밀감과 'K컬쳐'의 팬덤도 문학 수용의 토대가 되었다. 이처럼 꾸준히 쌓여간 문화 교류의 토양 위에서, 앞서 언급한 두 사건이 'K-문학붐의 기폭제로 작용한 것이다.

한일 간에 상호 번역되는 문학작품의 양적 편차가 가까운 시일 내에 시정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되었던 기존의 예상을 뒤엎고, 위와 같은 독자들의 지지에도 힘입어 현재 일본에서 한국문학의 번역 소개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한국문학을 출간하는 출판사와 번역자 수 역시 가파르게 증가하는 추세로, '한국 최초의 페미니즘 소설 집을내건조남주 외 『현남오빠에게 의번역출간藤真理子 역, 白水社, 2019을 비롯해, 한강, 정세랑, 황정은, 최은영, 김초엽 등 한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작가들의 신간이 이제는 거의 시차를 두지 않고 곧바로 번역되어 소개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근현대문학 선집 시리즈와 같이, 상대적으로 독자의 진입 문턱이 높은 작품의 번역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국내 어느 서점에 '김지영이 하루키를 넘어섰다'는 선전 문구가 등장했다는 일화가 상징하는 것처럼, 일본문학을 한국이 일방적으로 수입하던 판도가 처음으로 바뀌고 쌍방향으로 유통되기 시작한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두고, 쿠온출판사 대표이자 K-BOOK 진흥회 전무이사인 김승복은 한 국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현지 분위기를 전한 바 있다. “10년 전만 해도 일본 대형서점에 한국문학 관련 코너가 아예 없었는데, 지금은 서점 대부분에 한국 섹션이 있어요. 동시에 서점매대 앞쪽에 진열돼있던 '혐한嫌韓’ 관련 책은 많이 사라졌죠. 문학이 '혐한을 밀어내고 있다고 할까요.5) 물론, 한국문학의 번역이 늘어난다고 15해서 단순히 이와 정비례하듯 혐한 서적이 줄어드는 것은 아닐 것이다. 2013~4년과 2017년에 두 차례 부상했던 혐한/반중 서적 붐은 이제 '일본 예찬 서적日本札贊本’ 붐으로 옮겨갔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여전히 서가를 차지한 혐오 서적 옆에서 한국문학의 번역서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K-문학의 번역이 에세이, 'K-페미니즘', 반혐오 및 인권 관련 인문서적의 번역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최근 동향은, 그러한 의미에서 더욱 주목된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 뒤돌아서서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일본이 읽는'K-문학'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4 'K-문학', 번역문학, 세계문학

일본의 한국문학 수용을 바라보는 국내 언론들은 들뜬 논조로 승전보를 전했다. 이에 대한 반응들은 '82년생 김지영』의 판매 호조를 반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를 의아하게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한 궁금증은 종종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표출된다. “왜 일본에서는 『82년생 김지영』은 잘 팔리는데 #MeToo는 인기가 없는가?" 이러한 질문의 이면에는, '젠더 이슈의 사회적 의제화에 실패한, 혹은 『82년생 김지영』으로 상징되는 문화자본을 갖지 못한 일본에 대한 우월감이 내비치기도 한다. 하지만 조경희가 정확히 지적하듯이 “한류나 K문학으로 한일 간 문화적 위계질서의 역전을 자부하는 국민주의적 욕망은 페미니즘과 정반대에 있는 것5)일뿐더러, 번역문학 수용의 실상은 선형적linear 시간축만으로는 포착되지 않는다.

문예지 『분게이』의 '한국 · 페미니즘 · 일본 특집호', 2019년 가을에 게재된. 사이토 마리코와 고우노스 유키코 鴻巢友季子의 대담 「세계문학 속의 이웃-기도를 함께하기 위한 ‘우리들 문학」은 일본에서 K-문학'이란 어떤 의미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각각 한국문학과 영어권 문학의 번역가로 일본에서 높은 인지도를 지닌 사이토와 고우노스는 이 대담에서 『82년생 김지영』의 번역판에 대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권 소설이 일본에서 이 정도로 많이 팔린 것은 처음있는 일이라고 놀라움을 공유하면서, 그렇지만 일본문학에도 페미니즘적 주제는 존재해 왔다는 점을 지적한다. 두 번역가는 한국에도 다수의 작품이 번역 소개된 무라타 사야카村田沙耶香를 비롯해 가와카미 미에코, 마쓰다 아오코 등의 동시대 작가들을 그러한 사례로 들면서, 그렇다면 “일본의 근현대문학에는 없고 『김지영』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화두를 제기하고, 다음과 같이 대담을 나눈다.

고우노스 : 이 책이 일본에서 팔린 것은, 한 가지는, 역시 번역 작품이기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인공 김지영과 같은 세대의 일본인이 '이건 내 얘기다' 하고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건 번역이라는 언어조작이 한 단계들어가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사이토 : 맞는 말입니다. 이건 ‘김지영'이기 때문에 모두 읽으려 하는것이지 '사토 유미코면 안 되는 것이죠.

고우노스 : 네? 사토 유미코?

사이토 : 1982년에 일본에서 태어난 여자아이 이름으로 가장 많았던것이 유미코라고, 번역서를 출판한 지쿠마쇼보가 조사해서 알려줬습니다.그리고 가장 많은 성이 사토니까, 김지영의 일본판은 사토 유미코인 것이죠. 『김지영』에서는 등장하는 여성들은 모두 이름이 있는데 남성에게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사토 유미코, 어머니 사토 유키코, 아버지'라고 되어 있었다면 거기서 이미 위화감을 느끼고, 특히 남성독자는 읽는 것을 그만둘 거라 생각해요. ‘김지영, 아버지'니까, 남성에게 이름이 없다는 점을 특별히 의식하지않을 수 있는 것이죠. 번역이라는 것은 조금 판타지가 섞이는 감각이 있죠.

고우노스 : 정말 그렇습니다. 다른 언어로 번역된 시점에서 일종의 신비성, 불가시성을 획득하죠. 그게 독자를 붙드는 효과가 있어서, 그냥 지나쳐버리지 않게 되는 거죠. 사토 유미코를 주인공으로 하고 일본을 무대 삼아서 동일한 이야기를 일본의 여성작가가 썼다면, 아마도 편집자에게 지적을 받아 고치게 되었겠지요. 이야기 구조도 메시지도 표현도 너무 직설적이니 조금 비틀어주세요, 라든지(웃음). 그러니까 『김지영』은 원래 일본어로 쓰이고 싶었지만 일본어로는 쓰이지 못한, 혹은 앞으로 쓰여질 작품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번역작품도 일본문학의 일부라고 할 수 있지요.6)

다시 말해, '번역문학'이 가능하게 하는 거리감의 확보가 문학은 '너무직설적이지 않게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는 (일본문학의) 미학적 규범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게 출판을 가능하게 하고, 일본문화에 내재한 문화적/젠더적 규범을 내면화하도록 규율되어온 독자들이 안심하고 작품을 읽을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번역 작품도 일본문학의 일부”라는 고우노스의 발언은, 문학작품이 고정된 의미나 가치를 담보한 채 다른 문화권으로 전파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번역되어 수용되는 과정에서 주체적으로 전유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전유는 번역될 작품의 선별에서부터 번역 행위, 개별 독자의 독서 행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단계에서 작동한다고 보아야 한다.

이는 발터 벤야민 Walter Benjamin 이 이야기한, 원작이 번역을 통해 가지게 되는 사후적 삶afterlife 6) 이다. 문화번역의 관점에서 본다면, 문학 텍스트가 원천문화source culture를 떠나 목표문화arget culture 로 나아가는 문화횡단의 여정에서 어떠한 탈로컬화와 재로컬화를 거쳐 새로운 독자와 관계 맺게 되는가를, 번역된 텍스트가 목표문화 내에서 생산하는 문화현상들까지를 포함하여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K-문학'이 수용된 일본 고유의 맥락과 주체적 전유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답은 포스트 페미니즘과 젠더 백래시 상황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1970년대 우먼리브 운동, 1980년대 대학 내 여성학 창설, 1990년대 젠더연구의 성립으로 요약되는 일본의 페미니즘 운동은 제도적으로는 남녀고용균등법1985, 남녀공동참획사회기본법1999, 여성활약추3진법2015 제정 등으로 일정 부분 결실을 맺게 되지만, 이는 동시에 보수진영으로부터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를 초래했다. 또한 2000년대 이후에는 여성들 스스로가 페미니즘으로부터 거리를 두려는 경향 역시 두드러 1지게 나타났다. 여성차별은 해결되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페미니즘이 응집력을 잃게 되는 역설적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이에 덧붙여 아카데미즘과 강하게 결부된 페미니즘의 이미지 - 페미니즘은 “중산층 고학력 여성의 전유물” - 가 정착되면서, 페미니즘은 대중적 기반을 상실해갔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일본의 페미니즘이 사회 변혁을 효과적으로 추동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최근 젠더 이슈를 둘러싼 목소리를 매개하는 중요한 통로 가운데 하나로 떠오른 것이 'K-페미니즘과 결합한 'K-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일본에서의 K-페미니즘 문학의 수용은 일본형 페미니즘의 전개 속에서 생겨난 공백, 즉, 페미니즘적 문제를 이야기하기 위한 일상 언어의 부재에 부응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82년생 김지영』)을 읽고 내가 경험해온 것들이 사회문제였음을 깨달았다”고 리뷰를 남긴 어느 일본 독자에게 있어서 독서 경험이란, 'K-문학을 언어적 자원으로 삼아 세계를 새로이 '번역' 해가는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일본어판 뒤표지에 그려진 거울 이미지는 의미심장하다. 번역문학이란 타문화와 동시에 자문화를 비추는 거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번역문학을 읽는 독서행위는 거울을 보는 행위와도 닮아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 내에서 한국문학은, 번역자와 독자층, 소개되는 작품의 폭이 확대되면서 다양한 독자 수요에 응답할 수 있는 작품 목록이 갱신되어가는 한편으로, 페미니즘적 공감대를 번역 수용의 큰 동력으로 삼고 있다. 1990년대 한국의 독자가 한국소설에 부재하다고 여겨지던 스토리텔링의 재미를 일본소설에서 발견하고 이에 호응했다면, 지금 일본의 독자는 정체된 사회 현실 앞에 이제는 잃어버린 역동성을 한국이라는 타자를 통해 (재)발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문학번역원의 통계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출간된 한국문학 가운데 해외에서 가장 많이 팔린 작품은 82년생 김지영』으로, 10개 언어권에서 30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다. 7) 이는 조남주의 작품이 세계 출판시장에서 이뤄낸 쾌거이자 'K'가 거둔 성과로서 회자된다. 하지만 이제는 더 많은 독자를 얻게 된 한국문학의 번역문학을 'K'라는 틀로 이해하는 것으로 충분할까?

근래 활발해진 세계문학 논의의 대표적 논자인 데이비드 댐로쉬Pavial Damrosch는, 세계문학이란 “번역을 통해 풍부해지는 글쓰기 witing that gainsin translation”라고 정의내린 바 있다. 번역을 통해 의미의 손실이 일어날 경우 그 작품은 국민문학이나 지역문학 내부에 머무르는 반면, 작품이 번역될 때 의미의 손실보다 증가가 일어나면 세계문학이 된다는 것이다. 댐로쉬의 정의에 비추어볼 때, 이미 29개 언어로 번역되어 여러 갈래의 '사후적 삶을 지니게 된 『82년생 김지영』은 우리 시대의 새로운 세계문학으로 꼽힐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세계문학은 그것이 한 작품의 원천문화에 관한 것인 만큼이나 항상 목표문화의 가치와 필요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8)는 의미에서 더욱 그러한데,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해외 독자의 반향은 그것이 그려내는 여성의 삶이 이미 지역적임과 동시에 세계적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한 의미에서 '82년생 김지영의 '세계문학화는 혐오시대의 현실이 야기한 동시대적 불안과 고통에 기대어 있다.

다른 한편으로 한국문학 작품의 세계문학화를 가능케 한 것은 출판 및 유통 시장의 세계화이다. 문학의 자본화와 상품화가 유례없이 진행되는 가운데, 일본에서의 'K-문학 붐' 역시 판촉과 소비에 의해 지탱되는 측면이 있다. 'K-문학 붐의 이면에는 시장 축소에 고민하던 일본의 출판업계가 1970년대 후반 라틴아메리카 문학 붐, 1980년대 후반 미국문학붐 이래로 팔리는 해외문학 상품으로 한국문학을 반기고 있다는 사정도 자리한다. 곧바로 상기되는 것은, 일본 내에서 과거 일시적으로 일었던 J-문학 붐'이다. 1990년대 후반 버블경제의 붕괴로 일본의 출판업계가 불황에 빠진 가운데 침체된 출판 경기에 대한 돌파구를 찾기 위해 J문학 붐을 기획했던 곳은, 다름 아닌 K-문학 붐의 주요 발원지인 『분게이』 이기도 하다. 하지만 실체가 모호한 J-문학'이라는 카테고리화에 대한 반발과 야유도 제기되어 J 문학 캠페인은 결국 단기간에 그쳤다. 이와 마찬가지로 'K-문학' 역시 소비성 붐에 그칠 가능성도 있다.

해외 시장에서의 'K-문학의 약진을 보도하는 미디어 기사들은 판매부수와 선인세 기록을 경신했음을 전하고, 시장에서의 승리는 곧 문화적자부심의 원천으로 환산된다. 'K-문학은 이제 세계 시장에서 각광 받는한류 문화상품의 하나로 추가되었다. 그런데 어느새 일상화된 'K'의 범람은 우리의 무엇을 반영하는 것일까? 한껏 고양된 'K' 자찬 담론은 일본에서 '혐오 서적의 자리를 대신한 '일본 예찬 서적의 논조와 어쩐지 닮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K-문학 붐'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기뻐해야 할것은, ‘세계적으로 입증된 문화적 위상'이 아니라, 결코 경쟁과 시장의 논리로는 치환되지 않는 번역 불가능한 경험들을 지닌 타자와 조우할 수있는 새로운 통로를 얻게 되었다는 것이어야만 할 것이다. 혐오시대에번역문학이 지닌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은 동시대적 아픔을 공유하고 다양한 삶의 경험과 감정의 결을 지닌 타자와의 대화의 공간을 열어가는것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그럴 때 비로소 번역문학은 혐오와 배외주의에 맞서 연대의 가능성을 꿈꿀 수 있을 것이다.


김지영 
일본 근현대문학을 연구하며 한국문학을 일본어로 번역하고 있다. 
역서로는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공역) 등이 있다. 

1) 2014년 7월 4일에 「협중·증한(韓) 서적과 헤이트 스피치-출판물의 제조자 책임을생각하다」라는 심포지임을 개최하고, 그 내용을 담은 서적 혐오! 출판의 제조자 책임을 생각하다(出版① 考)』 (CB), 2014)를 출간했다.

2) 福嶋聡, <書店と民主主義 言論のアリーナのために>

3) 일본에서 한 해 동안 발표된 빈의 작품 기운데 “기장 상진()하고 싶은 작품에 수여되는 상으로, 수많은 독자로부터 후보지을 추천받아 번역가들로 구상된 심사위원회가 수상작을 선정한다.

4) 「"문학이 혐한 밀어낸다"………日서 ‘K-북 페스티벌' 김승복 대표」, 『중앙일보』, 2021.11.17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241934

5) 조경희, 「동시대적 정동과 번역 불가능한 신체성 - 일본에 파급된 'K문학'과 페미니즘』, 『문학과 사회 하이픈』, 2020 여름호, 96쪽.

6) 발터 벤야민, 최성만 역, 번역가의 과제」, 『인어 일반과 인간의 인어에 대하여/번역자의 과제외, 길, 2008, 124쪽.

7) 「'82년생 김지영', 최근 해외서 가장 많이 팔린 한국문학」, 『연합뉴스, 2022.1.18, https://www.yna.cokr/view/AKR20220118041700005

8) David Davrosch, Whatis World Literature?, Princeton :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3, p.281.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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