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생태학적' 혹은 '생태계'란 용어는 본래의 생물학적 의미보다는 사회경제적 맥락에서 확장된 의미로 더 널리 사용되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검색엔진 네이버에서 '생태계'라는 단어로 기사들을 검색해 보면, 2009년도엔 '교란' '파괴' '종'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연관돼 있었으나 약 10년 후 현재는 '조성' '혁신' '산업'이라는 단어가 가장 연관성이 높은 단어로 뽑혔다. '유기적'이란 생물체에서 유래한, 그래서 탄소를 포함한 물질을 의미하지만, 대중들이 이 용어를 일반적으로 사용할 때는 '인간의 간섭이 적고 자연 친화적인' 혹은 '기계론적/환원적인 사고와 대치되는 생물학적이고 경계가 명확치 않은'이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이와 유사하게 '생태적', '생태학적' 혹은 '생태계'란 단어도 '유기적'이라는 용어만큼이나 모호하고도 중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인류의 기계문명에 반하고 경제성장 중심의세계관에 반하는 철학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개념이 자리 잡게된 것은 생태학이 다루는 대상물이 개체 이상의 수준에서 생물 간 혹은 생물과 환경 사이의 '상호작용'을 다룬다는 점에 기인한다. 생태학이 일반적인 생물학의 환원적인 접근법에 반대하고, '창발성emergence'에 방점을 둔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그러나 생태계ecosystem란 용어를 처음 세상에 알린 아서 탠슬리 Arthur Tansley는 사실 생태학의 이러한 모호하고 신비주의적인 이해를 우려하며 이 개념을 도입한 것이라는 점에서 참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그 역사적 발전과정과는 별개로, 이 글에서는 생태학이란 학문을 통해 얻어진 지식을 우리가 직면한 환경문제들의 해결에 어떻게 적용 가능할지에 대한 몇 가지 함의를 공유해 보고자 한다.
순환과 균형
생태계 연구의 핵심 주제 중 하나는 '물질순환'이라는 연구 분야다. 지구상에 생명체를 구성하고 있는 성분들은, 우리의 생명이 무한하지 않듯이 영구적으로 한자리에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죽으면 썩어 없어지는 것과 비슷하게, 생물권에 존재하는 식물과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생물들은 매분 매초 자신의 생명현상을 통해 엄청난 양의 원소들을 순환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육상식물은 광합성이란 과정을 통해 매년120Pg1)에 해당하는 이산화탄소를 대기에서 흡수해 유기물로 바꾸고 있다. 이 중 절반은 식물 자체의 호흡 과정으로, 나머지 절반은 미생물들이 분해해 다시 이산화탄소로 공기 중에 되돌려 준다. 엄청난 양의 물질순환이 일어나지만 그 균형이 유지되는 동안엔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 인간이 단 몇백 년 동안 이 순환과 관련이 없던 땅속 석유와 석탄을 캐내고 태워 약 10Pg의 추가 이산화탄소를 배출함으로써 기후변화를 야기하고 있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탄소중립 사회'란 단어의 의미는, 이렇게 발생하는 탄소량을 최소화하고 불가피하게 발생한 탄소량은 어딘가에 추가로 저장해 자연에서 일어나는 순환의 균형을 되돌리고자 하는 노력이다.
탄소순환만이 문제가 아니다. 매년 되풀이되는 하천과 호수 부영양화eutrophication2)는 주로 농경지와 하수에서 유출되는 '인'과 '질소'라는 물질들이 정상적인 순환을 못 하고 과량으로 공급돼 일어난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은 농경지에서는 귀한 자원으로 우리가 비료를 통해서 어렵게 공급해 줘야 하지만, 이들이 빗물을 통해 하천으로 호수로 흘러들면 원치 않는 환경문제를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오염은 수처리 시설을 갖추지 못한 가난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선진국에서 오히려 심각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농경지에 과량으로 가한 비료, 자동차에서 배출된 질소 오염물질들은 작은 시내를 통해 강으로 모이고 결국에는 큰 강이 바다와 만나는 하구에 모이게 되는데, 거기서 심각한 부영양화를 일으켜 수십 킬로미터에 이르는 넓은 면적이 죽음의 바다로 변화하기도 한다. 이런 일들이 자주 일어나는 곳은 우리나라 남부 해안을 포함해 미국의 멕시코만 연안, 일본과 중국의 하구들 그리고 유럽 내해들이다. 큰 경제 규모와 높은 문화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국가에서 나타나는 부자병인 셈이다. 자연에서 순환하는 질소의 흐름을 정상화하지 않는 한 뾰족한 해결 방법이 없는 난제 중의 난제다.
다양성의 효용성
생태계 연구 결과의 또 하나의 중요한 함의는 구성 생물들의 다양성 문제다. 인간의 문명 개척 과정은 생태계의 다양성을 낮추는 방향으로 진행돼 왔다. 농업의 발전은 농경지에 우리가 원하는 단일품종 식물, 특히 몇 가지 유전적 다양성만을 가진 종자를 키우는 과정과 일치한다. 도시의 발전은 대규모 벌목과 콘크리트라는 단일 물질을 뒤덮어 버리는 절차의 반복이다. 자연 친화적이라는 숲 가꾸기 활동도 높은 다양성의 숲을 우리가 원하는, 즉 빨리 자라고 크게 자라는 단일 종의 나무로 대치하는 과정이다. 또 직접적인 사냥과 간접적인 서식지 파괴로 동물의 다양성 역시 매우 빠른 속도로 감소하고 있다. 사실 생물종의 멸종이란 지구의 유구한동안 끊임없이 지속돼 온 현상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인간 활동으로 인해 이 속도가 너무 빨라졌다는 점이고, 이로 인해 새로운 종이 출현할 여유가 없다는 점이다. 정확한 추정은 어렵지만 지난 수백 년간 벌어진 생물종의 멸종속도는 그 이전 수십만 년 동안 진행된 자연적인 멸종 속도의 1천~1만배 정도 빠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우리가 다양성을 감소시키는 이유는 단일 혹은 소수의 종으로 구성된 시스템의 '효율'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태계 연구 결과들에 따르면, 실제로는 단일 종으로 구성된 것보다 다양한 종을 포함하고 있는 시스템에서 식물이 더 크게 자란다. 또 외부로부터의 충격에 대한 저항성 혹은 회복탄력성3)의 측면에서도 다양성이 높은 시스템이 더 큰 안정성을 보여 주고 있다. 생태학의 이러한 연구 결과는 인간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회적 다양성에 대한 포용 여부는 도덕적 선택의 문제를 넘어서 그 시스템의 효율과 안정성을 증대시킬 수 있는지를 결정짓는 중요한 잣대다. 국가별로 역사적 경험이 상이하기 때문에 한마디로 판단하기는 쉽지 않지만, 적어도 학문이 발전한 국가의 고등교육기관과 그렇지 않은 기관을 비교해 보면 여러 층위의 다양성을 포용하고 확장하려는 시스템이 그렇지 않은 시스템보다 훨씬 우위에 있음은 이미 확증된 바 있다.
몰락의 문제
우리들에겐 어떤 현상들을 예측할 때 그것들이 선형적으로 반응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만약 통장 잔고의 절반을 쓰는 데 1년이 걸렸다면, 나머지를 소진할 때까지 1년이라는 시간이 더 걸리리라 예측하는 것 말이다. 그런데 어떤 시스템이 몰락할 때는 이런 선형적인 과정을 따르지 않는다. 비선형적일 뿐 아니라 전혀 다른 평형의 상태로 소위 '상전이phase transition'가 일어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북아프리카의 끝없이 펼쳐진 사막 지역이 원래부터 그런 상태였을 것이라 짐작한다. 그러나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지역은 원래 적어도 3천 년 이상 초원 지대였다가 단 5백 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갑작스럽게 초기가 사라지고 황량한 모래사막으로 바뀌어 버렸다. 약간의 기후변화로 식물이 일부 줄어들기 시작하면 식물의 증발산량이 줄어들고, 토양수분보유능이 줄어들면서 비가 내리는 양도 점점 줄고, 이렇게 되면 다시 토양과 식물의 상태는 점점 나빠진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짧은 시간 안에 급격한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지구의 환경문제도 그러하다. 처음에는 단지 한두 생물종이 없어진다. 북극해의 빙하가 녹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큰 변화가 감지되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 순간이 지나면 걷잡을 수 없는 변화가 짧은 시간 안에 나타난다. 생물의 개체수가 어느 임계점 이하가 되면 유전적 다양성도 줄어들어 후손들의 개체수와 건강이 급격히 떨어지고, 외부의 작은 충격에도 집단 멸종이 일어날 수 있다. 북극의 경우, 얼음이 녹기 시작하면 태양 빛을 반사하는 정도가 줄어들면서 지표면의 온도가 올라가고 다시 얼음이 더 녹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이런 일은 원래 지구에서 항상 있어 왔다거나 환경론자들의 과장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담은 책들이 아직도 서점가를 떠돌고 있는 것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제는 극한 기후 현상이 일상이 됐고, 인수공통감염병 중 하나인 코로나가 전 세계 사회 구석구석을 바꿔 버리고 있다. 이 상황에서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급격히 몰락할 수 있다는 우려를 갖게 하려면 얼마나 더 큰 충격이 필요한 것일까?
조절인자의 문제
그렇다면 이런 문제의 해결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인간은 과연 지구상에 나타나지 말았어야 할 종인 것일까? 우리가 신의 형상을 한 피조물이라 믿는 사람이든 아니면 장대한 진화의 산물이라 인정하는 사람이든, 인간이 이러한 환경문제의 원인이자 해결자란 점에는 동의할 것이다. 또한 동시에 모든 인간들은 자신의 안위와 복지 그리고 높은 수준의 문화를 향유하길 원한다. 이를 위해서 자연에 대한 일체의 간섭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인간에게 필요한 자원을 얻는 동시에 생태계를 보존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개념 틀은 이미 제시돼 있다. 이제는 표현조차 진부하게 들리는 '지속가능한개발sustainable development'이 그것이다. 실제로 UN에서는 'SDGs(SustainableDevelopment Goals)'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가 무엇을 향해 달려가야 하는지를 제시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가난을 극복하기 위한 경제개발뿐 아니라 지구의 환경을 존속시키기 위해 생태계의 건강을 유지시켜야만 한다.
생태계 연구자로서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생태계 유지를 위해서는 핵심적인 '조절인자controlling factor' 관리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도덕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환경론자들의 주장이 가끔은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는 실현 불가능한 요구 때문이다. 예를 들어, 습지를 보존하고자 할 때 습지에 있는 모든 생물체를 있는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서 식재를 한다든지 동물을 방사시키는 것을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보다는 습지의 핵심 조절인자인 수위조절을 잘하면 자연은 스스로의 시스템을 구축한다. 이와 반대로 수문학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한 조경을 통해 생태계를 조성한 경우, 식물 성장기 한두 번이 지나고 나면 원래 계획과 달리 대다수의 식물들은 사멸하거나 수위에 따라 원하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평형을 찾아가기도 한다. 글 서두에 말했듯이, 지금 한국에서 '생태'란 원하는 사회 혹은 산업 조직을 갖추고자 하는 목표에 활용되는 유비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것이 좁은 의미의 자연생태계를 말하든 비유적인 의미의 사회 생태계든 다양성과 안정성을 갖춘 시스템을 가지려면, 강제로 외부에서 구성 요소들을 집어넣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 시스템을 운영하는 핵심 조절인자를 찾아내고 그것을 통제하는것이 중요하다. 환경문제의 특성에 따라 법적인 강제, 경제적인 유인책, 대중들의 교육 혹은 새로운 기술의 개발이 각기 다른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산성비 문제 해결에서는 배출권거래제도라는 경제적 유인책이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었지만 현재의 기후변화 억제를 위한 탄소배출권 제도의 효용성은 매우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또한 오존파괴를 억제하기 위한 프레온가스 배출 억제에는 대체물질의 개발이 가장 큰 역할을 담당했다. 우리가 다양한 생태계를 보존하고, 더 나아가 복원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생태계의 유형만큼이나 다양한 방식의 해결책을 동원해야만 한다. 지금까지 축적된 생태계 연구의 결과물은 이를 위한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강호정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미생물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웨일스뱅거대학교에서 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 《다양성을 엮다> <와인에 담긴 과학> <과학 글쓰기를 잘하려면 기승전결을 버려라>, 공저서 <21세기 다윈 혁명> <지식의 통섭> 등을 펴냈다. 현재 연세대학교 건설환경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 Pg은 Peta-gram타그램의 약자로, 1x105g을 의미한다.
2) 수체에 식물성 플랑크톤이 급격히 번성하고 사멸하면서 산소가 소모돼 모든 생물이 죽게 되고, 이들이 썩으면서 수질이 악화되고 악취와 독성물질이 생기는 현상을 말한다.
3) 'resilience'의 번역으로, 충격으로 인해 파괴 혹은 저하된 시스템이 다시 원상으로 회복되는 능력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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