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혁명
1. 북한 여성문학의 다성성
남한 독자들에게 북한문학은 진입 장벽이 높을 뿐만 아니라 몹시 낯설게 느껴진다. 물리적으로는 매우 가깝지만 심리적으로는 지나치게 멀게 느껴지는 이질적 타자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번역된 외국문학에 대한 접근보다 거부감을 갖기도 한다. '국가보안법'의 엄연한 실정법적 제한으로 인해 접근성이 떨어지기도 하지만, 70년 넘게 이어져 온 분단의 심리적 장벽이 우리의 내면에 세워져 있는 이유가 더 클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문학을 한글로 쓰여진 '한반도 문학의 지역 문학'으로 범주화한다면 북한문학 역시 한국문학의 부분 집합에 귀속될 수 있을 것이다. 남한 연구자들에게 북한문학은 '이질적 타자의 영토'에서일지라도 한반도 문제를 바라보는 거울의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일제 강점기와의 연속성과 더불어 '해방과 분단' 이후의 단절성 속에서도 지속적인 탐색의 대상이 되고 있다. 비록 '수령형상문학'과 '당문학적 요소라는 담론적 전제 속에 기술되는 '주체문학'이라는 점에서 남한 독자의 입맛을 충족시키기는 어려울 수도 있지만, 한반도의 분단이 영구불변의 고정형이 아니라 '한시적 상황임을 공유한다면 북한 혹은 북한문학은 지속적인 탐구와 독해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므로 북한문학은 북한의 내재적 시각과 함께 남한의 비판적 독해와 더불어 제3자적 관점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입장 속에서 입체적으로 들여다보아야 할 필요가 있는 셈이다.
김재용, 이상경의 <혁명 속의 여성, 여성 속의 혁명>은 북한문학을 들여다보는 하나의 방법적 테제를 제안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연구서에 해당한다. 저자들은 북한의 여성작가 8명을 집중 조명하면서, '북한의 여성문학'을 “북한의 여성작가들이 쓴 작품”으로 한정하여 논의를 시작한다. 저자들이 북한의 여성문학을 주목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북한사회의 공식적 언술 이면에 비공식적으로 발화되는 삶의 현실이 소설 속에서 다성적 발화로 드러남으로써 미묘한 갈등 양상을 잘 포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남성 작가의 작품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여성 자신의 문제를 예민하게 담아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저자들은 "북한에도 여성문학이 존재한다”라고 선언하고, 특히 '고난의 행군'이후 여성문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 북한의 여성문학 역시 다른 나라의 '여성' 문학처럼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문제 삼고 있다고 분석한다.'제도와 명분상의 평등'과 '실제 현실에서의 불평등'의 문제가 해방 직후1940년대 임순득의 단편소설 이래로 2010년대 김자경의 장편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가의 작품들 속에서 '억압된 여성들의 목소리'를 통해 표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들이 보기에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전의 여성문학은 공식적 이데올로기와 비공식적 목소리 사이의 긴장이라는 문제 틀로 분석이 가능하지만, '고난의 행군' 이후의 여성문학은 새로운 미래 사회의 여성 역할에 대한 모색을 담고 있다. 결과적으로 저자들은 “북한의 여성문학은"그 자체로 문제적임을 전제하면서 "북한 체제에서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여성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비공식적인 목소리를 재현하기 때문"임을 강조한다. "여성문학이 가진 다성성"이 북한문학의 활력이자 새로운 독해 지점임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2. 해방이후 '고난의 행군' 이전까지의 여성문학
-삶의 애환 속 주체적 여성의 형상화
1) 젠더와 섹슈얼리티 문제의 형상화-임순득의 경우
저자들은 임순득을 '북한 여성문학의 출발점으로 자리매김하면서 해방 직후 작품들을 주목한다. <솔밭집>(1947)에서는 여학교 교사 '나'의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일제로부터의 해방이 '노동 해방과 교육 평등'이라는 사회주의적 꿈과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토대가 된 현실을 포착하고,<우정>1949에서는 적극적인 아내와 소극적인 남편 사이의 심리적 갈등을 통해 여성이 한 가정의 내외적 속박에서 벗어나 주체적 인간으로 변모하게 되는 과정이 드러난다. <딸과 어머니와>(1949)에서도 '딸의 어머니'로서는 ‘지극히 소박한 진보적인 사상’으로서의 '남녀평등'을 승인하지만, '아들의 어머니'로서는 여전히 ‘남성 우위의 봉건적인 사상’을 견지하는 모성의 이중적인 상황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한다.
특히 1950년대 '사회주의 농업 협동화'를 다룬 <여작업반원들>(1956)과 <어느 한 유가족의 이야기>(1957)에서는 '젠더와 섹슈얼리티' 문제의 원형이 포착된다. <여작업반원들>에서는 협동조합 작업반 소속 여성들이 탁아소와 유치원 문제를 처리하면서 여작업반장 진옥실과 제대군인이자 조합세포위원장인 박상의와의 결혼 문제가 경쾌하게 묘사되고, <어느 한 유가족의 이야기>에서는 '전쟁미망인' 유정덕이 식구의 가장 노릇을 하며 협동조합의 후원으로 작업반장 역할을 수행하면서 미래의 희망을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특히 과부가 된 아랫동서 옥금이 다른 남자와 마음이 맞아 아이를 남겨 두고 집을 나간 사실에 대해 정덕이 이해하고 옹호하는 이야기가 그려지면서, 전쟁미망인의 성적 욕망이 드러남으로써 북한 여성문학에서 섹슈얼리티 문제의 원형이 포착된다.
'이 조무래기들 하고 앞으로 어찌 살랴!‘
그 생각만 하면 당장 눈앞이 캄캄하고 세상살이가 그 무슨 업원만 같았다.어떤 때는 살그머니 자기 어린놈만 둘쳐업고 친정으로나 가서 눈앞에 아무 경난도 겪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도 지나갔다. 그 마음 가운데는 그 당시 30이 되려면 아직도 몇 해 기다려야 할 자기의 젊음에 대한 애석함도 있었고 남과 같이 구애 없이 희희낙락 살고 싶은 세상 욕심도 섞여 있었다.
-임순득, <어느 한 유가족의 이야기>, <조선문학>, 1957.6.
인용문은 정덕이 30세도 안 된 미망인으로 자신의 나머지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하는 대목이다. '조무래기 자식과 조카들'을 데리고 펼쳐갈 막막한 미래가 '전생의 죗값을 치르는 고통인 '원'처럼 체감되어 '운명의 집'처럼 여겨지고, 자기 자식만 데리고 친정으로 도피하려는 이기적인 현실회피감마저 들게 된다. 특히 20대에 불과한 정덕이 "자기의 젊음에 대한 애석함"과 “희희낙락 살고 싶은 세상 욕심”을 토로하는 대목은 저자들에게 정덕의 성적 욕망이 은근히 포착되고 있는 부분으로 해석된다. 북한식 에로티시즘이 감지되는 대목인 셈이다.
2) 주체적인 여성, 직장과 가정의 양립 가능성, 에코페미니즘의 포착
-리정숙, 강복례, 최상순 등의 경우
리정숙은 '종속과 독립의 갈림길'이라는 부제 속에 여성 해방의 이념과 현실의 여성 사이의 거리를 포착한 작가로 주목된다. 선희1957 양돈 농장의 기능공인 주인공 선희가 반장 준호와의 사랑과 복종을 다루면서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삶을 이루려는 여성들의 자의식과 함께 남성들의 권력 추구적 욕망과 관료주의 문제를 형상화하고 있으며, <진실>(1959)에서는 화자인 수리 견습공 찬수가 직포공 봉녀와 수리공 관호의 이야기를 관찰하면서 남녀 간의 사랑 문제를 여성적 시각에서 포착한다.
중편소설 <산새들>(1962)은 방직공장의 작업반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생활과 갈등을 섬세하게 포착하면서, 한국전쟁 이후 유휴노동력의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여성들의 직장 활동이 국가적 동원의 문제였음을 보여준다.
'주체문학 속의 여성문학'이라는 부제로 조명된 강복례는 등단작 <수연이>(1960)에서 간호원 수연이가 새로 부임한 진료소장 현호와 함께 일하면서, 남편을 따라 도시로 간 경희나 애인을 따라 농촌으로 온 영애와 대비되어 혼자 미지의 세계로 들어갈 주체적인 용기와 적극적인 자세를 갖게 된 생활이 그려진다. <직장장의 하루<(1992)에서는 방직공장 직장장의 하루를 통해 여성들이 ‘직장 생활과 가사 노동’을 병행하면서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삶을 찾기 위해 '슈퍼우먼'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 포착된다. 중편소설 <다시 전선에서>(1989)는 주인공 서은숙 군의가 연대 군의소에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남성들의 실무적이고 관료적인 독단과 다르게 인간사랑에 기초한 업무 처리 방식을 우선하는 적극적 인물임을 보여준다.
'여성성의 재발견'으로 호명되는 최상순은 <느티나무>(1991)에서 시골 룡철협동농장에 자원해 왔던 기사장 리학렬이 평양으로 소환되면서 농촌지원을 활용하여 도시로 출세 승진하려는 인물의 내면에 대해 여성의 시각에서 접근한다. 기사장과 달리 전쟁미망인인 관리위원장 김부선은 마을에 대한 자부심 속에 임무를 탁월하게 수행하지만 육아문제가 항상 고통스럽게 느껴진다. 더구나 평양 학자의 청혼을 거부하면서 땅의 맥박을 강조하는 김부선의 서사에서는 '생명을 사랑하는 ‘모성성의 발로’와 함께 '에코페미니즘의 가능성'을 읽어낼 수 있다.
3. '고난의 행군' 이후의 여성문학
- 여성과학자의 형상화와 북한식 에로티시즘의 서사화
저자들에 의하면 '고난의 행군' 이후의 북한문학은 '국가의 후경화와 여성의식의 전면화'로 요약되면서, '남성의 무기력과 여성의 활력'이 대비된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이후 전개된 북한의 경제 위기가 전통적인 계획 경제와 배급 구조를 붕괴시키고 북한 여성의 삶을 변화시키면서, 여성들이 비공식적인 경로로 남성을 대신해 가족 부양의 의무를 떠맡게 된 것이다. 이때 국가가 후경화되면서 전통적인 가사노동에 더해 새로이 생계를 담당하게 된 여성들이 엄청난 중압감과 절박감을 느끼게 되면서, 공식적 언술 이면에 비공식적 삶의 현실을 말할 수 있는 다성적 발화가 가능해진다.
1) 여성 과학자의 다양한 형상화-한정아, 김혜영, 리라순의 경우
'고난의 행군과 여성의 목소리'로 부제가 작성된 한정아는 <녀학자의고백>(2013)에서 여성 과학자 3대를 조명하며 과학기술 시대에 제기되는 사회주의 분배 원칙의 문제를 주목한다. 작품은 젊은 여성 과학자 차봄순이 자신의 어머니이자 앞선 세대 여성 과학자 송리에게 '사회주의적 보상' 문제에 대해 투덜거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외국산 수입 설비가 작동을 멈춘 문제를 봄순이 처리하지만, 보상으로 고작 '수첩과 만년필을 받은 것에 분개하는 내용이 그려진다. 딸은 자신의 노력에 대한 보상을 적절하게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반면 어머니는 조국의 교육 덕분이므로 모든 노력이 조국에 이바지하는 것으로 만족되어야 한다고 대립하는 것이다. 반면에 남편 차인철과의 대화에서는 송리옥이 "일한 것만큼 모든 것이 계산되고 차례지는 것이 사회주의의 본성적 요구의 하나"라면서 대응하지만, 남편 차인철은 그런 태도가 자본주의의 등가 원칙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면서 비판한다. 사회주의적 보상이 지닌 제도적 원칙과 보상 내용에 대한 현실적 기대심이 충돌되는 양상이 포착되고 있는 것이다.
'과거를 통한 현재의 극복'이라는 부제로 조명된 김혜영은 <아름다움을 자랑하라>(1991)와 <첫 상봉>(1996)에서 영예군인과 결혼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담아내면서, 북한 사회의 어려움을 여성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장편소설 <인생의 열매 >(2010)에서는 농촌을 배경으로 대용 연료와 비료 개발 문제를 형상화하면서 젊은 여성 기술자수향과 작업반장 영순이 남성 기술자의 연구 개발 포기를 비판하며 주도적으로 고난의 행군을 극복한 양상이 그려진다.
'다면적 여성상의 충돌'로 요약되는 리라순은 <행복의 무게>(2001)에서 부부 연구사가 북한 공업화의 현대화 과정에서 필요한 촉매제를 함께 연구하여 성공하는 과정의 우여곡절을 다룬다. 표면적으로는 남편이 아내를 도와 다시 과학연구에 나서게 하는 새로움을 보여주었다고 평가되지만, 이면적으로는 과학연구와 육아를 혼자 수행하는 여성 과학자 유경의 고통이 구체적이고 절실하게 형상화된다. <내 사랑 저 하늘>(2007)에서도 미혼의 여성 연구사 경주가 먼지와 아류산 가스를 동시에 잡아내는 제진장치를 고안해내는 연구에 종사하면서 남성 기사 철묵보다 새로운 미래설계를 위해 자부심을 내장한 주동적 인물로 형상화된다. 장편소설 <사랑하시라>(2009)에서는 평양산원을 배경으로 '불임 여성을 위한 체외 수정, 개복수술 대신 복강경수술, 산통을 줄이기 위한 무통분만' 등의 첨단치료술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2) 정보산업시대의 '불륜과 섹슈얼리티의 가능성 탐색-김자경의 경우
'여성의 사랑과 섹슈얼리티'로 호명되는 김자경은 <류선화>(2000)에서 미생물학자 리문경의 비료 개발 연구와 '육아를 전담하는 외지 생활인' 남편 김선범이 헌신하는 이야기를 통해 부부 역할의 젠더적 전복을 형상화한다. <사랑의 샘줄기>(2002)에서는 시골 향봉리마을에서 양어장 건설을 둘러싸고 관리위원장 정철진과 작업반장 진주옥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주옥이 결혼을 약속한 정철진과 가부장적인 오빠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여성으로 형상화된다.
<사랑의 향기>(2007)는 행복한 가정을 꾸린 기혼 여성이 처녀 시절 자신을 스쳐 간 남자를 10년 뒤에 재회하면서 느낀 다양한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불륜의 감각'을 은연중에 묘사한 작품이다. 표면 구조는 출판보급원으로 일하는 여자가 과거 자신과 '일정한 관계'를 가졌던 주성국 기사를 위해 자신의 컴퓨터를 주자고 말했다가 오해를 산 뒤 결과적으로 남편의 이해를 구하면서 잘 마무리되는 작품이다. 하지만 이면적으로는 기혼 여성 예경이 주성국에 대해 느끼는 감정의 설레임, 떨림, 불안, 초조등과 함께 주변인의 불안감에 대한 묘사가 드러나면서 '성적 욕망의 감각'이 포착된다.
장편소설 <사랑을 다 바쳐>(2017)에서는 오리공장의 여성 기사장 송영숙과 장병식 지배인이 국산첨가제 개발 문제로 첨예하게 맞서는데, 지배인은 수입첨가제를 구매하자고 말하지만 송영숙은 미국이 제재를 가하고 있는 현실에서 국산첨가제를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특히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송영숙이 오리공장에 기사장으로 부임한 직후 임신을 하는 바람에 임신 중단을 고민하는 부분이다. “유산시켜버릴까 하는 생각”까지 고민하는 송영숙의 이야기는 '임신과 육아의 부담, 노동과 가정의 양립 불가능한 현실, 경력 단절' 등이 자본주의나 사회주의의 체제를 넘어선 '보편적인 여성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아이를 낳은 다음 이렇게 저렇게 손발이 얽히고 사업에도 지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할 일은 많고 많은데 어쩌면 좋담.’
남편과 어머니에게 알리지 않고 유산시켜 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리윤옥의 앞에서 내색하지 않았다. 우선 사람들이 자기가 임신한 걸 모르게 해야 한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송영숙은 리윤옥에게 그것을 부탁하였다.
-김자경, <사랑을 다 바쳐>, 문학예술출판사, 2017, 120쪽.
인용문에서는 출산이 사업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전제하에 유산을 고민하는 영숙의 마음이 포착된다. 이렇듯 임신 사실을 숨긴 채 송영숙처럼 임신 중단을 고민하는 여성이 사회주의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북한문학에서 처음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주목을 요한다. 물론 송영숙은 친정어머니의 도움으로 출산과 육아, 가사노동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기사장 직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게 된다. 친정어머니의 돌봄 노동'이 결정적이라는 대목 역시 육아 시스템이 보장되는 '사회주의 국가'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흥미로운 부분에 해당한다.
무엇보다 김자경 소설의 특성은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 있다. 작품 속에서 송영숙과 옛 애인 정의성은 대학 시절에 만나거의 결혼할 뻔한 사이였지만 정의성의 변심으로 두 사람이 헤어지게 된다. 이후 세월이 지나 각자 다른 사람과 결혼한 뒤 10년 만에 오리공장에서 기사장이 된 송영숙이 기사 정의성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정의성이 송영숙의 도움으로 연구사업에서 성과를 낸 이후 사심을 담아 “영숙 동무"라고 호명하자 송영숙은 공식적 직함인 "기사장"이라고 부르라면서 꾸짖듯이 호칭을 정정해준다. '사랑의 힘'은 '공민으로서의 사랑'이 '사적인 감정에 매몰되는 사랑'을 넘어설 때 진정으로 발현되기 때문이다. 결국 작가는 "사적인 것에 매몰되는 남자와 공적인 것을 강조하는 여자의 관계"에서 성적 역할의 전복을 시도하고 있는 셈이다.
4. 북한문학의 여성적 타자성 복원을 위하여
북한문학은 김일성의 가계를 형상화하는 '수령형상문학'을 정점에 배치하는 ‘당문학’적 지향을 분명하게 제시한다. 1945년 해방과 분단 이후프롤레타리아 계급과 항일혁명문학을 강조하면서 태동된 '특이체로서의 북한문학'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를 거쳐 1967년 유일사상체계 확립 이후 '주체사실주의'를 주창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주체문예이론'을 설파한 김정일이 <주체문학론>(1991)을 전후로 '전통과 유산의 확대'를 요청하면서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배제해온 ‘부르주아 문학’의 공유가능성을 복권시킨 바 있다. 1980년대 중반 이래로 1990년대에 들어와 이광수와 염상섭, 김동인 등 '부르주아 퇴폐 미학의 대표적인 반동 작가'로 명명되던 작가들의 텍스트들이 구체적인 분석의 대상으로 호명하면서 비판적 평가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이전까지 '뺄셈의 문학'을 지향하던 방식에서 1990년대 이후 '덧셈의 문학'으로 외연을 확장하고 있는 셈이다. 내부에서 전개되는 이러한 문학사적 외연의 확장과 더불어 외부적 시각에서 저자들이 보여준 것처럼 북한의 여성문학을 촘촘히 미시적으로 들여다보는 작업은 북한문학의 실체적 내포를 확인하는 소중한 연구에 해당한다.
결론에서 저자들은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에서 여성 문학이 팽창하고 있는 현실이 특징임을 언급한다. 구체적인 근거로 한정아의 <녀학자의 고백>에서 여성 과학자들의 어려움과 열망이 드러나면서 남성 과학자들의 비굴함이 대비적으로 포착되고, 김혜영의 인생의 열매에서 의지박약한 남성에 비해 강인한 주체적 여성의 모습을 통해 젠더적 관점이 드러난다고 파악한다. 뿐만 아니라 리라순의 <사랑하시라>에서는 평양산원을 배경으로 작가의 젠더적 지향을 보여주면서 임신과 출산, 분만 등'가임 여성의 관심사가 형상화되고 있으며, 김자경의 <사랑을 다 바쳐>에서는 여성의 목소리를 '의도적 도발'에 가깝도록 형상화하고 있음을 주목한다.
저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 여성작가들의 젠더적 감수성이 풍부하게 포착되면서, 여성의 성적 욕망에 관한 문제도 드러나고 있음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물론 젠더적 문제는 의식적으로 드러나는 반면 섹슈얼리티는 무의식적으로 드러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미래의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 환경 문제를 작품에 끌어들임으로써 생태문제를 포함하여 에코페미니즘적 가능성도 표방하면서 다성적 목소리의 가능성을 내장하고 있는 문학이 북한의 여성문학이라고 판단한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생물학적 여성의 작품만을 '여성문학'으로 제한하는 저자들의 범주 설정에 대해 개별 성차가 아니라 양성평등의 젠더적 시각을 강조하는 '페미니즘적 입장'에서는 비판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백남룡의 <벗>(1988)이나 남대현의 <청춘송가>(1989), 홍석중의 <황진이>(2002), 리희찬의 <단풍은 낙엽이 아니다>(2016) 등의 남성 작가 작품에서도 충분히 북한 사회의 '여성적 타자성'이 잘 포착되고 있으며, 남성 작가 오광철의 <보습산>(2015) 이나 여성 작가 렴예성의 <사랑하노라>(2018)에서도 청춘 남녀의 연애담을 중심으로 사회적 기대와 사적 욕망 사이의 균열이 충분히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생물학적 성차가 아니라 성차의 차별적 현실을 드러내는 평등주의적 시각과 입장이 중요하다. 남녀 양성의 이분법적 도식을 넘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양성적 소수자의 목소리를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여성작가 8명의 여성문학을 초점화하여 분석한 저자들의 꼼꼼한 작업은 북한 현실에서 여성적 타자성을 외화하는 '북한식 페미니즘'을 위한 소중한 첫 출발에 해당한다. 저자들의 노력이 모이고 쌓여 타자의 타자성을 의미화하려는 작가적 의도를 해명하고, 등장인물들이 펼쳐내는 무의식적 욕망의 표출을 읽어내는 분석자의 시각이 덧붙여질 때, 북한문학의 공식적 도그마와 비공식적 욕망의 균열이 사실주의적 상상력으로 외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들의 노고와 분투에 경의를 표한다.
오태호
1970년 서울 출생. 200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문학평론집으로 <오래된 서사>, <여백의 시학>, <환상통을 앓다>, <허공의 지도>, <공명하는 마음들> 등이 있음. <연구서로 문학으로 읽는 북한>, <한반도의 평화문학을 상상하다> 등이 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