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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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 아로새겨진

조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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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엑소포니(exophony) 문학자, 다와다 요코

다와다 요코(多和田葉子, 1960~)는 베를린에 살면서 일본어와 독일어, 두 개의 언어로 소설을 쓰는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여기에 번역가라는 타이틀도 붙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나의 작품이 일본어와 독일어로 간행된 것이 적지 않은데, 그 경우 번역 작업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오비디우스를 위한 아편Opium für Ovid>, <벌거벗은 눈Das nackte Auge>, <보르도의 매형Schwager in Bordeaux>은 독일어로 먼저 나온 후 일본어로 간행했고, <눈의 연습생(雪の練習生(독일어판 제목은 Etüden im Schnee)>이라는 작품은 반대로 일본어 작품을 독일어로 바꿔 발표했다. 다와다가 번역을 대하는 자세는 “어떻게 원작을 그대로 목표어 문학으로 옮기는가”와 함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으로 '원작 없는 번역'이라고도 표현하는 “출발언어 작품과 도착언어 작품 간의 차이”를 꼽는다.1) 무엇보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직접 번역하는 일은 흔하지 않은 만큼 다와다의 독자들은 그녀가 쳐놓은 실타래처럼 겹겹이 얽히고설킨 언어의 의미망에 꼼짝없이 포획될 확률이 높다. “낱낱의 단어에서 연결선이 거미집처럼 방사선으로 자라 여러 다른 언어와 이어지고, 또 그 선이 서로 끝없이 겹치고 이동하며 즐거운 뇌가 되는 것이 아닐까”2)라는 다와다의 행복한 비명처럼 말이다.

흔히들 다와다 요코를 일컬어 이중언어 작가라거나, 독일에서 활동 중인 일본 작가라고 소개하는데, 그녀의 작품세계는 일본어나 독일어만으로 수렴되지 않는 무수한 언어들-덴마크어, 독일어, 프랑스어, 인도어, 영어, 코사어, 심지어 인공어(人工語)까지 등장한다-의 자장을 통과하지 않으면 해독이 불가하다. 그렇다면 다와다를 표현할 조금 다른 수식어가 필요할 듯한데, 이를테면, '모어'를 부수는 작가라든가, '엑소포니' 문학자라는 명명은 어떨까?

엑소포니란 말은 신선하고 하나의 교향곡 같아 마음에 든다. 이 세계에는 여러 가지 음악이 울리고 있다. 자기가 있는 모어가 들리는 곳에서 벗어나 밖으로 나가면 어떤 음악이 들릴까. 그것은 모험이다. 엑소포니는 '외국인 문학'이나 '이주자 문학' 등의 발상과 닮은듯하지만 어쩌면 정반대일 수도 있다. (…중략…) 한가지 언어만 아는 작가도 창작 언어를 어떤 형태로든 "골라잡지 않으면 문학을 할수 없다. 엑소포니 현상은 모어 바깥으로 나가지 않은 '보통' 문학에도 왜 그 언어를 골라잡았느냐는 이제껏 묻지 않았던 물음을 던진다3)

2003년에 출간한 에세이 <엑소포니, 모어 바깥으로 떠나는 여행(エクソフォニー母語の外に出る旅)>(한국어판 제목은 <여행하는 말들>)의 일부이다. 이 책을 펼쳐보면, 서울을 비롯해 베를린, 로스엔젤레스, 파리, 케이프타운, 빈, 함부르크, 베이징, 보스턴, 바르셀로나, 모스크바 마르세유 등 세계 각지의 도시들을 돌아보며 글을 쓰고, 시를 낭독하고, 강연하고, 워크숍을 진행하는 그녀의 부지런하고 활동적인 모습이 생생하게 전달되어 온다. 단순히 여행 감상을 나열한 수준이 아니다. 각국의 역사와 문화, 언어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다와다 특유의 섬세하고 기발한 언어적 상상력에 이끌려가다 보면, 모어 외국어, 피진, 크레올, 다언어사회, 소수언어보호정책, 공용어, 번역 등에 이르기까지, 어느새 '모어 바깥에서 언어와 언어 사이를 가로지르는 모험'을 경험하게 된다. 2006년 무렵 만남을 갖게 된 재일(在日) 지식인 서경식과의 왕복서간을 모은 <경계에서 춤추다>의 부제는 무려 '서울-베를린, 언어의 집을 부수고 떠난 유랑자들'이다.

2. 모어 바깥으로의 여행-Hiruko, 텐조/나누크, Susanoo

<지구에 아로새겨진>은 바로 이 ‘언어의 집을 부수고 떠난 유령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달리 말하면, '모어 바깥으로의 여행을 감행하는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Hiruko. 그 외에 크누트, 텐조/나누크, 노라, 아카슈, Susanoo가 등장한다. 소설은 한사람씩 자신의이야기를 풀어가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고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모두가 주인공일 수 있다. 어쨌든 소설의 큰 흐름인 사라져 버린 ‘모어’ 사용자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Hiruko로부터 시작된다.

덴마크 예테보리에서 유학하던 중,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이 사라졌다는 Hiruko, 그녀의 출신은 ‘아마도’ 일본 '아마도'라고 표현한 것은, 일본이라는 단어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지만, 이를 추측할 수 있는 정황은 흘러넘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일본 북부 눈의 고장을 연상케 하는 호쿠에쓰(北越) 동일본대지진과 이에 따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 사고를 상기시키는 후쿠이, 일본을 대표하는 음식 스시, 일본의 가장 오래된 역사서로 알려진 <고지키(古事記)>에 등장하는 신화, 그리고 Hiruko, Susanoo와 같이 영문으로 표기했지만 누가 보더라도 일본인이라는 것을 짐작게 하는 인명 등등. Susanoo라는 인물의 학창시절 별명은 무려 <고지키>에 등장하는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남동생 스사노오'라고 하며,Hiruko라는 이름은 <고지키> 속 남신 이자나기와 여신 이자나미 사이에서 태어난 '히루코'라는 인물을 연상케 한다.

나라가 사라져 버려 돌아갈 곳이 없는 Hiruko는 모어로 말하는 사람을 만나기 힘들게 되자 직접 언어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스칸디나비아 사람이라면 거의 다 알아들을 수 있다는 인공어 ‘판스카’(범 스칸디나비아의 약칭)가 그것.

한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해 자신이 만든 언어 판스카에 대해 설명하는Hiruko를 보고 흥미를 느낀 코펜하겐의 언어학자 크누트가 Hiruko에게 만남을 요청하고, 이를 계기로 둘은 독일 트리어에서 열리는 우마미 페스티벌에 함께 가기로 의기투합한다. Hiruko의 모어를 닮은 '우마미'(맛있는 맛이라는 뜻)라는 단어에 이끌린 것인데, 축제 현장에 가면 모어를 공유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한 것이다.

그런데 Hiruko가 찾고자 한 것은 과연 사라진 모어였을까? 스칸디나비아 전역에서 소통 가능한 언어를 혼자 완성할 정도로 언어 감각이 뛰어난 Hiruko는 겉으로는 일본어로 추정되는 모어를 찾아가는 듯 보이지만, 오히려 모어 바깥으로 일탈하고 벗어나는 즐거움에 흠뻑 빠져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엑소포니, 종종 다음과 같은 언어의 유희로 이어진다.

나는 하마치(방어)라는 이름의 물고기에 주목했다. 이름이 하우머치랑 비슷해서 재미있다. 맛은 접어두고 이름으로 정하자. 메뉴판은 일종의 문학 장르라고 문학을 연구하는 동료가 말한 적이 있다.

"çava?(프랑스어로 잘 지내냐는 뜻. 일본어 발음은 사바로 고등어라는 뜻)라는 물고기도 있네."

"타코(문어)는 타코스의 단수형."

"스즈키(농어)도 자동차랑 비슷하고 좋네."

그렇게 말하자 Hiruko가 움찔하며 물었다.

"스즈키 신차를 봤어?"

"아니, 신차는 아니었어. 친구가 무척 낡은 중고사무라이를 몰거든"4)

드디어 Hiruko와 모어를 공유하는 것으로 추측되는 인물이 등장한다. 등장인물 중 유일하게 두 개의 이름을 가졌다. '텐조'라는 이름과 그린란드의 수도 누크를 연상시키는 이름 '나누크', 텐조라는 이름에서 Hiruko와 같은 나라 사람일 것이라고 추측되었으나, 알고보니 그는 "스시의 나라" 주민을 연기한 그린란드 사람이었다.

나누크는 덴마크의 한 개인 자선단체가 후원하는 장학금을 받으며 코펜하겐에 있는 어학 학교에 다니고 있다. 후원자와 부모님은 의사가 되기를 희망하나 나누크 본인은 동물학 같은 걸 전공해 그린란드로 돌아와 해달이나 북극곰, 고래를 관찰하며 살고 싶어 한다.

어느 날 고향의 맛이 그리워진 나누크는 날생선을 맛볼 수 있다는 레스토랑 '사무라이'를 찾게 되고 자신과 “동향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얼굴”을 한 이들이 일하는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나누크가 '텐조'라는 이름으로 연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그러한데, 원래는 피부가 추위에 노출되고 고기와 생선을 주식으로 삼는 에스키모와 쌀과 채소를 주식으로 삼으며 집 안에서 공부하고 일만 했던 “스시의 나라” 사람들은 생김새가 달랐지만, 난방이 완비되고, 채소를 먹고, 컴퓨터를 마주하고 살게 되면서 “틀림없는 유사점"이 얼굴 표면에 드러나게 되었다고 한다.(155쪽)

텐조/나누크는 독일의 여러 스시 가게에서 일한 경험이 쌓여 진짜 스시 장인이 되었고, Hiruko의 사라진 모어를 구사하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가 되었다. 다음은 Hiruko와 텐조/나누크가 처음 만난 자리에서 모어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다.

"하지메마시테."(처음 뵙겠습니다)

텐조가 그렇게 말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발음이 딱딱했다. '하지메마시테'의 머리글자인 '하'는 허공을 찢을 듯 날카로운 '하'였고, '지'는 '주'에 가까웠으며, '마'는 지나치게 강조되어, 거기서부터 억양의 경사가 언덕을 이루고 있었다. '외국인'이라는 그리운 단어가 떠올랐다. 이 단어도 이미 사어가 되었겠지만, 텐조는 외국인일까.(183~184쪽)

Hiruko는 첫인사를 나누기 무섭게 텐조가 같은 나라 사람이 아니라는 걸 눈치챈다. 텐조는 여태껏 들어본 적 없는 부류의 강한 사투리 억양을 가지고 있었고, ‘간바리마스’와 같은 이미 사어가 된 단어를 구사하며, 고향(お国)5)이 어딘지를 묻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텐조/나누크가 출신을 속였다는 것이 밝혀진 후에도 Hiruko도 나누크도 이에 개의치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Hiruko는 텐조/나누크가 사용하는 부자연스러운 모어를 통해 모어 바깥의 풍부한 언어 세계를 마음껏 상상한다. 나누크는 모어인 그린란드어 외에 덴마크어, 영어를 열심히 갈고닦아 실력이 상당했고, 독일어와 프랑스어도 강의를 들은 적이 있어 말할 줄은 안다. Hiruko의 모어도 여타 외국어와 같이 배워보고 싶은 언어 중 하나일 뿐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Hiruko의 모어의 경우 좀더 적극적으로 '연기'하면서 '제2의 아이덴티티'로 삼고자 했다는 것.

실은 '아이덴티티'라고 하는 장황한 단어도 조지가 남기고 간 산물이었다. 에스키모라서 부끄럽다는 생각은 조금도 없었지만, 하나의 아이덴티티로 살다가 마침표를 찍는 인생이라니 너무 밋밋하고 단조롭다.
하시오키(젓가락받침), 우루시(옻칠공예), 곤부(다시마), 네기(파). 신기한 발음 천지였다. 어딘가 먼 데로부터 들려오는 소리이면서, 어쩐지 그립다.(153쪽)

나누크가 텐조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나누크도 Hiruko의 사라진 모어 사용자를 찾는 여정에 합류한다. 나누크는 후줌에서 독일인과 함께 스시 레스토랑을 열었다는 Susanoo의 존재를 알게 되고, 이 인물이 Hiruko와 같은 모어 사용자일 확률이 높다고 판단한다.

Susanoo는 후쿠이 출신으로 현재 조선학(造船學)으로 유명한 독일의 킬 대학에 유학 중이다. 집안은 마을에서 간병 로봇을 만드는 작은 공장을 운영했고, 지금은 그의 아버지가 고향PR센터 로봇을 제작하는 일을 도맡고 있다.

Susanoo가 킬에서 볼프라는 독일인 친구와 낚시도 즐기고, 앙케라는 여자친구에게 '마키즈시'(스시의 일종) 같은 요리를 해주며 유학 생활에 적응해 가던 중, 언제부터인가 고향의 아버지와 친구들로부터 연락이 뚝 끊겨 버린다. "다들 너를 잊어버린 게 아니라, 너희 나라에 대참사가 일어나서 연락이 안 되는 거 아니야?"(265쪽)라는 여자친구의 말은 위로가 되지 못하고, 출석 미달로 장학금마저 끊길 위기에 처한다. 돌파구로 찾은 것은 후줌에서 볼프와 함께 스시 가게를 열어 돈벌이를 하는 것. 스시를 본격적으로 배워 본 적은 없지만 평소 다양한 종류의 마키즈시로 주변 사람들의 입맛을 즐겁게 해주었던 경험을 살려 금세 자리 잡을 수 있었다.그러던 어느 날, 투우장에서 만난 댄서(예명은 카르멘)에게 한눈에 반해 그녀가 사는 파리로 뒤쫓아 가는데, 그곳에서 현지 남성에게 영문 모를 폭행을 당하고 그녀와의 인연도 덧없이 끝나버린다. 임신한 앙케가 있는 후줌으로 돌아갈 기분도 들지 않아 발칸 요리 레스토랑에 취업해 스시 만드는 일을 계속한다. 이 무렵부터 Susanoo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게 신경이 쓰였던지 어떤 이유에선지 언어를 잃어버리게 된다. 일하면서 배운 간단한 프랑스어뿐만 아니라, 유학하면서 자유롭게 말할 수 있었던 독일어도 입 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런 Susanoo에게 사라져 버린 나라의 모어 사용자를 찾아 길을 나선 Hiruko와 그 일행들이 들이닥친다.

Hiruko는 "에스키모 나누크가 가짜 고향 사람이라면, 지금 눈앞에 있는 Susanoo는 진짜 고향 사람"이라며 기대감을 내비치지만, “이 진짜는 그리운 언어를 입으로 내뱉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립지 않은 언어마저도 내뱉지 않는다"(282쪽)며 안타까움을 숨기지 않는다.

Susanoo는 회전축의 목 부분이 부러진 인형처럼 고개를 툭 떨어뜨리고 눈을 깜박이며, 눈을 치뜬 채 내 얼굴을 보았다. 무슨 말인가 하고 싶은 듯 보였다. 지금이야, Susanoo, 말해, 말해, 말해. 나는 눈앞의 커다란 돌 아래 삽 끝을 찔러 넣고, 발을 뻗기도 하고 배에 힘을 주기도 하며 들어 올렸다. 말하는 거야, Susanoo, 말해, 말해. 그러나 결국 돌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Susanoo는 천천히 침묵의 땅 밑으로 물러났다.(292쪽)

Hiruko는 결국 Susanoo에게 모어로 말 걸기를 포기하고, 크누트와 대화할 때를 떠올리며 “판스키는 모어보다 훨씬 더 훌륭한 운송 수단”(293쪽)이라는 깨달음에 도달한다. “언어를 상실하는 병"(304쪽)에 걸리기라도 한 듯 한마디도 말하지 못하는 Susanoo에게 목소리를 찾아줄 방법은 정말 없는 걸까?

3. 다시 시작된 말의 여행

소설의 마지막 장은 모두가 모인 가운데 크누트의 시점으로 그려진다. 이 자리에는 아들의 여행에 말도 없이 끼어든 크누트의 어머니도 함께였다. 그 어머니가 그린란드에서 온 유학생 나누크의 후원자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얼마 전 여행을 떠난 뒤 연락을 끊어버린 나누크는 크누트의 어머니로부터도 연인 노라로부터도 원망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노라는 숨을 아껴가며 독일어로 나누크를 나무랐고, 크누트의 어머니는 독일어를 이해는 하지만 쉽사리 대화에 끼어들 만큼은 아니어서 금붕어처럼 불만스럽게 입을 빠끔빠끔 벌리고 있었다. 이들 사이를 중재하기 위해 크누트가 나서 보지만, 문제는 언어였다. 영어를 쓰면 유럽 북부에서 일어난 분쟁을 막기 위해 개입하는 미국 군용기 같아서 주저되었고, 자연스럽게 독일어로 끼어드는 게 제일 좋겠지만, 독일어는 학교 수업 때 배운게 전부라 어린애 같은 말투가 될까 불안했던 것이다. 영어가 제일 만만했지만, “영어로 말할 때의 스스로가 민주적이고 옳다는 가면을 벗고, 지금 이 순간 어색하지만 불가피한 영어를 쓸 수 있을까"(324쪽)라는 또 다른 난관이 크누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크누트는 나누크, 노라, 어머니 사이의 갈등에서 언어 문제로 독자들의 관심을 단번에 돌려 버린다. 아울러 Hiruko가 자신과 연인 사이라는 말에 동요하며 세상에서 가장 간단한 대답조차 하지 못하는 어머니와, 따끔하게 비꼬는 소리를 들어도 앞뒤 안 가리고 화부터 내는 사람이 있어도 동요하지 않는 Hiruko를 대비시켜 보이며, Hiruko의 이런 강인함은 판스카라는 언어를 쓰고 있는 데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모어 자신의 어머니도 포함를 부수고 나가 영어를 비롯한 덴마크어, 독일어 등 기존의 언어 위계질서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전복시키는 크누트 그것은 Susanoo가 가만히 일어나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연설을 하기 시작하고, 이를 귀 기울여 듣고 있는 나누크와 때때로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는 Hiruko의 모습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급기야 크누트는 “Susanoo는 환자가 아니다. 그에게는 그의 언어가 있다"고 확신에 차서 말하고, “이것은 여행. 그러니 계속한다"(331쪽)라는 Hiruko의 기쁜 외침과, 이에 호응하는 일행의 모습을 끝으로 소설은 막을 내린다.

4. 다와다의 엑소포니가 멈춰 선 지점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모어와 외국어, 피진, 크레올, 다언어사회, 소수언어보호정책, 공용어, 번역 등 언어를 둘러싼 미세한 결들을 섬세하고 촘촘하게, 때로는 탄성을 자아낼 만큼 기발하게 풀어가고 있는 데에 있다. 단순히 언어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다와다 특유의 언어 감각으로 충만하다. 중독성이 매우 강하다. 맵기로 치자면 엽기떡볶이 매운맛 3단계 정도. 리뷰에 너무 집중한 탓일까, 어느새 다와다의 언어를 구사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사실 나를 중독시킨 건 작가만이 아니다. 번역자의 역할이 컸다. 아직 일본어 원서를 제대로 읽어 보진 않았지만, 당분간은 원서 없이 한국어번역본의 향기만으로도 충분히 취할 것 같다. “언어 놀이를 통해 언어와 언어 사이의 숨겨진 연결고리를 찾는 일”이 다와다의 소설이 가진 가장 특별한 재미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만큼 번역하기 까다로운 작가라는 번역자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며, 그 치열했던 번역 현장의 분위기를 역자를 대신해 옮겨 본다.

나는 스시와 초밥 사이에서 뒷짐 지고 인상을 쓴 채 몇 날 며칠을 서성거렸다. 국립국어원 규범 정보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스시' 대신 순화한 용어 '초밥'을 써야 한다. 책 만드는 사람에게는 이런 규범이 법조인의 헌법과도 같기에 민감하게 촉수를 세우며 지키려 한다. 나도 맨 처음 원문에서 라는 글자를 마주한 순간에는 초밥으로 번역했다. 그런데 곧장 Hiruko와 크누트가 Sus(h)i냐 Sisu냐로 싸우고 있는 상황이 벌어졌고, 초밥은 Chobab 인 것이다. 이래야 다와다지. 모름지기 다와다라면 단어 하나에도 역자를 그냥 보내주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소설의 원제를 소리 나는 대로 읽으면 Chikyu ni Chribamerarete. Chikyu는 지구. Chribamerarete는 아로새기다. Chobab은 초밥, 지구에 아로새겨진 초밥이네. 작가 특유의 제목 짓기 기법인 각 단어 알파벳 두음 맞추기로 치면 Ch가 라임에 맞지 않는다고도 할 수 없다. 이렇게 혼자 놀며 쿡쿡 웃음 짓는 지경까지 이르러, 마침내 외롭고도 고독한 결정을 내린다. 이번에는 국가가 정한 규범을 어기도록 하자.6)

이쯤 되면 헷갈리기 시작한다. 내가 중독된 것은 다와다의 언어일까, 번역자 정수윤의 언어일까. 그런데 그러한 구분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듯하다. <지구에 아로새겨진>은 일본어로 작사하고 한국어로 멜로디를 붙여 탄생한,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룬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때의 '일본어'란 일국의 '국어'로서의 일본어도, '제2 외국어'로서의 일본어도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모어를 일본어로 하는 독일로 이주한 일본 출신의 일본어, 혹은 덴마크어, 독일어, 프랑스어, 인도어, 영어, 코사어, 인공어, 나아가 '다와다 고토바(말)'가 뒤섞인 그야말로 초국적 혼종적 글쓰기를 의미한다.

소설을 읽는 내내 사키야마 다미(崎山多美)의 문체를 떠올렸다. 사키야마는 번역의 불가능성을 말할 때 둘째가라면 서러운 오키나와 출신 작가로, 그녀 특유의 문체는 일명 ‘다미 고토바(多美コトバ)’로 통한다. 이로써 내 사전에 '다미 고토바'에 이어 '다와다 고토바'가 추가되었다. 사키야마는 질서정연한 표준일본어 사용을 거부하고, 오키나와 시마고토바(섬말), 그것도 오키나와 안에서도 통용되기 어려운 이도(離島)의 시마고토바를 사용해 견고한 일본어 체계에 균열을 낸다. 여기에 고마워(コマオー), 괜찮아(ケンチャナ), 많이많이(マニマニ), 기쁘다(キップタ) 등의 가타카나로 표기한 한국어까지 틈입하면서 작품 속 언어체계는 한층 더 어지럽게 흐트러진다. 자신이 구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한국어 가운데 특히 좋아하는 단어들이라는 작가의 직접적인 언급도 있었지만, 놀랍게도 한국어와 시마코토바가 정말 아무런 위화감 없이 작품 속에 녹아들고 있다7)

다와다는 소설이 아닌 에세이에서 종종 이런 고백을 한다. “언제나 모어 바깥으로 나가는 즐거움을 말하는 내가 일본인 때문에 엑소포니를 강요받은 역사가 있는 나라에 가면, 엑소포니란 말에 갑자기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모어 바깥으로 나가길 강요한 책임이 분명히 처리되기 전에는 확실히 엑소포니의 기쁨을 설명하기가 불가능하다"라고.8)

다와다의 작품은 다양한 언어가 춤추는 화려한 엑소포니의 무대처럼 보이지만, 그 엑소포니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멈춰선 어두운 지점 또한 존재한다. 다와다는 이를 가리켜 '강요된 엑소포니'라고 표현한다. 오키나와 역시 엑소포니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지역이다. 다와다의 엑소포니가 닿지 못하고 멈춰선 지점을 가벼운 발걸음은 아니지만) 사키야마가 통과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경 너머로, 모어 바깥으로, 언어와 언어 사이를 가로지르는 모험은 계속되어야 한다.Hiruko 일행의 다음 여행지는 과연 어디일까? 만약 그곳이 한국이라면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싶다.

손지연
저서 <전후 오키나와문학을 사유하는 방법-젠더, 에스닉, 그리고 내셔널 아이덴티티>, <냉전 아시아와 오키나와라는 물음>(공편), <전후 동아시아 여성서사는 어떻게 만날까>(공편), 역서 <오시로 다쓰히로 문학선집>, <기억의 숲>, <오키나와와 조선의 틈새에서> <오키나와 영화론>,  <슈리의 말> 등이 있다. 본지 편집위원, sonson@khu.ac.kr

1) 다와다 요코, 최윤영 역, <눈 속의 에튀드> 작품해설, 현대문학, 2020, 420-421쪽.

2) 다와다 요코, 유라주 역, <여행하는 말들>, 돌베개, 2018, 129쪽.

3) 위의 책, 23~24쪽.

4) 다와다 요코, 정수윤 역, <지구에 아로새겨진>, 은행나무, 29~30쪽. 이하, 본문에 쪽수 표기함. 괄호안은 모두 필자 주.

5) 고향 혹은 나라라는 의미. 일본어가 능숙하지 못한 나누크는 둘의 차이를 알지 못한다.

6) 정수윤, 앞의 책, 342-343쪽.

7) 사키야마 다미, 손지연 임다함 역, <사키야마 다미>(근현대일본여성문학선집 17), 어문학사, 2019, 201-202쪽.

8) 다와다 요코, 유라주 역, 앞의 책, 86~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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