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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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째주 · 2025
[8월 1째 주 역사로 보는 세상] 석유가 그은 국경
영화로 세상을 보다

[8월 1째 주 역사로 보는 세상] 석유가 그은 국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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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군이 1990년 8월 2일 새벽 쿠웨이트를 기습‧점령하자, 면적 1만 7천㎢에 불과한 산유국은 순식간에 전지구적 갈등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사담 후세인은 “제국주의가 자와 선을 잘못 그었다”며 국경선을 무효화하고 합병을 선언했지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이틀 만에 결의 660호를 채택해 즉각 철수를 요구했다. 그러나 결의안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28개국 73만 여 병력이 페르시아만으로 이동했고, 700여 기 유전은 킬로미터 높이의 불기둥 속에서 검은 낙진을 토해냈다. 생중계된 불길은 냉전 직후 세계가 잠시 맛본 평화의 단꿈을 집어삼키며 국경·자원·안보라는 낡은 공식을 소환했다. ‘사막의 폭풍’ 작전이 남긴 원유가와 난민, 환경 재앙은 석유가 국가의 생명줄이자 인류 공통의 화약고임을 각인시켰다.

쿠웨이트 침공이 제기한 첫 질문은 “땅속 자원은 누구의 것인가”였다. 국경선은 정치적 경계지만 석유는 경제·군사·기후를 관통하는 전략재로서 가격이 매겨지고, 탱크와 송유관을 따라 권력이 이동한다. 국제에너지기구에 따르면 전 세계 원유의 80%가 국가 혹은 국영기업에 의해 통제되지만, 선물 가격의 90% 이상은 소수 금융기관이 좌우한다(IEA, 2024). 주권과 시장의 경계가 겹치지 않는 이 모순은 “한 나라가 밟고 선 흙이 과연 그들만의 것이냐”는 윤리적 딜레마로 이어진다. 1990년대 내내 계속된 경제 제재와 복구 비용은 쿠웨이트의 막대한 오일머니조차 빠르게 증발시켰고, 재건 과정에서 이주노동자 차별이라는 새로운 불평등이 고착됐다. 결국 석유 피라미드는 ‘생산국·소비국·금융자본’이라는 삼각 구도 위에서 끊임없이 재편되며 어느 지점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 복합적 모순을 음울한 감각으로 해부한 작품이 스티븐 개건의 《시리아나》(2005, 128분, 스릴러, 아카데미 각본상)와 폴 토머스 앤더슨의 《데어 윌 비 블러드》(2007, 158분, 드라마, 아카데미 촬영·남우주연상)다. 《시리아나》는 중동 국영석유회사 인수전을 둘러싼 로비스트·CIA·왕실의 미로를 통해 서류 한 장이 미사일보다 살벌하다는 진실을 드러낸다. 《데어 윌 비 블러드》는 20세기 초 캘리포니아에서 우물을 파는 청부업자 플레인뷰의 독기 어린 욕망을 따라가며 석유가 인간 영혼을 갉아먹는 악마적 거울임을 설파한다. 전자의 각서 한 장은 ‘제재 해제’라는 폭탄을 품고, 후자의 엔딩을 울리는 기차 소리는 국경과 시대를 넘어 성장 앞에 무너지는 가치를 장송한다. 두 영화 모두 스펙터클 대신 인물의 파열음을 통해 자원의 사회적 비용을 고발한다.

쿠웨이트 사태와 두 영화는 시기·장소가 다르지만, 석유가 그려내는 권력의 지도라는 점에서 결을 공유한다. 침공 전야 바그다드의 군가와 《데어 윌 비 블러드》의 종소리는 ‘성스러운 공동체’ 붕괴를 알리는 사이렌이다. 《시리아나》 속 왕세자가 꿈꾸는 ‘석유 이후’ 도시 비전이 자본 힘에 좌절되는 장면은 걸프전 뒤 쿠웨이트의 민영화 계획이 다국적기업 지분 싸움으로 변질된 역사와 포개진다. 결국 자원은 국경을 세우기도 허물기도 하지만, 결정적 순간은 인간의 탐욕과 공포가 작동하는 내면에서 일어난다. 플레인뷰가 원유를 피처럼 뒤집어쓰듯 걸프전 병사들도 그을음 속에서 ‘땅의 피’를 들이마셨다. 영화와 현실 모두 석유가 숭배의 대상이 아닌 오염의 근원임을 증언한다.

오늘의 에너지 지정학은 걸프전을 잉태한 질서보다 더 복잡하다. 우크라이나 전쟁, 홍해 봉쇄, 기록적 폭염 속 전력 수요 증가는 화석연료 공급망의 취약성을 드러냈고, 국제기구는 에너지 분쟁이 고조되면 2030년까지 저소득국 6,000만 명이 빈곤선 아래로 추락할 것이라 경고한다(세계은행, 2025). ‘그린’ 전환은 희토류·리튬이라는 새로운 자원전쟁을 예고하며, 우리의 선택을 재촉한다. UNEP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자동차 주행거리의 30%가 여가 목적이다(UNEP, 2023). 소비자의 페달과 투자 포트폴리오, 기사 한 줄이 모여야만 국경 너머로 부풀어 오르는 화염을 끌 수 있다.

여전히 쿠웨이트 사막에서는 과거 전쟁과 미래 위기가 포개져 타오른다. 석유가 그은 국경은 지리적 선분이 아니라 공동체 내부에 새겨진 균열이고, 우리는 주유기를 잡는 순간 그 균열을 만진다. 질문은 ‘누가 소유하느냐’에서 ‘누가 책임지느냐’로 옮겨간다. 《시리아나》와 《데어 윌 비 블러드》가 보여 주듯, 작은 개인도 투명해지거나 침묵할 필요는 없다. 당신이 지금 선택할 이동 수단과 에너지 습관은 다음 세대의 국경을 새로 그릴 수 있을까? 35년 전 걸프 사막을 뒤덮은 검은 구름은 완전히 걷히지 않았다. 당신의 다음 발걸음이 그 구름을 걷어내는 첫 바람이 되길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