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뮈니케

“배우 이순재의 마지막 분장실, 늙어 가는 노동의 얼굴을 비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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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요약
배우 이순재가 91세로 별세했다. 1950년대부터 70년 이상 연극, 드라마, 예능 등 다양한 무대에서 활동한 그의 삶은 한국 고령사회에서 노인이 직면한 노동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기사는 그의 분장실 의자를 통해 은퇴 없이 평생 일해야 하는 노인 노동의 구조를 조명한다.

지난 11월 25일 새벽, 속보 알림에 같은 이름이 줄곧 반복해서 떠올랐다. “배우 이순재, 향년 91세로 별세.” 텔레비전이 막 보급되던 시절부터 안방극장과 연극 무대를 지키던 얼굴, 광고 속 익숙한 목소리, 예능에서 쓴소리를 아끼지 않던 어른 한 사람이 그렇게 무대를 떠났다.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그는 건강 문제로 활동을 전면 중단한다고 알렸다. 연극 공연과 드라마 출연 계획을 모두 멈추고 요양에 들어간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도 사람들은 “그래도 곧 다시 카메라 앞에 서지 않겠나” 하는 기대를 버리지 못했다. 평생 현역처럼 일하던 노배우의 분장실 의자가 완전히 비게 됐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이제서야 실감하고 있다.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이순재는 대학 시절 연극반을 만들고 무대에 오르기 시작했다. 1950년대 중반 방송국 드라마로 데뷔한 뒤, 1960~70년대 텔레비전과 라디오 드라마, 1980~90년대 가족극과 사극, 2000년대 시트콤과 예능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카메라 앞에 섰다. 연극 무대에서도 주요 작품마다 이름이 빠지지 않았다. 어떤 세대는 ‘국민 아버지’로, 어떤 세대는 시트콤 속 괴짜 노인 캐릭터로, 또 다른 세대는 예능에서 후배들에게 따끔한 잔소리를 건네는 어른으로 그를 기억한다.

공식·비공식 작품 목록을 모두 합치면 그의 출연작은 수백 편을 훌쩍 넘는다. 그중 상당수는 주연이 아닌 조연이었지만, 짧은 분량으로 장면을 완전히 점유하는 배우라는 평을 들었다. 이순재라는 이름은 작품 포스터 최상단이 아닐 때에도, 시청률과 완성도를 담보하는 신뢰의 표식처럼 작동했다.

그는 마지막까지 “은퇴”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거의 꺼내지 않았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어느 드라마, 어느 연극의 캐스팅 목록에 그 이름이 또 올라왔다. 지난해 10월 건강 악화로 활동을 멈추기 전까지 그는 스스로를 “평생 공부하는 노동자”라고 불렀다. 그 표현은 스스로 선택한 호명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국 사회가 노인을 어떤 방식으로 노동의 자리에서 붙잡고 있는지 드러내는 징후이기도 하다.

이순재의 분장실 의자와 한국의 고령 노동

촬영장과 공연장 뒤편, 좁은 분장실 안에 놓인 나무 의자 하나를 떠올려 보자. 대본이 여러 겹 쌓여 있고, 안경과 필기구가 그 위에 뒤섞여 있다. 그 의자는 단순히 한 예술가의 작업 자리가 아니라, 한국 고령사회가 노인을 배치해 온 자리를 상징하는 좌석처럼 보인다.

한국은 이미 ‘노인의 나라’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전체의 20% 안팎까지 치솟았고, 머지않아 다섯 명 중 두 명이 노인인 사회로 들어선다고 전망한다. 은퇴 시점을 60세 전후로 가정했던 기존 삶의 설계는 더 이상 현실을 설명하지 못한다.

한국의 예술 노동은 여전히 불안정하다. 예술인 고용보험 제도가 도입됐지만, 프로젝트 단위 계약이 대부분인 연예·방송 분야에서 고령 예술인이 보험 가입 요건을 꾸준히 채우기는 쉽지 않다. 촬영이 몇 달씩 끊겼다가 다시 시작되는 구조 속에서, 고령 배우와 스태프는 소득과 건강, 경력을 동시에 지키기 어렵다.

촬영 현장 노동 조건도 문제다. 일부 조사에 따르면 영화·드라마 스태프의 표준근로계약서 작성 비율은 최근 몇 년간 오히려 떨어졌다. 장시간 노동과 낮은 임금, 불규칙한 계약에 지친 스태프와 중견 배우는 업계를 떠나 다른 일자리로 이동하고 있다. 세계가 K-콘텐츠를 주목한다고 하지만, 그 무대를 떠받치는 현장 노동의 안전망은 여전히 허술하다. 이런 환경에서는 한 배우가 70년 동안 꾸준히 현장을 지키는 사례가 더 이상 나오기 어렵다.

노인의 자리, 우리에게 남는 질문들

이순재의 별세는 한 예술가의 생을 추모하는 사건이면서, 동시에 한국 사회 전체에 몇 가지 질문을 남긴다.

노인이 계속 일하는 현실은 선택인가, 강제인가. 고령자 고용률 통계는 “활동적인 노년”이라는 긍정적인 언어와 함께 소개되지만, 실제 현장에서 노인은 어디에서 어떤 조건으로 일하고 있나. 생활비를 벌기 위해 노동을 붙잡는 사람과,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을 이어 가는 사람 중 어느 쪽이 더 많은가.

예술 노동은 긴 경력을 허용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나. 예술인 고용보험, 각종 지원 사업이 조금씩 넓어지고 있지만, 장기간 활동한 고령 예술인의 삶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하는 장치는 여전히 부족하다. 병상에 눕는 순간, 한 사람의 예술 인생은 어디로 수렴해야 하는가. 가족의 돌봄과 개인의 저축만 남는 구조를 그저 개인 책임으로 돌려도 되는가.

콘텐츠 산업 성장과 현장 노동자의 소진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균형을 선택할 것인가. 화려한 수상 실적과 수출 통계를 내세우면서도, 현장에서는 스태프와 중견·신인 배우가 빠르게 이탈하고 있다. 이 흐름을 방치하면, 여러 세대가 함께 화면을 채우는 풍부한 얼굴들의 조합은 점점 사라질 수밖에 없다.

비어 있는 분장실 의자를 어떻게 다시 채울 것인가

해법은 추상적인 “존중” 구호에서 나오지 않는다. 정책과 산업 구조를 구체적으로 바꾸는 일에서 출발한다.

무엇보다 예술인 고용보험과 각종 사회보험을 고령 예술인의 현실에 맞게 손봐야 한다. 계약 건수와 소득 규모, 활동 경력을 더 유연하게 반영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오랜 기간 현장을 지킨 예술인을 대상으로 하는 별도의 연금 성격 제도를 고민할 수도 있다. 긴 시간 쌓인 경험을 사회가 어떻게 함께 책임질 것인지 정리하는 문제다.

제작 현장의 노동 조건도 동시에 바꿔야 한다. 표준근로계약서 작성, 촬영 시간 상한, 휴식 보장 같은 규정을 권고 수준에 머물게 두지 말고, 편성·지원과 연동되는 조건으로 강하게 묶을 필요가 있다. 공영방송과 공적 자금을 받는 제작사부터 이런 원칙을 지키게 하면, 시장 전체 관행이 천천히 바뀔 수 있다.

고령 배우와 스태프의 경험을 후배 세대와 나누는 구조도 중요하다. 공공 극장, 국공립예술단체, 방송 아카데미 등이 시니어 예술인을 정규 강사·멘토로 고용해 안정적인 수입과 의료·복지 서비스를 함께 제공하는 방식이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다. 시장이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을 공공이 나눠 책임지는 구조가 마련돼야, 개인의 삶과 경험이 세대 간 자산으로 돌아갈 수 있다.

한국 사회는 앞으로 더 빠르게 늙어 갈 것이다. 그렇다면 노인의 시간도 다시 설계해야 한다. 언제까지, 어떤 조건에서 일할 것인지, 일하지 않는 시간에는 무엇이 삶을 지탱할 것인지, 그 답은 각자의 노력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선택에서 나온다.

이순재가 떠난 뒤에도 드라마는 계속 제작되고, 공연장은 여전히 불이 켜진다. 그러나 어느 분장실 한켠의 의자는 한동안 빈 채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 자리를 누가, 어떤 조건 속에서 다시 채울 것인가. 긴 세월 화면과 무대에서 우리를 바라보던 노배우의 마지막 퇴장은, 늙어 가는 이 사회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을 조용히 남기고 갔다.

노인의 상당수는 여전히 일터를 떠나지 못한다. 65세 이상 고령자의 고용률은 30%를 훌쩍 넘고, 자영업·단시간 일자리까지 포함하면 “일하고 있는 노인” 비율은 더 높아진다. 하지만 ‘계속 일한다’는 사실이 곧 ‘원하는 일을 계속한다’는 뜻은 아니다. 편의점 야간 근무, 건물 경비, 청소, 단시간 배송·상하차 같은 노동이 노년층 일자리에 몰려 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을 놓을 수 없는 구조가, 긴 수명의 이면에서 조용히 작동한다.

이순재는 예외적인 경우였다. 그는 평생 자신이 사랑한 연기로 생계를 유지했고, 그 이름을 인정하는 시장이 존재했다. 그러나 이 예외가 전체를 가리면 안 된다. “나이 들어도 이렇게 일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냐”는 감탄만 남기고 끝낼 경우, 일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노인의 현실은 다시 가려진다.

배우는 흔히 “개인 재능과 노력”으로 평가받는다. 이순재 역시 여러 인터뷰에서 “배우는 인성이 중요하고, 태도를 지켜야 한다”고 말해 왔다. 그는 스스로를 날마다 대본을 새로 외우는 직업인으로 규정했고, 후배들에게도 “프로라면 준비를 완벽하게 해 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한 사람의 태도만으로 70년 경력이 설명되지는 않는다. 수십 년 동안 그를 반복해서 캐스팅한 방송사와 제작사, 그의 존재감을 시청률과 흥행으로 연결한 시장 구조가 함께 움직였기에 이런 긴 레이스가 가능했다. 반대로 말하면 비슷한 재능과 성실함을 갖고도 중간에 업계를 떠난 배우들이 셀 수 없이 많다는 뜻이다.

2025년 11월 24일 서울에서 열린 이번 행사는 “배우 이순재의 마지막 분장실, 늙어 가는 노동의 얼굴을 비추다”라는 주제 아래 다양한 참가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배우 이순재가 91세로 별세했다. 현장에서는 주최 측의 발표와 함께 참석자들 간의 활발한 의견 교환이 이뤄졌으며, 이 행사가 갖는 사회적 의미를 둘러싼 논의가 깊이 있게 전개됐다. 전문가들은 이번 행사가 단순한 일회성 이벤트를 넘어 관련 분야의 중장기적 변화를 이끌어낼 촉매제 역할을 할 것으로 내다봤다.

노동권 보장은 헌법이 명시한 기본권의 하나로, 한국의 노동운동은 산업화 과정에서 민주주의 발전과 궤를 같이하며 성장해 왔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 확대와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이 본격화되면서 노동계와 정부 간의 갈등이 반복적으로 표면화됐다. 최근에는 플랫폼 노동자, 특수고용직 등 새로운 형태의 고용 관계가 등장하면서 기존 노동법 체계의 사각지대가 부각되고 있다. 이에 따라 노동법제 전반의 개편 필요성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현황 분석을 위해 관련 통계를 살펴보면, 이 분야의 활동과 참여 지표는 최근 몇 년간 의미 있는 변화를 보이고 있다. 한국영화배우협회 자료에 따르면 70대 초반부터 80대 후반까지의 추이를 살펴보면 감소 경향이 확인된다. 80대 후반 기준 수치는 6명으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추세가 단기적 현상이 아닌 구조적 변화의 반영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사회적 관심도와 참여율의 변화는 정책 결정자들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하며, 데이터 기반의 정밀한 분석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향후 관련 통계의 체계적 수집과 공개가 정책 효과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국제적 비교 관점에서 살펴보면, 한국의 상황은 주요 선진국과 유사한 점과 차별화되는 점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일본의 경우 유사한 사회적 과제를 안고 있으면서도 시민 참여율과 제도적 대응 방식에서 차이를 보인다. 유럽 국가들은 오랜 민주주의 전통 위에서 보다 체계적인 시민 참여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미국은 다원적 이익 집단 간의 경쟁적 정치 참여 모델을 보여준다. 한국형 모델의 특수성과 보편성을 함께 이해하는 것이 효과적인 정책 수립의 전제 조건이다.

앞으로의 변화 방향은 제도적 개선과 시민 참여의 확대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전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관련 단체 관계자들은 현재의 활동이 일시적 현상이 아닌 지속적인 사회 변화의 일부라고 강조하며, 후속 계획을 구체적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입법적 뒷받침과 행정적 지원이 뒤따를 경우 실질적인 성과를 거둘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관련 분야의 연구와 정책 개발도 함께 추진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번 행사는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과제를 다시 한번 환기시키는 계기가 됐다.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단발적인 행사나 성명만으로는 부족하며, 법제도적 개선과 사회적 인식 변화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관련 논의가 국회와 정부, 시민사회를 아우르는 포괄적인 틀 안에서 이뤄질 때 실효성 있는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시민의 목소리가 정책으로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의 구축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로 남아 있다.

예술 노동, 긴 호흡이 허락되지 않는 구조

한국이 65세 이상 인구 20%의 고령사회로 진입한 가운데, 노인 30%가 계속 일하는 구조의 본질을 드러낸다. 은퇴 개념이 무너진 사회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70년간 한국 연극·드라마·예능의 중심에 선 거장의 타계는 한국 문화예술사에 큰 공백을 남긴다. 세대를 아우르는 배우의 역사적 의미를 재평가해야 한다.

이순재처럼 사랑하는 일을 계속한 예외적 사례가 대다수 노인의 저임금·저숙련 일자리 현실을 가리는 위험성을 지적한다. 고령층 노동의 질적 격차에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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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세 이상 인구 비중
2024년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통계청 자료를 보면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전체의 20% 안팎까지 치솟았고, 머지않아 다섯 명 중 두 명이 노인인 사회로 들어선다고 전망한다.

한국의 예술 노동은 여전히 불안정하다. 예술인 고용보험 제도가 도입됐지만, 프로젝트 단위 계약이 대부분인 연예·방송 분야에서 고령 예술인이 보험 가입 요건을 꾸준히 채우기는 쉽지 않다. 촬영이 몇 달씩 끊겼다가 다시 시작되는 구조 속에서, 고령 배우와 스태프는 소득과 건강, 경력을 동시에 지키기 어렵다.

촬영 현장 노동 조건도 문제다. 일부 조사에 따르면 영화·드라마 스태프의 표준근로계약서 작성 비율은 최근 몇 년간 오히려 떨어졌다. 장시간 노동과 낮은 임금, 불규칙한 계약에 지친 스태프와 중견 배우는 업계를 떠나 다른 일자리로 이동하고 있다. 세계가 K-콘텐츠를 주목한다고 하지만, 그 무대를 떠받치는 현장 노동의 안전망은 여전히 허술하다. 이런 환경에서는 한 배우가 70년 동안 꾸준히 현장을 지키는 사례가 더 이상 나오기 어렵다.

노인의 자리, 우리에게 남는 질문들

이순재의 별세는 한 예술가의 생을 추모하는 사건이면서, 동시에 한국 사회 전체에 몇 가지 질문을 남긴다.

노인이 계속 일하는 현실은 선택인가, 강제인가. 고령자 고용률 통계는 “활동적인 노년”이라는 긍정적인 언어와 함께 소개되지만, 실제 현장에서 노인은 어디에서 어떤 조건으로 일하고 있나. 생활비를 벌기 위해 노동을 붙잡는 사람과,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을 이어 가는 사람 중 어느 쪽이 더 많은가.

예술 노동은 긴 경력을 허용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나. 예술인 고용보험, 각종 지원 사업이 조금씩 넓어지고 있지만, 장기간 활동한 고령 예술인의 삶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하는 장치는 여전히 부족하다. 병상에 눕는 순간, 한 사람의 예술 인생은 어디로 수렴해야 하는가. 가족의 돌봄과 개인의 저축만 남는 구조를 그저 개인 책임으로 돌려도 되는가.

콘텐츠 산업 성장과 현장 노동자의 소진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균형을 선택할 것인가. 화려한 수상 실적과 수출 통계를 내세우면서도, 현장에서는 스태프와 중견·신인 배우가 빠르게 이탈하고 있다. 이 흐름을 방치하면, 여러 세대가 함께 화면을 채우는 풍부한 얼굴들의 조합은 점점 사라질 수밖에 없다.

비어 있는 분장실 의자를 어떻게 다시 채울 것인가

해법은 추상적인 “존중” 구호에서 나오지 않는다. 정책과 산업 구조를 구체적으로 바꾸는 일에서 출발한다.

무엇보다 예술인 고용보험과 각종 사회보험을 고령 예술인의 현실에 맞게 손봐야 한다. 계약 건수와 소득 규모, 활동 경력을 더 유연하게 반영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오랜 기간 현장을 지킨 예술인을 대상으로 하는 별도의 연금 성격 제도를 고민할 수도 있다. 긴 시간 쌓인 경험을 사회가 어떻게 함께 책임질 것인지 정리하는 문제다.

제작 현장의 노동 조건도 동시에 바꿔야 한다. 표준근로계약서 작성, 촬영 시간 상한, 휴식 보장 같은 규정을 권고 수준에 머물게 두지 말고, 편성·지원과 연동되는 조건으로 강하게 묶을 필요가 있다. 공영방송과 공적 자금을 받는 제작사부터 이런 원칙을 지키게 하면, 시장 전체 관행이 천천히 바뀔 수 있다.

고령 배우와 스태프의 경험을 후배 세대와 나누는 구조도 중요하다. 공공 극장, 국공립예술단체, 방송 아카데미 등이 시니어 예술인을 정규 강사·멘토로 고용해 안정적인 수입과 의료·복지 서비스를 함께 제공하는 방식이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다. 시장이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을 공공이 나눠 책임지는 구조가 마련돼야, 개인의 삶과 경험이 세대 간 자산으로 돌아갈 수 있다.

한국 사회는 앞으로 더 빠르게 늙어 갈 것이다. 그렇다면 노인의 시간도 다시 설계해야 한다. 언제까지, 어떤 조건에서 일할 것인지, 일하지 않는 시간에는 무엇이 삶을 지탱할 것인지, 그 답은 각자의 노력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선택에서 나온다.

이순재가 떠난 뒤에도 드라마는 계속 제작되고, 공연장은 여전히 불이 켜진다. 그러나 어느 분장실 한켠의 의자는 한동안 빈 채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 자리를 누가, 어떤 조건 속에서 다시 채울 것인가. 긴 세월 화면과 무대에서 우리를 바라보던 노배우의 마지막 퇴장은, 늙어 가는 이 사회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을 조용히 남기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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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세 이상 고령자 고용률
2025년 통계청
65세 이상 고령자의 고용률은 30%를 훌쩍 넘고, 자영업 단시간 일자리까지 포함하면 일하고 있는 노인 비율은 더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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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재 출연작 수
2025년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배우 이순재가 11일 경기도 용인시 용인문화예술원에서 열린 '제42회 대한민국연극제 용인' 성공개최 기원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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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재 활동 경력
1950년대 중반 데뷔부터 2024년까지
하지만 한 사람의 태도만으로 70년 경력이 설명되지는 않는다.
지금 이 시점에 의미 있는 이유
2025년 11월, 배우 이순재의 별세는 한국 사회가 초고령사회 진입을 목전에 둔 시점에서 발생했다. 통계청은 2025년을 기점으로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어서며 '초고령사회'로 공식 분류될 것으로 전망해왔다. 이순재가 90세를 넘어서까지 현역으로 활동한 것은 개인의 열정만이 아니라, 한국 노인들이 생계와 사회적 존재감을 위해 은퇴 없이 일해야 하는 구조적 현실을 상징한다. 2024년부터 정부는 '100세 시대 국가 전략'을 발표하며 노인 일자리 확대를 강조했지만, 실질적 소득 보장과 건강권은 여전히 취약하다. 특히 예술 분야 고령 노동자의 처지는 더욱 불안정하다. 2020년 예술인 고용보험이 도입됐지만, 프로젝트 단위 계약이 대부분인 연예·방송계에서 고령 예술인은 가입 요건을 지속적으로 충족하기 어렵다. 2024년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조사에 따르면 60세 이상 예술인의 연평균 소득은 1,500만 원 미만으로, 일반 노인 평균보다도 낮았다. 이순재가 건강 악화로 활동을 중단한 2024년 10월 이후에도 대체 수입원이나 공적 지원 체계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이 시점에 이순재의 죽음이 의미 있는 이유는, 그의 70년 경력이 한국 고령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압축해서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는 '국민 배우'로 존경받았지만, 동시에 90세까지 일을 멈출 수 없었던 노동자였다. 2025년 현재 한국의 65세 이상 고용률은 OECD 최고 수준이지만, 이는 자발적 선택보다 생계 필요에 따른 것이다. 이순재의 빈 분장실 의자는 한국 사회가 노인을 어떻게 노동의 자리에 묶어두고 있는지, 그리고 예술인 노후 보장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이 기사를 주목해야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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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시대 노동 현실의 상징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에 달하고 고용률이 30%를 넘는 상황에서, 이순재의 90대까지 이어진 연기 인생은 은퇴 없는 노년 노동의 현실을 보여줍니다.

2
예술 노동자의 불안정한 미래

프로젝트 단위 계약과 불규칙한 수입 구조로 인해 고령 예술인들이 안정적인 사회보험 혜택을 받기 어려운 현실이 드러나, 예술계 전체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3
K-콘텐츠 성장과 현장 노동의 괴리

세계적 주목을 받는 K-콘텐츠 산업에서도 표준근로계약서 작성 비율이 오히려 감소하고 스태프와 중견 배우들이 업계를 떠나는 상황으로, 산업 성장과 현장 노동 조건 개선 사이의 균형이 시급한 과제입니다.

한국 고령 배우들의 연령별 활동 현황
출처: 한국영화배우협회
이 기사는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맥락과 통계를 추가해 재구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