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서울 영등포구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 열린 특별조정위원회 2차 사후 조정회의에서 서울 시내버스 노사가 임금협상에 극적으로 합의한 뒤 박점곤 서울시버스노동조합 위원장과 김정환 서울시버스사업조합 이사장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14일 서울 영등포구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 열린 특별조정위원회 2차 사후 조정회의에서 서울 시내버스 노사가 임금협상에 극적으로 합의한 뒤 박점곤 서울시버스노동조합 위원장과 김정환 서울시버스사업조합 이사장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서울의 하루는 버스로 시작해 버스로 끝난다. 지하철역까지 걷기엔 먼 언덕마을, 비 오는 날 아이 손을 잡고 건너는 큰길, 새벽 첫차에 몸을 싣는 청소노동자와 야간 근무자를 생각하면 ‘버스’는 교통수단을 넘어 도시의 생존 장치에 가깝다. 그 장치가 이틀 동안 멈춰 섰다. 2026년 1월 13일 첫차부터 시작된 서울 시내버스 파업은 1월 14일 밤 협상 타결로 마무리돼 15일 새벽 첫차부터 운행이 정상화됐다. 짧게는 이틀, 하지만 시민이 체감한 불안은 그 이상이었다. 더 중요한 건 이번 파업이 단순한 ‘임금 협상 결렬’이 아니라, 서울 대중교통을 떠받치는 제도 자체의 균열을 드러낸 사건이었다는 점이다.

이번 파업의 표면적 원인은 임금·단체협약(임단협) 교착이었다. 노조는 “현장의 생존권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입장이었고, 사측은 “현 구조에서 비용 급증을 감당할 수 없다”고 맞섰다. 파업으로까지 간 이유는 양측의 요구가 단순한 ‘몇 퍼센트 인상’의 문제가 아니라, 임금의 계산 방식과 정년, 노동환경이 한꺼번에 얽힌 복합 매듭이었기 때문이다.

핵심 불씨는 ‘통상임금’이었다. 통상임금은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 같은 각종 가산수당의 기준이 되는 임금이다. 이 기준이 넓어지면, 시간외수당의 산정 바닥이 올라가 총인건비가 크게 뛸 수 있다. 노조가 통상임금 문제를 “법이 정한 정당한 권리”로 규정하며 반영을 요구한 건, 단지 숫자의 싸움이 아니라 “같은 노동에 대한 동일 기준”을 확인받는 문제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사측이 통상임금 확대를 경계한 이유는 분명하다. 임금 인상률을 얼마로 합의하든, 통상임금 범위가 넓어지는 순간 ‘수당의 연쇄 상승’이 붙어버릴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측은 단순 인상보다 임금체계 전반을 조정하는 방식, 즉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지속이 어렵다”는 논리로 대응했다.

여기에 정년 문제가 겹쳤다. 노조는 정년을 65세로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버스 운전은 고령화된 노동시장과 맞물리면서 이미 ‘사람을 구하기 어려운 일’이 됐다. 노조 입장에서는 정년 연장이 곧 생계와 직결된다. 사측은 정년 연장이 인력 운용과 비용에 장기 부담을 키운다고 봤다. 게다가 운행환경 개선 요구까지 얹혔다. 휴식시간, 배차 간격, 현장 관리 방식 등은 단순한 복지 이슈가 아니라 안전과 연결되는 문제다. 현장에서는 “시간에 쫓기면 운전이 거칠어지고, 거친 운전은 시민 안전을 위협한다”는 불만이 반복돼 왔다. 노조가 요구한 것은 결국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사람답게 일할 조건이 없으면, 안전한 운행도 불가능하다.”

서울시의 표정은 복잡했다. 시는 파업 기간 동안 대체 수송과 혼잡 완화 조치를 총동원하면서도, 협상 테이블에서는 재정 부담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서울 시내버스는 준공영제다. 운영은 민간 버스회사가 맡지만, 노선·요금·서비스의 공공성을 유지한다는 명분 아래 지자체가 재정을 투입한다. 적자가 발생하면 지원금으로 메우는 구조가 제도의 핵심이다. 이 구조에서는 임금이 오르는 순간 그 부담이 단순히 ‘회사의 비용 증가’로 끝나지 않는다. 결국 공공 재정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크다. 시민 입장에서는 “버스가 멈추면 안 된다”는 절박함과 “왜 매번 세금으로 땜질하나”라는 불신이 동시에 생긴다. 제도의 취지는 공공성 강화였지만, 갈등이 반복될수록 준공영제의 정당성은 오히려 시험대에 오른다.

결국 협상은 ‘현실적 타협’으로 봉합됐다. 노사는 임금 인상과 정년 연장을 중심으로 합의했다. 임금은 2.9% 인상, 정년은 단계적으로 65세까지 늘리는 방식이 채택됐다. 그리고 갈등의 뇌관이었던 통상임금 문제와 일부 운행환경 관련 쟁점은 즉시 결론을 내기보다 추가 논의로 넘겼다. 시민이 체감할 결과는 명확하다. 버스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고, 출퇴근길의 불안은 일단 멈췄다.

하지만 “왜 파업까지 갔는가”에 대한 질문은 그대로 남는다. 협상은 종결됐지만, 갈등을 만든 구조는 바뀌지 않았다. 준공영제의 특징은 공공이 ‘운행 안정’을 책임지는 대신, 민간의 운영 효율을 활용한다는 데 있다. 문제는 책임의 선이 흐려질 때 발생한다. 임금과 비용이 올라가도 사업주가 즉각적인 위험을 크게 느끼지 않는 구조라면, 협상에서 양측은 현실적 타협보다 강경한 선택으로 기울기 쉽다. 노조는 “버티면 공공이 결국 해결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고, 사측은 “재정 지원이 결국 뒷받침될 것”이라는 계산을 하게 된다. 그 사이에서 시민은 매번 멈춰 선 정류장을 바라보게 된다.

이번 파업은 그래서 ‘임금 2.9%’로 끝난 사건이 아니다. 통상임금이라는 법적 기준 변화, 고령화와 인력난, 안전과 노동환경, 그리고 준공영제의 재정 지속 가능성이 한꺼번에 충돌한 사건이다. 도시가 20년 전과 달라졌듯, 버스를 지탱하는 제도도 달라져야 한다는 압력이 이번 이틀 동안 표면 위로 올라왔다.

서울시가 다음 협상에서 같은 풍경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단순히 “파업을 막는 기술”만으로는 부족하다. 누가 비용을 책임지고, 어떤 노선을 공공이 보장하며, 민간의 운영과 공공의 통제를 어디까지 분리할 것인지 제도의 설계 문제로 들어가야 한다. 파업은 끝났지만 질문은 더 커졌다. “서울의 버스는 누구의 시스템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다음 정류장에서 또 다른 멈춤이 시작될 가능성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