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5일 새벽, 서울의 도로 위로 다시 버스가 나타났다. 13일 첫차부터 멈춰 섰던 엔진이 꼬박 이틀 만에 다시 돌기 시작했다. 노사는 임금 2.9% 인상과 정년 65세 단계적 연장이라는 합의안에 도장을 찍었다. 시민의 발을 묶었던 파업은 48시간 만에 풀렸지만, 안도감 뒤에는 찝찝한 질문이 남는다. “왜 서울의 버스는 협상이 깨질 때마다 도시 전체를 볼모로 잡아야 하는가.”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이번 파업 국면에서 “버스 준공영제, 이제는 고쳐 쓰기가 아니라 다시 설계할 때”라고 단언했다. 이 말은 단순한 행정가의 의견이라기보다, 2004년 도입 이후 20년 넘게 유지해 온 시스템이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경고음으로 들린다.
준공영제의 작동 원리는 명확하다. 버스 운영은 민간 회사가 맡되, 노선과 요금 결정권은 서울시가 갖는다. 대신 운송 수입을 공동 관리하고, 비용보다 수입이 적어 적자가 나면 그 차액을 지자체가 세금으로 전액 보전해 준다. 도입 초기에는 과속이나 난폭운전을 줄이고, 적자 노선 운행을 유지해 공공성을 확보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성과를 만든 구조’가 시간이 흐르며 ‘비용과 갈등을 증폭시키는 구조’로 변질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이번 파업의 표면적 이유는 임금 협상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준공영제의 구조적 모순이 자리한다. 노조는 물가 상승과 노동 강도를 근거로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사측은 인건비 부담을 호소한다. 하지만 적자를 세금으로 메워주는 구조 탓에, 사측은 비용 절감이나 경영 효율화에 사활을 걸 유인이 부족하다. 결국 “적자가 나도 시가 메워준다”는 암묵적 전제가 노사 협상을 ‘도덕적 해이’와 ‘벼랑 끝 전술’ 사이로 몰아넣는다.
재정 부담은 이미 경고등이 켜진 상태다. 서울시 자료를 보면, 시내버스 재정지원금은 2023년 8,915억 원에 달했다. 2024년과 2025년에도 4,000억 원대를 웃도는 예산이 투입됐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매년 수천억 원의 세금이 ‘밑 빠진 독’처럼 흘러 들어가는 셈이다. 서울시의회 보고서 역시 최근 5년간 64개 버스 업체의 운송 적자가 매년 약 5,000억 원 규모로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적자가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된 상황에서, 협상은 매번 “시민의 주머니를 얼마나 더 열 것인가”를 두고 벌이는 치킨 게임이 된다.
도시의 지형은 변했는데 제도는 20년 전 지도 위에 머물러 있다는 점도 문제다. 준공영제는 간선 도로 위주로 대형 버스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데 최적화해 있다. 하지만 지금 서울 시민이 원하는 이동은 촘촘한 ‘생활권 연결’이다. 지하철역과 집 사이, 언덕 위 주거지와 상업지 사이의 ‘마지막 1km’를 대형 버스가 채우기는 어렵다. 빈 차로 달리는 대형 버스에 세금을 쏟아붓는 사이, 정작 시민들은 마을버스나 개인형 이동장치로 빠져나가는 역설이 발생한다.
서울시는 최근 ‘준공영제 20주년 혁신 방안’을 통해 칼을 빼 들었다. 핵심은 ‘사후 정산’에서 ‘사전 확정’으로의 전환이다. 적자가 나는 대로 전액을 메워주던 방식에서, 미리 정한 표준 원가(표준 단가)를 기준으로 상한선을 두고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민간 업체의 자발적인 비용 절감을 유도하고 재정 누수를 막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단순히 돈줄을 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근본적인 해법은 ‘역할 분담’의 재설계에 있다. 정원오 구청장이 제안한 ‘노선별 이원화’나 성동구의 ‘성공버스’ 사례가 대안으로 꼽힌다. 수요가 충분해 수익이 나는 노선은 민간의 효율성에 맡기고, 수익은 적지만 주민 이동권에 필수적인 노선은 공공이 더 확실하게 책임지는 방식이다. 실제로 성동구가 대중교통 소외 지역에 투입한 무료 셔틀버스는 1년 만에 일평균 이용자 3,000명을 넘기며, 잠재된 수요를 증명해 냈다.
이번 파업 합의안인 ‘2.9% 인상’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유예일 뿐이다. “운영은 민간이, 책임은 공공이”라는 20년 된 타협은 유효기간이 끝났다. 재정 지원 방식의 개편부터 노선의 공공성 재정의, 생활권 중심의 교통망 재편까지. 버스가 다시 멈추지 않게 하려면, 지금이야말로 낡은 엔진을 끄고 시스템 전체를 다시 설계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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