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서울 동대문구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2026학년도 편입학 필기고사를 치른 수험생들이 시험 종료 후 고사장을 나서고 있다. 올해 한국외대 편입 전형은 서울·글로벌 총 490명 모집에 7,446명이 지원해 평균 경쟁률 15.2대 1을 기록했고, 최고 경쟁률 학과는 행정학과로 38.17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사진은 기사와 상관 없다 뉴스1 제공 
18일 서울 동대문구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2026학년도 편입학 필기고사를 치른 수험생들이 시험 종료 후 고사장을 나서고 있다. 올해 한국외대 편입 전형은 서울·글로벌 총 490명 모집에 7,446명이 지원해 평균 경쟁률 15.2대 1을 기록했고, 최고 경쟁률 학과는 행정학과로 38.17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사진은 기사와 상관 없다 뉴스1 제공 

인공지능이 에세이를 대신 써주고 코딩까지 해주는 시대가 됐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세계 최고의 공과대학이라는 MIT에서 학생들이 문학을 읽고 시를 낭송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는 것이다. 기술이 모든 것을 대체할 것처럼 보이는 이 시대에, 왜 공대생들은 오히려 가장 인간적인 훈련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걸까.

오길영 충남대 영문과 교수가 답변했다. 문학평론가이기도 한 그는 최근 자신의 SNS에 올린 글에서 한 교육방송 프로그램을 인용하며 MIT 학생이 문학 읽기를 '마음의 근육 훈련(mental exercise)'이라고 표현한 대목에 주목했다. 오 교수의 진단은 날카롭다. "AI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AI에게 생각과 판단을 맡긴다면, 그래서 마음의 근육을 훈련하는 걸 포기한다면, 인류는 육체적으로는 아닐지라도 정신적으로는 멸종의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다."

정신적 멸종이라는 표현은 과격해 보이지만, 그의 논지를 따라가다 보면 단순한 수사가 아님을 알게 된다. 오 교수는 10여 년 전 저서 《힘의 포획》에서 한국과 미국 대학의 교양교육을 비교 분석한 바 있는데, AI가 일상이 된 지금 그때 썼던 글이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고 말한다. 그가 보기에 문제의 핵심은 단순하다. 미국의 명문대들은 공대생에게도 인문학적 소양을 필수로 요구하는 반면, 한국 대학들은 "AI 기술만 가르치면 만사가 해결될 거라고 믿는, 입만 열면 AI를 읊조리는 천박한 대학행정 책임자, 교육관료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명문 공과대학들의 커리큘럼을 들여다보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MIT의 General Institute Requirements(GIRs)는 모든 학부생이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엄격한 공통 교육과정으로, 이 중 인문·예술·사회과학(HASS) 분야에서 8과목을 반드시 들어야 한다. 이는 전체 이수학점의 약 25%에 해당하며, 그중 2과목은 의사소통 중심(CI-H) 과목이어야 한다. 게다가 전공과목 중 2과목도 의사소통 중심(CI-M) 과목이어야 할 만큼 글쓰기와 소통 능력을 중시한다.

MIT 통합학습이니셔티브 소속 비프케 데네케 교수의 설명은 이런 교육 철학의 배경을 이해하게 해준다. 그는 "MIT는 비정상적으로 강력한 인문학 요건을 갖추고 있으며, 이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데네케 교수가 강조하는 것은 기술이 거의 필요 없지만 인문학의 핵심인 것들이다. 비판적 사고 연습, 인간의 주체성과 세계를 형성하는 책임감 강조, 과거와 현재 인간 사회의 가치의 복잡성을 음미하는 것, 그리고 좋은 시 한 줄에 감동받는 것. 그는 이런 훈련들이 학생들의 STEM 교육 및 기술 중심 세계에서의 작업과 어떻게 융합되는지가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이런 미국의 상황과 비교하면 한국 대학의 현실은 암울하다. 한국연구재단이 2025년 1월 발표한 '2024년도 대학연구활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인문학 전임교원은 2020년 9,222명에서 2024년 8,125명으로 1,097명이나 감소했다. 전임교원 중 인문학 비중도 같은 기간 12.5%에서 11.2%로 줄었다. 반면 의약학 분야는 21.9%에서 23.4%로 늘어나 대조를 이룬다.

이강재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는 이런 현상의 원인을 구조적으로 분석한다. 인문학 전임교원이 줄어드는 것은 사회적 축소나 학문의 필요성 때문이 아니라 성과, 취업률, 학생 유지율, 무전공에 따른 재정지원의 영향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단기적으로는 학문후속세대가 적절하게 학문을 할 수 있는 자리를 찾지 못하는 문제가 생기고, 장기적으로는 사회에서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의 역할을 인식하지 못한 채 일방적인 결정이 내려지면서 우리 사회가 가져야 할 건강한 모습을 잃어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안승우 성균관대 철학과 교수는 AI시대에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AI 기술의 눈부신 발전과 빠른 발전 속도로 인해 자칫 놓칠 수 있는 근본 문제를 들여다보는 눈과 힘을 기르는 것이다. 특히 사람의 문제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 그는 AI 시대에 새롭게 정의되어야 할 '사람'의 문제, AI와의 관계 속에서 인간을 어떻게 다시 정립할 것인가의 문제는 인문학이 풀어내야 할 주요 과제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MIT는 단순히 인문학 과목을 이수하게 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같은 대학의 역사학 교수 트리스탄 브라운은 AI 시대에 인문학 교육이 오히려 르네상스를 맞이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학생들은 교내 시험에서 ChatGPT를 사용할 수 없고, 이로 인해 직접 생각하고 글을 쓰는 전통적인 평가 방식이 다시 주목받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오길영 교수는 미국 대학 교양교육의 특징을 네 가지로 정리한다. 학부과정 전체 이수학점의 40~50%를 교양과목에 할애한다는 점, 영어 외 외국어 과목을 3~4과목씩 필수로 이수하게 하며 해당 문화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요구한다는 점, 전공을 불문하고 글쓰기 교육을 강조한다는 점, 그리고 중핵이수제를 통해 모든 학생이 반드시 들어야 할 핵심 교양과목을 지정한다는 점이다.

그는 자연과학의 기초지식을 전혀 모르는 인문사회과학 전공 학생, 혹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교양을 갖추지 못한 자연과학도나 공학도가 학사학위를 받는 것은 미국의 주요 대학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라고 말한다. 특히 미국대학에서는 자연과학이나 공학 분야에서도 글쓰기 능력을 두드러지게 강조하는데, 이것이 가장 뼈아프게 느껴지는 대목이라고 그는 토로한다.

MIT의 데네케 교수는 인문학 위기를 글로벌 관점에서 바라볼 것을 주문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인문학 위기와 예산 삭감 논쟁이 미국이나 유럽 상황에 의해 주도되지만, 세계 다른 곳에서는 오히려 인문학 붐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에서는 유교 고전 연구가 공식적인 당 노선으로 장려되고 있다. 그는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의 위기의 인문학이 언젠가 분열적인 국가 브랜딩을 위해 동원되는 다른 곳의 인문학 붐에 의해 목소리를 잃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결국 오길영 교수의 문제 제기는 대학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학문을 가르치고 배우는 사회적 공간이라는 대학의 역할이 지금처럼 심하게 훼손되고, 대학이 실용지식을 습득하는 취업준비기관으로 간주되는 한 한국대학에서 의미 있는 교양교육의 재편은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AI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도구를 잘 쓰는 법만 배울 것인가, 아니면 도구가 절대 대체할 수 없는 생각하는 힘을 길러낼 것인가. 마음의 근육을 훈련하지 않으면 정신적으로 멸종할 것이라는 오 교수의 경고가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