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이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자리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이날 서울특별시 중구와 보건복지부장관간의 권한쟁의심판사건과 도서정가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헌법소원심판사건 위헌 여부를 선고한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이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자리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이날 서울특별시 중구와 보건복지부장관간의 권한쟁의심판사건과 도서정가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헌법소원심판사건 위헌 여부를 선고한다.

 

2023년 1월 12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도서정가제의 위헌 여부를 다투는 공개변론이 열렸다. 청구인 측 참고인으로 나선 윤성현 한양대학교 정책학과 교수는 재판관들 앞에서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 교육과 학술에 쓰이는 종이책과, 스마트폰으로 회차 단위로 소비되는 웹소설이 같은 법의 적용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이 질문은 단순해 보이지만 20년 넘게 이어진 도서정가제 논쟁의 핵심을 관통한다.

도서정가제는 출판사가 정한 정가 기준으로 할인율을 제한하는 제도다. 현행 출판문화산업진흥법 제22조에 따르면 직접 할인은 정가의 10퍼센트, 마일리지 등 간접 혜택까지 합산하면 15퍼센트가 상한이다. 종이책은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모든 간행물에, 전자출판물은 출판사 신고를 마친 사업자가 발행하고 ISBN을 부여받은 출판물에 적용된다. 사실상 종이책이든 전자책이든 웹소설이든, 정식 출판 절차를 거친 간행물이라면 같은 가격 규제를 받는 구조다. 제도를 지탱하는 전제는 명확하다. 책은 교육과 문화 발전에 필수적인 공공재이므로 시장의 무한 경쟁에 맡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전제가 만들어진 시대와 지금의 출판 시장이 전혀 다른 풍경이라는 데 있다. 윤성현 교수는 학술논문에서 오늘날 도서라는 분류 안에는 문화 콘텐츠는 물론이고 지극히 상업적이고 개인적인 콘텐츠까지 다양하게 포함되어 있으며 그 비중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코믹, 판타지, 로맨스 장르가 주를 이루는 웹소설과 웹툰은 이용자들이 출퇴근길 스마트폰으로 몇 분씩 소비하는 스낵컬처의 대표 형태다. 이런 콘텐츠를 학술서나 교양서와 같은 잣대로 규율하면서 '공공성'이라는 이름을 똑같이 붙이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실제로 시장의 현실은 법의 분류를 이미 뛰어넘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웹소설 시장 규모는 2013년 약 100억 원에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2024년 실태조사 기준 약 1조 3,500억 원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카카오페이지가 2014년 10월 도입한 '기다리면 무료' 모델은 무료 열람과 유료 결제를 결합한 방식으로 웹콘텐츠 시장의 판을 바꿨다. 이 시장의 주된 경쟁 상대는 동네 서점이 아니라 유튜브이고 넷플릭스다. 윤 교수가 논문에서 "웹출판 콘텐츠는 종래의 종이책과 비교하기보다는 OTT와 같은 새로운 문화산업 콘텐츠들과 비교하는 것이 내용상, 형식상으로 더 적절하다"고 쓴 것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그런데 현행법은 이 모든 것을 '간행물'이라는 하나의 범주에 넣어 동일한 가격 규제를 적용한다. 종이책은 인쇄, 유통, 재고 비용이 발생하지만 전자책에는 이런 비용이 없다. 종이책은 서점에 진열되어 단권 단위로 판매되지만, 웹소설은 플랫폼에서 회차 단위로 연재된다. 종이책 출판사의 인세율은 통상 정가의 5~15퍼센트인 반면, 전자책 전문 출판사의 인세율은 그보다 훨씬 높다. 생산 구조도 다르고 유통 구조도 다르고 소비 방식도 다른데, 할인의 상한선만 같다.

 

이 일률적 규제가 낳은 결과는 양쪽 모두에게 불만이다. 종이책 출판계는 웹콘텐츠가 같은 울타리 안에 있으면서도 사실상 규제를 회피한다고 본다. 웹콘텐츠 업계는 종이책 시대에 만들어진 규칙에 묶여 사업 모델의 유연성을 잃는다고 호소한다. 소비자는 어느 쪽이든 책값이 비싸다고 느낀다. 2023년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인 종합 독서율은 43퍼센트까지 떨어졌고, 종이책만 놓고 보면 32.3퍼센트에 그쳤다. 성인 10명 중 6명 가까이가 1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 셈인데, 이 상황에서 가격 할인을 법으로 막아두는 것이 과연 출판 생태계를 지키는 길인지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2023년 7월 20일 헌법재판소는 이 제도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그 논증 과정은 논란을 남겼다. 재판소는 소비자의 자기결정권 제한을 판매자에 대한 규율의 "부수적 효과"로 보고 별도 판단을 하지 않았다. 도서정가제로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것은 책을 사는 독자인데, 그들의 권리가 헌법적 형량의 무대에서 빠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윤성현 교수는 이를 두고 "예외적인 가격 규제의 핵심 근거인 공공성 전제의 충족 여부에 대해 더 깊이 논의하지 않고, 도서를 일률적으로 '지식문화 상품'이라 간주한 뒤 소비자의 문제를 상대적으로 하위 법익으로 치부했다"고 지적했다. 헌법재판소 스스로 1996년 자도소주 구입명령 사건에서 "소비자가 자신의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상품을 선택하는 것을 제약함으로써 자기결정권도 제한하고 있다"며 위헌 결정을 내린 선례가 있는 만큼, 도서정가제 결정에서 소비자의 자기결정권을 별도로 심사하지 않은 것은 일관성의 측면에서도 의문이 남는다.

 

물론 도서정가제 자체를 전면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별개의 문제다. 동네 서점의 존립, 소규모 출판사의 가격 경쟁력, 출판 다양성의 보전이라는 가치는 여전히 무시할 수 없다. 핵심은 '차등화'다. 공공성의 농도가 서로 다른 콘텐츠를 같은 칼로 자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종이책 신간에 대한 가격 보호와, 웹플랫폼에서 연재되는 로맨스 판타지에 대한 가격 보호가 같은 수준의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헌법재판소도 문을 완전히 닫지는 않았다. 결정문에서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3년마다 제도의 타당성을 검토하여 폐지, 강화, 완화 또는 유지 등의 조치를 하여야 한다"는 법 조항을 인용하며 입법 개선의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전자출판산업의 규모와 발전 형태, 소비자의 인식 및 접근성 등을 고려하여 각국은 전자출판물에 대한 도서정가제 적용 여부를 다르게 정할 수 있다"는 설시도 있었다. 2024년 1월 정부는 민생토론회에서 웹툰과 웹소설을 도서정가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발표했고, 같은 해 12월 문화체육관광부는 전자출판물 부가가치세 면세 대상 기준 고시를 개정하여, 국립중앙도서관이 발급하는 새로운 식별체계인 UCI를 적용한 웹콘텐츠에도 부가가치세 면세를 유지하도록 했다. 제도의 경계선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움직임은 느리고, 시장은 빠르다. 법이 종이책 시대의 틀에 머물러 있는 동안 소비자의 읽기 습관은 이미 디지털로 이동했고, 출판의 외연은 웹으로 확장되었다. 20년 전 동네 서점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울타리가 지금은 누구를 지키고 있는 것인지, 혹시 아무도 지키지 못하면서 모두를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답을 내려야 할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