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3일, 서울 시내 한 대형 회의장에 중소 출판사 관계자 수십 명이 모였다. 평소라면 신간 품평회나 마케팅 설명회가 열렸을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하나같이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날 주제는 단 하나였다. 거대 플랫폼이 요구하는 '공급률 인하'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한 참석자는 "계약 갱신 시점마다 목을 조여 오는 느낌"이라고 토로했다. 공급률은 출판사가 서점에 책을 넘길 때 정가의 몇 퍼센트를 받느냐를 뜻한다. 정가 1만 원인 책의 공급률이 65퍼센트라면 출판사 수취액은 6천500원, 60퍼센트라면 6천 원이다. 5퍼센트포인트 차이가 책 한 권당 500원, 1만 부면 500만 원의 수익 감소로 이어진다. 생존이 걸린 숫자다.
도서정가제는 2014년 전면 개정 이후 10년 넘게 유지돼 왔다. 출판문화산업 진흥법은 발행일로부터 18개월 이내 신간에 대해 정가의 15퍼센트를 넘는 할인을 금지한다. 가격 할인과 마일리지 같은 경제적 이익을 자유롭게 조합하되 총합이 15퍼센트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 출판연구학교 교장이자 도마뱀출판사 대표인 조동욱씨는 이 제도의 본질적 한계를 이렇게 짚는다. "도서정가제는 가격에 대한 '상한 규제'에 집중돼 있을 뿐, 유통 단계의 거래 조건이나 공급률에 대한 '하한 규제'는 사실상 공백 상태에 가깝다." 가격의 천장은 막아 놓았지만 바닥은 뚫려 있다는 뜻이다.
제도의 취지는 분명했다. 무한 할인 경쟁을 막아 중소 서점이 대형 온라인 플랫폼에 짓눌리지 않도록 하고, 책값 인하 압력으로 저자와 출판사가 쪼들리지 않도록 하며, 다양한 책이 시장에 나올 수 있는 토양을 보존한다는 것이다. 2023년 7월 20일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도서정가제가 직업의 자유나 소비자의 선택권을 과도하게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문화적 다양성 보존'이라는 입법 목적이 정당하다는 점도 확인했다. 조동욱씨는 "적어도 당시까지는 이 제도가 본래의 취지에 부합해 작동해 왔다고 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본 풍경과 출판사들이 마주한 현실 사이에는 뚜렷한 간극이 있다. 조동욱씨의 지적처럼 "거대 플랫폼은 가격 경쟁 대신 출판사에 대한 공급률 압박이라는 우회 전략을 사용하는 측면이 나타났고, 마케팅 비용 전가나 반품 조건 강화 등으로 유통 권력의 힘이 출판사를 향해 행사되고 있다." 플랫폼이 소비자에게 정가의 15퍼센트까지만 깎아 줄 수 있다면, 남은 경쟁 수단은 무엇인가. 출판사를 압박해 공급률을 낮추는 것이다. 소비자 눈에 책값은 그대로이지만, 플랫폼이 가져가는 몫은 늘어난다. 할인을 못 하니 납품가를 쥐어짜는 우회로가 열린 셈이다.
쿠팡의 도서 시장 진입은 이 우회로를 고속도로로 바꿔 놓았다. 2020년대 초반까지 온라인 도서 시장은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가 삼분하던 구도였다. 쿠팡은 와우 회원에게 무료 배송을 제공하고, 이미 장바구니에 담긴 생필품과 함께 책을 주문하게 함으로써 단숨에 점유율을 끌어올렸다. 쿠팡의 2024년 도서 매출은 출판사 직매입 기준 3천억에서 4천억 원을 포함해 약 5천억 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2024년 주요 서점의 매출액은 교보문고가 9천771억 원, 예스24가 6천558억 원, 알라딘이 4천555억 원이었다. 쿠팡은 사실상 서점업계 2위 자리를 다투는 위상을 갖춘 셈이다.
쿠팡이 시장에서 무게를 키울수록, 출판사들이 거래를 거부하기 어려워졌다. 쿠팡에 책을 대지 않으면 독자에게 노출되지 못하고, 노출되지 못하면 판매가 줄고, 판매가 줄면 생존이 힘들어진다. 출판사들이 협상 테이블에서 목소리를 높이기 어려운 이유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2024년 출판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서점 직거래 공급률은 67.5퍼센트, 인터넷 서점은 66.9퍼센트다. 그런데 쿠팡은 소규모 출판사에 55퍼센트를 요구하기도 한다. 10퍼센트포인트 이상의 격차다.
1월 23일 간담회에서 공개된 사례들은 이 권력 불균형의 단면을 드러냈다. 한 중소 출판사 대표는 "과거 65퍼센트이던 공급률이 갱신 시점에 60퍼센트로 내려갔고, 최근에는 55퍼센트를 요구받았다"고 증언했다. 또 다른 출판사는 '성장장려금'이라는 명목으로 매출 구간별 추가 비용을 요구받았다고 밝혔다. 매출이 500만 원에서 1천만 원 구간이면 1퍼센트, 1천만 원에서 1천500만 원 구간이면 1.5퍼센트, 1천500만 원에서 2천만 원 구간이면 2퍼센트를 플랫폼에 내야 한다는 것이다. 매출이 오를수록 출판사가 내야 하는 비용도 늘어나는 구조다. 출판사가 쿠팡의 매출 성장에 기여했으니 출판사에 장려금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쿠팡에 성장 보수를 지급하라는 요구에 가깝다.
광고비 압박도 빈번했다. 신간을 플랫폼 메인 화면에 노출하려면 별도 광고비를 내야 하는데, 그 금액이 계약 갱신 때마다 상승한다는 호소가 잇따랐다. 한 참석자는 "광고비를 내지 않으면 신간 등록이 지연돼 발매 초기 마케팅 타이밍을 놓쳤다"고 말했다. 출판사가 판매관리시스템에서 재고 및 구매자 정보를 이용하려면 월 150만 원에서 600만 원에 달하는 정보 이용료를 별도로 지불해야 한다. 다른 인터넷 서점들은 정산 주기가 통상 1개월인 것과 달리, 쿠팡은 최대 60일이다. 거래 조건을 거부하면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에 한 대표는 "계약 해지 압박이 뒤따르고, 협상 과정에서 모욕적 언사를 들은 적도 있다"고 답했다.
공급률 하락의 파장은 출판사 경영 전반으로 번진다. 출판사의 수익 구조는 단순하다. 책 판매로 들어온 돈에서 저자 인세, 인쇄·제본비, 인건비, 물류비를 빼면 남는 것이 이익이다. 공급률이 5퍼센트포인트 내려가면, 같은 이익을 내려면 판매량을 그만큼 늘리거나 비용을 줄여야 한다. 저자 인세를 깎기 어렵고, 인쇄비도 물가에 연동된다. 결국 줄이는 쪽은 인건비와 편집·교정 품질이다. 한 중견 출판사 편집장은 "책 한 권에 투입하는 편집 시간이 10년 전의 절반 이하로 줄었다"고 토로한 바 있다. 원고 검토와 교정에 쓸 시간이 부족해지면, 오탈자가 늘고, 문장 완성도가 떨어지고, 결국 독자에게 돌아가는 품질이 하락한다.
중소 출판사에 미치는 타격은 더 크다. 대형 출판사는 스테디셀러와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유해 협상력이 있지만, 중소 출판사는 거래를 잃으면 대체 유통 경로가 마땅찮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출판사의 85퍼센트 이상이 연매출 5억 원 미만의 영세 사업자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시와 철학, 인문 교양, 실험 소설, 번역 문학처럼 시장 규모는 작지만 문화적 가치가 높은 책들을 낸다. 공급률 압박이 심해지면, 이런 책을 내는 출판사가 먼저 쓰러진다. 베스트셀러 위주로 빠르게 업로드되고, 판매량이 낮은 책은 노출에서 밀린다. 간담회에서 한 참석자는 "플랫폼은 팔리는 책만 원하고, 팔리지 않는 책은 등록조차 번거롭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조동욱씨는 이 문제가 오래전부터 예견됐던 것이라고 말한다. "출판계와 서점계에서 꾸준히 제기돼 온 거래 조건이나 공급률에 대한 문제는 제도적 논의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러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더라면, 초대형 플랫폼의 등장으로 기존 유통 질서에 가해진 충격이 이처럼 누적되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 그는 현재 상황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지금도 2023년 헌법재판소 결정문 판단에 머물러 있을 것인가? 대형으로 분류되던 주체들마저 초대형 플랫폼 앞에서 흔들리는 현실을 그저 지켜보고만 있을 것인가? 여전히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닫은 채로 있을 것인가?"
문제는 현행 도서정가제가 이 구조를 교정할 도구를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다. 출판문화산업 진흥법은 가격 할인 상한을 정할 뿐, 공급률의 최저선이나 거래 조건의 공정성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불공정 거래로 신고할 수 있지만, 개별 출판사가 플랫폼을 상대로 신고하면 거래 보복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신고한 사실이 알려지면 다른 플랫폼과의 거래에도 영향을 받을까 두렵다"고 말한다. 한국출판인회의는 2025년 12월 24일 "겉으로는 상생, 뒤로는 갑질, 악질적 재계약 강요하는 쿠팡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성명서를 냈다. 공급률 인하 등 악질적인 재계약 조건의 전면 철회와 사과, 실질적인 상생안 제시를 요구했다.
해외 사례는 참고가 된다. 독일의 도서정가제는 가격뿐 아니라 유통 조건 전반에 걸쳐 공정 거래 원칙을 강조한다. 프랑스는 2021년 '반아마존법'을 도입해 온라인 서점의 무료 배송을 제한함으로써 오프라인 서점과의 경쟁 조건을 맞추려 했다. 일본은 재판매가격유지제도를 통해 출판사가 정가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되, 서점과의 거래 조건에 대해서도 업계 자율 협약이 작동한다. 한국에서도 공급률의 최저 기준을 정하거나, 거래 조건 변경 시 일정 기간의 유예를 의무화하거나, 플랫폼의 우월적 지위 남용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그러나 정책 논의는 더디다.
헌법재판소가 도서정가제를 합헌으로 판단한 것은 2023년 7월의 사실관계에 기반한다. 조동욱씨는 이 점을 분명히 한다. "헌법재판소는 현재의 사실을 기준으로 판단할 뿐, 미래의 변화를 예측해 결정할 수는 없다." 쿠팡이 도서 시장에서 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한 것은 그 이후의 일이다. 플랫폼 독점이 심화되고, 공급률 압박이 일상화된 현재의 풍경은 재판소가 살피지 못한 장면이다. 제도의 취지가 정당하더라도, 제도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면 취지는 공허해진다.
조동욱씨는 '문화 다양성', '중소 출판 정책', '문화 공공재'라는 가치가 일정 부분 정책으로 이어졌지만, 유통 현실 앞에서는 여전히 구호에 머무는 측면이 크다고 지적한다. "구호는 정책이 돼야 하고, 정책은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여러 단체에서 흔히 말하는 '소통'과 '연대'는 외침에서 구호로, 다시 정책이 되고 실천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미래를 예측하는 최소한의 힘이 생긴다." 그가 제시하는 출발점은 명확하다. "다양한 출판사와 서점, 도서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다.
출판 생태계는 저자, 출판사, 유통, 서점, 독자가 연결된 고리다. 한 고리가 약해지면 전체가 흔들린다. 저자는 원고료와 인세로 생활하고, 출판사는 편집과 제작으로 가치를 더하고, 유통과 서점은 책을 독자에게 전달하며, 독자는 책을 사서 읽는다. 플랫폼이 공급률을 낮추면, 출판사 수익이 줄고, 저자 인세가 위축되고, 편집 품질이 하락하고, 다양한 책이 시장에서 사라진다. 남는 것은 베스트셀러 몇 종과 플랫폼의 이익이다.
도서정가제를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현행 제도를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함께 존재한다. 할인율을 높여야 독자가 책을 더 산다는 주장과, 할인율을 높이면 중소 서점이 망한다는 주장이 부딪힌다. 그러나 양쪽 모두 공급률 문제는 충분히 다루지 않는다. 가격 상한을 놓고 싸우는 사이, 유통 하한은 방치돼 왔다. 플랫폼이 가격 경쟁 대신 공급률 경쟁으로 전환한 지금, 정책의 초점도 옮겨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이 나온다.
20년 넘게 1인 출판사를 운영해 온 조동욱씨는 출판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그가 교장으로 있는 출판연구학교는 1인 출판사 대표, 편집자, 마케터, 디자이너 등이 모여 지속가능한 출판의 미래를 함께 연구하는 학습공동체다. 참여자들은 "혼자일 때보다 함께할 때 더 큰 힘을 발휘한다"고 입을 모은다. 개별 출판사가 거대 플랫폼을 상대로 싸우기는 쉽지 않다. 정부가 유통 질서를 점검하고, 입법이 공급률의 최저선을 논의하고, 업계가 공동 대응의 틀을 마련해야 한다. 그 시작은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다.
문화 다양성은 추상적 가치가 아니다. 독자가 서가에서 예상치 못한 책을 발견하고, 그 책을 읽고, 삶이 바뀌는 경험이다. 그런 책이 나오려면 출판사가 위험을 감수하고, 저자가 긴 시간을 투자하고, 서점이 그 책을 진열해야 한다. 공급률이 바닥으로 내려가면, 위험을 감수할 여력이 사라진다. 플랫폼의 메인 화면에 노출되는 책만 팔리는 시장에서는, 메인 화면에 오르지 못하는 책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도서정가제가 책의 공공재적 성격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다면, 그 취지를 살리려면 가격 상한만이 아니라 유통 하한까지 살펴야 한다. 거대 플랫폼의 등장은 2014년 제도 설계 당시 예상하지 못한 변수다. 제도는 변하는 현실에 맞춰 진화해야 한다. 출판사가 목을 조이는 느낌에서 벗어나야, 저자가 원고를 쓸 수 있고, 독자가 다양한 책을 만날 수 있다. 책은 단순히 사고파는 상품이 아니라, 사회의 지식과 감수성을 담는 그릇이다. 그 그릇이 깨지지 않도록 하는 것은 플랫폼만의 책임이 아니라 정책과 사회 전체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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