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0억 원대에 불과했던 국내 웹소설 시장은 2024년 약 1조 3,500억 원 규모로 성장했다. 이 폭발적 성장의 중심에는 카카오페이지가 2014년 하반기에 도입한 '기다리면 무료', 이른바 '기다무'라는 비즈니스 모델이 있었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음 회차를 무료로 열람할 수 있고, 기다리기 싫으면 유료로 결제하는 이 방식은 무료 콘텐츠로만 인식되던 웹소설과 웹툰을 유료 산업으로 전환시킨 혁신이었다. 네이버웹툰의 연재 모델과 함께 한국발 웹콘텐츠 비즈니스는 일본 피콤마를 통해 해외에서도 연간 거래액 수천억 원을 기록하며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이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 앞에 줄곧 걸림돌이 하나 있었다. 바로 도서정가제다. 출판문화산업진흥법에 따르면 국제표준도서번호(ISBN)를 발급받은 간행물은 도서정가제를 준수해야 하고, 가격할인 10%에 마일리지 등 경제상 이익 5%를 합산하여 정가의 15%를 초과하는 할인이 금지된다. 웹툰과 웹소설은 전자출판물로 분류되어 ISBN을 발급받아왔기 때문에, 엄밀히 따지면 기다무 서비스 자체가 도서정가제 위반 소지가 있었다. 정가가 설정된 콘텐츠를 일정 시간 후 무료로 제공하는 것은 사실상 100% 할인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2019년 출판유통심의위원회가 전자책 판매 플랫폼에 도서정가제 준수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내면서 이 문제가 수면 위로 터져 올랐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도서정가제 폐지 청원에 20만 명 이상이 동의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웹콘텐츠 업계의 입장은 명확했다. 도서정가제는 적용받지 않되, ISBN에 따라오는 부가가치세 면세 혜택은 유지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2023년 3월 '도서정가제 개선 방향 토론회'에서 연구진 자격으로 사회를 맡았던 사단법인 출판유통진흥원 최성구 팀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그때 연재형 웹툰/웹소설에 대한 이슈가 있었다. 웹툰/웹소설 업계에서는 도서정가제가 적용되지 않고, 부가세 면세는 받을 수 있는 방안을 원했다." 웹콘텐츠는 회차 단위로 연재되는 디지털 콘텐츠로서 인쇄·물류·재고가 존재하지 않고, 종이책과는 유통 구조 자체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런데 단일출판물 기준으로 설계된 ISBN 체계에 억지로 끼워 맞추다 보니, 하나의 ISBN을 수백 회차에 일괄 적용하는 편의적 관행이 이어져 왔다. 이 구조적 모순이 도서정가제 적용 여부를 둘러싼 논쟁을 계속 재생산한 셈이다.
이 교착 상태에 전환점이 찾아온 것은 2024년 1월이다. 국무조정실은 '국민생활과 밀접한 대표규제 3가지를 혁파한다'는 보도자료를 통해 웹툰과 웹소설을 도서정가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핵심 장치로 등장한 것이 바로 UCI(Universal Content Identifier)다. 최성구 팀장은 그 경과를 이렇게 정리한다. "그 후 웹툰/웹소설 관련 법제도와 식별체계를 정비하는 과정이 진행되었다. 그 결과 2026년부터 웹툰과 웹소설은 ISBN이 아닌 UCI를 적용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22년부터 웹콘텐츠 고유의 표준식별체계 마련을 위한 연구를 수행해왔고, 2025년 1월 2일부터 UCI 발급을 공식 시작했다. 2025년은 기존 ISBN과 UCI를 병행 발급하는 시범 기간이었으며, 2026년부터는 웹툰과 웹소설에 대해 UCI만 발급된다.
UCI는 국제표준이 아닌 한국저작권위원회에서 관리하는 국가표준콘텐츠식별체계로, 음원과 이미지 유통 관리 등에 주로 활용되어 왔다. 최성구 팀장에 따르면 "UCI 발급 운영은 ISBN, ISSN과 같이 국립중앙도서관에서 한다. 도서정가제는 ISBN을 기준으로 하니, 이제 UCI를 적용한 웹콘텐츠는 도서정가제 대상이 아니다." 동시에 부가세 면세 혜택은 유지된다. 문체부가 2024년 12월 개정한 '전자출판물에 대한 부가가치세 면세 대상 기준 고시(문화체육관광부고시 제2024-416호)'에 따라 UCI를 발급받은 웹툰과 웹소설도 부가가치세를 면세받게 되었다. 웹콘텐츠 업계가 오랫동안 원했던 '도서정가제 제외, 면세 유지'라는 두 가지 목표가 식별체계 전환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동시에 달성된 것이다.
UCI 체계는 기존의 구조적 모순도 해소했다. 하나의 ISBN을 모든 회차에 일괄 적용하던 관행과 달리, UCI는 회차 단위 부여를 기본으로 설계되었다. 최성구 팀장은 "하나의 ISBN을 모든 회차에 적용한 이전의 사례는 웹콘텐츠를 위한 식별체계가 부재한 상황에서 편의를 위해 임의적으로 사용한 경우"라며 "UCI는 콘텐츠의 효율적인 관리, 저작권 보호, 유통 이력 관리에 활용될 수 있도록 회차 단위 부여를 기본으로 설계되었다"고 설명했다. 연재형 콘텐츠에는 연재형 UCI(회차번호: 0001)가, 종료 후 단행본으로 재출간할 경우에는 별도의 단행본 UCI(회차번호: M001)가 부여된다.
그러나 이번 전환이 출판 생태계 전체의 갈등을 해소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출판계의 불만은 더 깊어지고 있다. 웹소설과 웹툰이 도서정가제에서 벗어나면서 플랫폼들은 할인 경쟁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게 되었다. 대규모 코인 할인 이벤트, 기다무 확대, 번들 프로모션 등 가격 공세가 제약 없이 가능해진 것이다. 출판계는 이로 인해 독자의 콘텐츠 소비가 가격 할인이 활발한 웹콘텐츠 쪽으로 쏠리면서 종이책과 전자책 단행본 시장이 더욱 위축될 것을 우려한다. 박용수 대한출판문화협회 상무이사는 "도서정가제에서 웹콘텐츠를 제외하게 되면 할인 경쟁이 시작되어 소비자는 할인하는 콘텐츠만 보고 신간은 절대 안 보게 되고, 결국 검증 안 된 신인 작가에게는 기회를 주지 않게 된다"며 "신간 종수는 확 줄고 가격은 더 오를 것이며 다양성은 더 줄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소장 역시 "정가제가 없어진다고 해서 책값은 낮아지지 않고 유통 질서만 더 혼란해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같은 '읽는 콘텐츠'라는 시장 안에서 한쪽은 할인이 자유롭고 다른 한쪽은 15% 상한에 묶여 있는 이중 구조가 고착되면, 자본력을 갖춘 대형 플랫폼으로의 쏠림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이 출판계의 핵심 논리다. 실제로 웹소설 시장은 카카오페이지와 네이버 시리즈 등 소수 대형 플랫폼이 거래액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과점 구조이며, 할인 자유화는 이 집중도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종이책 출판사와 중소 서점 입장에서는 같은 독자의 시간과 지갑을 놓고 경쟁하는데, 상대방만 무기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비대칭 싸움이 된 셈이다.
최성구 팀장은 이러한 갈등 구도를 인식하면서도, 2026년이 또 다른 분수령이 될 것임을 짚었다. "다가오는 2026년에 출판업계는 또다시 도서정가제 개정 논의를 해야 한다." 도서정가제의 3년 주기 재검토 시점이 도래하면서 종이책과 전자책 단행본에 대한 할인율 조정, 조건부 정가제 도입, 나아가 전면 폐지까지 모든 선택지가 테이블 위에 올라 있다. 웹콘텐츠가 ISBN에서 UCI로 갈아타며 도서정가제의 울타리를 벗어난 지금, 그 울타리 안에 남은 종이책과 전자책 단행본의 규칙을 어떻게 다시 쓸 것인가. 1조 원을 넘어선 웹콘텐츠 산업이 자신만의 제도적 기반 위에 서게 된 것은 분명하지만, 그 옆에서 같은 독자를 바라보는 출판계의 불안은 오히려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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