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5월 27일 새벽, 터키 앙카라의 거리는 탱크의 굉음으로 뒤덮였다. 38명의 젊은 장교들이 이끄는 군부가 아드난 멘데레스 총리의 민주당 정권을 무너뜨렸다. 이는 터키 공화국 역사상 첫 번째 군사 쿠데타였으며, 이후 1971년, 1980년, 1997년, 그리고 2016년의 실패한 쿠데타 시도까지, 터키는 반복되는 군부 개입의 그림자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케말 아타튀르크가 꿈꾸었던 세속주의 공화국의 수호자를 자처한 군부는, 역설적으로 민주주의의 가장 큰 위협이 되었다. 특히 1980년 9월 12일 케난 에브렌 장군이 주도한 쿠데타는 65만 명을 체포하고, 230명에게 사형을 선고하며 터키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터키 쿠데타 역사.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터키의 군사 쿠데타는 단순한 권력 투쟁이 아니었다. 그것은 전통과 현대, 종교와 세속주의, 동양과 서양 사이에서 갈등하는 터키 사회의 정체성 위기를 반영했다. 군부는 스스로를 아타튀르크의 세속주의 이념을 지키는 수호자로 규정했지만, 그들의 개입은 오히려 사회의 분열을 심화시켰다. 1980년 쿠데타 이후 제정된 헌법은 개인의 자유를 극도로 제한했고, 쿠르드어 사용을 금지하며 소수민족의 정체성을 부정했다. 여성들의 머리 스카프 착용을 금지한 것도 이 시기였다. 군부는 '질서'라는 이름으로 다양성을 억압했고, '현대화'라는 명분으로 전통을 부정했다. 이러한 강압적 통제는 터키 사회에 보이지 않는 균열을 만들어냈다.
2015년 칸 영화제에서 주목받은 Mustang는 데니즈 감제 에르귀벤 감독이 그린 다섯 자매의 이야기다. 흑해 연안의 작은 마을에서 할머니와 함께 사는 다섯 자매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남자 친구들과 바다에서 뛰어논다. 이 순수한 놀이는 마을 사람들의 눈에는 '부적절한 행동'으로 비춰지고, 할머니는 손녀들을 집에 가두기 시작한다. 창문에는 쇠창살이 설치되고, 학교 가는 것도 금지된다. 컴퓨터와 전화는 압수되고, 요리와 바느질을 배우며 '좋은 신부감'이 되기 위한 교육만 받는다. 다섯 명의 신인 배우들이 연기한 자매들의 모습은 놀라울 정도로 자연스럽고 생동감 넘친다. 특히 막내 랄레 역의 귀네시 센소이는 순수하면서도 강인한 저항 의지를 눈빛만으로 전달한다.
Mustang (2015), 데니즈 감제 에르귀벤 감독. ⓒ Production Company
군사 쿠데타가 국가라는 거대한 몸체를 통제했다면, Mustang의 집은 다섯 소녀의 몸과 영혼을 가두는 작은 감옥이다. 쿠데타 세력이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시민의 자유를 억압했듯이, 영화 속 어른들은 '명예'와 '전통'을 내세워 소녀들의 꿈을 짓밟는다. 두 경우 모두 '보호'라는 명목 하에 이루어지는 폭력이다. 1980년 쿠데타 정권이 여성의 머리 스카프를 금지하며 개인의 선택권을 박탈했다면, 영화 속 가부장제는 소녀들에게 '정숙한 옷'을 강요하며 같은 억압을 행한다. 권력의 형태는 다르지만, 그것이 개인의 자유를 짓누르는 방식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있다. 군부독재나 가부장제 모두 '질서'를 위해 다양성을 희생시킨다.
2016년 7월 15일, 터키는 또 한 번의 쿠데타 시도를 겪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탱크를 막아섰다. 과거와 달리 쿠데타는 실패했고, 이는 터키 사회가 더 이상 일방적인 통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신호였다. Mustang의 다섯 자매 중 막내인 랄레가 결국 이스탄불로 탈출하는 것처럼, 억압받던 이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날 터키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권위주의의 그림자가 다시 드리워지고 있다.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역설, 전통을 지킨다며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모순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군사 쿠데타의 역사는 우리에게 묻는다. 누가 무엇으로부터 누구를 지키는가? Mustang의 감금된 자매들은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보호라는 이름의 억압을 얼마나 더 견뎌야 하는가? 터키의 반복된 쿠데타가 결국 시민들의 저항으로 막혔듯이, 영화 속 소녀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탈출을 시도한다. 역사는 억압이 영원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자유를 향한 열망이 늘 승리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보호'와 '통제' 사이에서, '안전'과 '자유'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가 계속되고 있다. 과연 우리는 스스로를 가두는 보이지 않는 쇠창살을 인식하고 있는가?

![[1월 2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두 경우 모두 '보호'라는 명목 하에 이루어지는 폭력이다](https://pltpjrfdfxxbnivrtoew.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films/mustang_backdrop.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