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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째주 · 2024
[3월 3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영화와 현실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있다
영화로 세상을 보다

[3월 3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영화와 현실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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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나이지리아 북부 카노 주에서 파이저 제약회사의 임상시험으로 11명의 어린이가 사망했다. 1996년 수막염이 창궐하던 시기, 파이저는 실험 항생제 트로반의 효과를 검증한다며 200여 명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부모들의 동의서는 위조되었고, 아이들은 실험 대상이 된 사실조차 모른 채 약물을 투여받았다. 11년이 지난 후에야 이 비극적 진실이 세상에 드러났다. 카노 주정부는 파이저를 상대로 27억 달러의 소송을 제기했고, 국제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하지만 파이저는 끝까지 책임을 부인했다.

역사 사건

아프리카 제약회사 비리.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이 사건은 제3세계를 향한 서구 제약회사들의 구조적 폭력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는 아프리카는 그들에게 값싼 실험장이었다. 현지 정부의 부패와 무능, 국제 규제의 사각지대, 그리고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의 탐욕이 맞물려 무고한 생명들이 희생되었다. 파이저 사건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아프리카 전역에서 수많은 비윤리적 임상시험이 자행되었다. 에이즈, 말라리아, 결핵 치료제 개발이라는 명분 아래, 서구의 거대 제약회사들은 아프리카인들의 몸을 실험 도구로 전락시켰다.

존 르 카레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The Constant Gardener는 케냐를 배경으로 제약회사의 음모를 파헤치는 영화다. 페르난두 메이렐리스 감독은 다큐멘터리적 촬영 기법으로 아프리카의 현실을 생생하게 포착한다. 영국 외교관 저스틴(레이프 파인스)은 아내 테사(레이철 와이즈)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자 진실을 추적한다. 테사는 생전에 제약회사 KDH가 결핵 치료제 임상시험 과정에서 부작용을 은폐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려 했다. 레이철 와이즈는 정의감에 불타는 활동가 테사를 열정적으로 연기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영화 스틸

The Constant Gardener (2005), 페르난두 메이렐리스 감독. ⓒ Production Company

영화와 현실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있다. 파이저가 나이지리아에서 자행한 비윤리적 실험과 영화 속 KDH의 행태는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둘 다 제3세계의 절박함을 이용해 위험한 약물을 시험했고, 부작용과 사망을 은폐했으며, 현지 관료들을 매수해 진실을 덮으려 했다. 영화는 픽션이지만, 그것이 그려내는 구조적 폭력은 파이저 사건보다 2년 앞서 현실을 예견했다. 르 카레는 작가의 상상력으로 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제약 제국주의의 본질을 꿰뚫어 보았던 것이다.

2024년 현재에도 이러한 문제는 계속되고 있다. 코로나19 백신 개발 과정에서도 아프리카는 또다시 실험장이 되었다. 프랑스의 한 의사는 공개적으로 "아프리카에서 백신을 시험해보자"고 제안해 국제적 비난을 받았다. 백신 불평등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선진국들이 백신을 독점하는 동안 아프리카 대륙의 접종률은 20%에도 미치지 못한다. 제약회사들은 특허권을 내세워 저렴한 복제약 생산을 막고 있다. 생명을 살리는 의약품이 이윤 추구의 도구로 전락한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의학의 발전은 인류에게 축복인가, 저주인가. 수많은 생명을 구하는 신약 뒤에는 얼마나 많은 희생이 숨어 있는가. 우리가 복용하는 약 한 알에는 누군가의 고통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The Constant Gardener의 저스틴처럼, 우리도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있는가. 제약회사의 주주로서, 소비자로서, 우리는 이 구조적 폭력에 얼마나 연루되어 있는가. 파이저 사건과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공식 예고편

The Constant Gardener (2005) — 페르난두 메이렐리스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