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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5째주 · 2024
[4월 5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그러나 쿠르드족은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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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5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그러나 쿠르드족은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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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3월 16일, 이라크 북부의 작은 도시 할라브자에는 평범한 아침이 찾아왔다. 쿠르드족 주민 5만여 명이 거주하는 이곳에 이라크 공군기가 나타났고, 곧이어 노란색과 흰색 연기가 도시를 뒤덮었다. 사담 후세인 정권이 자행한 화학무기 공격으로 5,000명이 즉사했고, 1만 명이 부상을 입었다. 거리에는 아이를 품에 안은 채 숨진 어머니들, 물을 찾아 헤매다 쓰러진 노인들의 시신이 널브러졌다. 이날의 참극은 쿠르드족의 오랜 자치 열망이 얼마나 처절하게 짓밟혔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 되었다.

역사 사건

이라크 쿠르드 자치구.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쿠르드족은 '국가 없는 최대 민족'으로 불린다. 2,500만 명이 넘는 인구가 터키, 이라크, 이란, 시리아 4개국에 흩어져 살아간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열강들이 그은 국경선은 하나의 민족을 네 조각으로 찢어놓았다. 이라크의 쿠르드족은 1970년 자치권을 약속받았으나 실현되지 않았고,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중에는 양국 사이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다. 안팔 작전으로 명명된 이라크 정부의 쿠르드족 학살은 18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할라브자는 그 절정이었다.

이란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Where Is My Friend's House?는 얼핏 쿠르드족의 비극과 무관해 보인다. 이란 북부 코케르 마을을 배경으로, 8살 소년 아마드가 실수로 가져온 친구의 공책을 돌려주기 위해 이웃 마을을 찾아 헤매는 단순한 이야기다. 아마드는 친구가 숙제를 못 하면 퇴학당한다는 선생님의 경고를 기억하며 필사적으로 친구 집을 찾는다. 지그재그로 이어진 언덕길을 수없이 오르내리지만 어른들은 아이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해가 저물고 어둠이 내려도 아마드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영화 스틸

Where Is My Friend's House? (1987),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 ⓒ Production Company

키아로스타미의 카메라가 포착한 아마드의 여정은 쿠르드족의 운명과 묘하게 겹쳐진다. 국경으로 갈라진 쿠르드 마을들, 가족을 찾아 헤매는 난민들, 귀 기울여주지 않는 국제사회. 아마드가 친구를 찾아 헤매는 것처럼, 쿠르드족은 잃어버린 고향과 민족의 정체성을 찾아 방황한다. 영화 속 어른들이 아이의 간절함을 이해하지 못하듯, 강대국들은 쿠르드족의 자치 열망을 외면한다. 반복되는 언덕길의 이미지는 끝없이 되풀이되는 쿠르드족의 투쟁을 연상시킨다.

할라브자 학살 이후 35년이 흐른 지금, 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는 불완전하나마 자치를 실현했다. 2017년 독립 국민투표에서 92%가 찬성했지만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터키는 여전히 쿠르드 노동자당을 테러조직으로 규정하고, 시리아 내전은 새로운 쿠르드 난민을 양산했다. 그러나 쿠르드족은 포기하지 않는다. 아마드가 밤새 친구를 찾았듯, 그들은 민족의 미래를 찾아 나선다. 때로는 무력으로, 때로는 협상으로, 때로는 문화의 힘으로.

키아로스타미는 아마드가 결국 친구의 공책에 대신 숙제를 해주는 것으로 영화를 마무리한다. 완벽한 해결은 아니지만 최선의 선택이었다. 쿠르드족의 미래도 그러할지 모른다. 완전한 독립국가는 아니더라도, 민족의 언어와 문화를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공간. 우리는 타인의 간절함에 얼마나 귀 기울이고 있는가? 힘없는 자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척하고 있지는 않은가? 역사는 언젠가 이 질문에 답해야 할 것이다.

공식 예고편

Where Is My Friend's House? (1987) —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