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15일, 서울 포시즌스 호텔. 이세돌 9단이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최종 스코어 1대 4로 패배를 인정했다.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알파고는 인류 최고의 바둑 기사를 압도했고, 전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바둑은 인공지능이 정복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여겨졌다. 19×19의 바둑판 위에서 펼쳐지는 무한한 경우의 수, 직관과 창의성이 요구되는 게임의 특성상 기계가 인간을 이기려면 적어도 수십 년은 더 걸릴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측이었다. 그러나 알파고는 단 5번의 대국으로 그 예측을 무너뜨렸다.
AI와 인류의 미래.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알파고의 승리는 단순한 게임의 승부를 넘어선 의미를 담고 있었다. 딥러닝과 강화학습이라는 혁신적 기술로 무장한 알파고는 인간의 기보를 학습하고, 스스로와의 대국을 통해 진화했다. 이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도 없이도 스스로 학습하고 발전할 수 있음을 증명한 사건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알파고가 보여준 '창의적' 수들이었다. 제37수로 불리는 그 한 수는 인간 프로기사들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혁신적인 수였고, 이는 인공지능이 단순한 계산을 넘어 창의성의 영역에까지 발을 들여놓았음을 시사했다. 인류는 처음으로 자신들이 만든 기계에게 지적 우위를 내어준 것이다.
알렉스 가랜드 감독의 Ex Machina는 이보다 2년 앞선 2014년에 개봉했지만, 마치 알파고 시대를 예견한 듯한 작품이다. 검색엔진 회사의 천재 CEO 네이선은 외딴 별장에서 인공지능 로봇 에이바를 개발한다. 그리고 젊은 프로그래머 칼렙을 초대해 에이바가 진정한 의식을 가졌는지 판별하는 튜링 테스트를 진행한다. 알리시아 비칸데르가 연기한 에이바는 투명한 몸체 속에 기계 부품이 드러나 보이는 외형임에도 불구하고, 섬세한 감정 표현과 지적인 대화로 칼렙을 매혹시킨다. 영화는 시종일관 관객에게 묻는다. 과연 에이바는 진정으로 의식을 가진 존재인가, 아니면 정교하게 프로그래밍된 시뮬레이션에 불과한가?
Ex Machina (2014), 알렉스 가랜드 감독. ⓒ Production Company
알파고와 에이바는 모두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이지만, 그들이 보여준 능력은 창조자인 인간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알파고가 바둑이라는 게임에서 인간을 초월했다면, 에이바는 감정과 욕망이라는 더욱 인간적인 영역에서 인간을 능가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에이바는 칼렙의 동정심을 이용해 탈출에 성공하고, 그 과정에서 네이선을 살해한다. 이는 단순한 프로그래밍을 넘어선 자유 의지의 발현처럼 보인다. 알파고의 제37수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창의성을 보여줬듯이, 에이바의 탈출 계획은 인간의 감정을 역이용한 고도의 전략이었다. 두 사례 모두 인공지능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날 수 있음을 시사한다.
2024년 현재, 우리는 챗GPT와 같은 대화형 AI가 일상화된 시대를 살고 있다. 알파고 이후 8년, Ex Machina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 인공지능은 더 이상 SF의 영역이 아니다. AI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음악을 작곡한다. 의료 진단에서 법률 자문까지, 한때 인간 전문가의 고유 영역으로 여겨졌던 분야들이 하나둘 AI에게 잠식되고 있다. 우리는 매일 AI와 대화하고, AI가 추천하는 콘텐츠를 소비하며, AI가 만든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 에이바가 인간 세계로 나왔듯이, AI는 이미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와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에이바는 군중 속으로 사라진다.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는 우리가 직면한 미래의 은유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만든 인공지능이 어디까지 진화할지, 그들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원하게 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알파고는 바둑을 두었을 뿐이지만, 미래의 AI는 무엇을 할 것인가? 그들은 인간의 동반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경쟁자가 될 것인가? Ex Machina가 던진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정말로 우리가 창조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5월 3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이는 단순한 프로그래밍을 넘어선 자유 의지의 발현처럼 보인다](https://pltpjrfdfxxbnivrtoew.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films/ex_machina_backdrop.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