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1년 3월 14일, 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에서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도시의 경찰서장 데이비드 헤네시가 총격으로 사망한 후, 19명의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용의자로 체포되었다. 재판에서 6명이 무죄 판결을 받고 3명은 배심원단이 평결에 이르지 못했지만, 성난 군중 수천 명이 감옥을 습격했다. 그들은 11명의 이탈리아인을 끌어내어 린치로 살해했다. 이는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집단 린치 사건이었으며,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겪어야 했던 체계적 차별과 폭력의 상징적 사건이 되었다.
이탈리아 이민자 차별.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약 400만 명의 이탈리아인들이 미국으로 이주했다. 대부분 남부 이탈리아와 시칠리아 출신의 가난한 농민들이었다. 그들은 '더러운 이탈리아인', '마피아'라는 낙인과 함께 일자리와 주거에서 차별받았다. 당시 미국 사회는 이들을 '백인'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이 겪었던 것과 유사한 배척을 경험해야 했다. 신문들은 이탈리아인들을 '열등한 인종'으로 묘사했고, 1924년 이민법은 남유럽과 동유럽 출신의 이민을 크게 제한했다. 이러한 차별의 역사는 이민자를 향한 혐오가 어떻게 제도화되고 정당화되는지를 보여준다.
에마누엘레 크리알레세 감독의 Terraferma는 현대 이탈리아가 이민자들을 대하는 모순적 현실을 그린다. 시칠리아의 작은 섬 린로사를 배경으로, 어부 가족이 바다에서 표류하는 아프리카 난민들을 구조하면서 겪는 갈등을 담았다. 필리포 푸칠로가 연기하는 청년 필리포는 익사 직전의 임산부를 구하지만, 이는 불법이다. 도나텔라 피노치아로가 연기하는 그의 어머니는 과거 자신들도 이민자였던 기억과 현재의 법적 제약 사이에서 고뇌한다. 영화는 지중해의 아름다운 풍경과 난민들의 절박한 현실을 대비시키며, 인간의 양심과 법의 경계를 묻는다.
Terraferma (2011), 에마누엘레 크리알레세 감독. ⓒ Production Company
100여 년의 시차를 두고, 이탈리아는 이민을 떠나보내는 나라에서 받아들이는 나라로 변모했다. 그러나 타자를 대하는 방식의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뉴올리언스의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위험한 타자'로 낙인찍혔듯, 오늘날 지중해를 건너는 아프리카 난민들도 같은 시선을 받는다. Terraferma의 어부들이 난민 구조를 두고 갈등하는 모습은, 과거 미국인들이 이탈리아 이민자들을 바라보던 이중적 태도를 연상시킨다. 인도주의적 가치와 자국 우선주의 사이의 긴장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보편적 딜레마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피해자가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한때 차별받던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후손이 이제는 새로운 이민자들을 거부하는 정치 세력의 일원이 되기도 한다. 2018년 이탈리아 정부가 난민 구조선의 입항을 거부한 사건은, 과거 자국민들이 타국에서 겪었던 배척의 기억이 얼마나 쉽게 망각되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Terraferma가 그리는 것처럼, 여전히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는 개인들의 선택은 존재한다. 역사는 반복되지만, 그 속에서도 변화의 가능성은 늘 열려 있다.
이민의 역사는 인류 역사 그 자체다. 모든 민족과 국가는 어느 시점에선가 이주와 정착을 경험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끊임없이 경계를 만들고, 타자를 배척하는가? 영화 속 노모가 "우리도 한때는 그들이었다"고 말하듯, 기억과 공감의 능력이야말로 인간다움의 척도일지 모른다. 뉴올리언스의 비극에서 린로사 섬의 고뇌까지, 우리는 여전히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국경과 법을 넘어서는 인간의 연대는 과연 가능한가?

![[7월 2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그러나 타자를 대하는 방식의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https://pltpjrfdfxxbnivrtoew.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films/terraferma_backdrop.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