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여름, 터키 남동부의 작은 마을 디야르바크르. 젊은 쿠르드족 청년들이 비밀리에 모여 있었다. 그들의 리더 압둘라 외잘란은 낡은 테이블 위에 지도를 펼쳐놓고 동료들과 머리를 맞댔다. "우리 민족의 독립을 위한 투쟁이 시작되었다." 그의 선언과 함께 쿠르드 노동자당(PKK)이 공식 출범했다. 4천만 쿠르드인들이 터키, 이라크, 이란, 시리아에 흩어져 살면서도 자신들만의 국가를 갖지 못한 채 살아온 지 수백 년. 이제 그들 중 일부가 무장투쟁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외잘란과 그의 동지들은 앙카라 정부의 동화정책과 억압에 맞서 산악지대로 들어갔고, 이는 4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갈 기나긴 분쟁의 시작이었다.
쿠르드 노동자당 분쟁.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쿠르드 노동자당의 등장은 단순한 분리주의 운동이 아니었다. 1920년대 터키공화국 수립 이후, 케말 아타튀르크 정권은 '하나의 터키, 하나의 민족'을 강조하며 쿠르드어 사용을 금지하고 쿠르드 문화를 억압했다. 1970년대 들어 좌파 이념이 확산되면서 쿠르드 청년들은 마르크스주의와 민족해방 사상을 결합시켰다. PKK는 초기에 사회주의 혁명과 쿠르드 독립국가 건설을 목표로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치권 확대와 문화적 권리 보장으로 요구사항을 조정했다. 터키 정부는 이들을 테러조직으로 규정하고 강경진압에 나섰고, PKK는 게릴라전으로 맞섰다. 민간인들은 양측의 폭력 사이에서 고통받았고, 수많은 쿠르드 마을들이 파괴되었다.
히네르 살림 감독의 My Sweet Pepper Land는 이라크 쿠르디스탄의 외딴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사담 후세인 정권 붕괴 후, 신임 경찰서장 바란이 터키 국경 근처의 작은 마을로 부임한다. 그곳에서 그는 독립적인 여교사 고벤드를 만난다. 마을은 밀수꾼 아지즈 아가의 지배 아래 있고, 바란은 법과 정의를 세우려 노력한다. 영화는 서부극의 형식을 빌려 쿠르드 사회의 전통과 현대의 충돌을 그린다. 코르딜 파라드는 과묵하고 원칙적인 바란 역을, 골시프테 이라바니는 진보적이면서도 고독한 고벤드 역을 섬세하게 연기한다. 살림 감독은 장엄한 산악 풍경과 황량한 마을의 대비를 통해 쿠르드인들의 고립과 희망을 동시에 포착한다.
My Sweet Pepper Land (2013), 히네르 살림 감독. ⓒ Production Company
PKK의 무장투쟁과 My Sweet Pepper Land의 서사는 놀랍도록 유사한 구조를 지닌다. 둘 다 중앙권력의 부재 속에서 자체적인 질서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다룬다. PKK가 터키 정부의 억압에 맞서 산악지대에서 대안적 권력을 구축했듯이, 영화 속 바란은 부패한 지역 권력에 맞서 새로운 정의를 세우려 한다. 양쪽 모두에서 여성의 역할이 중요하다. PKK는 중동에서 드물게 여성 전사들을 적극 받아들였고, 영화의 고벤드는 가부장적 전통에 맞서는 새로운 쿠르드 여성상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두 이야기는 모두 '경계'에 관한 것이다. 국경, 전통과 현대, 폭력과 평화, 고립과 연대 사이의 경계에서 쿠르드인들이 겪는 실존적 딜레마를 그린다.
2013년 PKK와 터키 정부는 역사적인 평화 프로세스를 시작했다. 외잘란은 옥중에서 휴전을 선언했고, PKK 전사들은 터키 영토에서 철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2015년 평화협상이 결렬되면서 분쟁은 다시 격화되었다. 시리아 내전으로 쿠르드 문제는 더욱 복잡해졌다. 시리아 쿠르드인들이 ISIS와 싸우며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지만, 터키는 이들을 PKK의 연장선으로 보고 군사작전을 감행했다. 오늘날에도 쿠르드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정체성과 권리를 위해 싸우고 있다. 무장투쟁과 평화적 해결 사이에서, 독립과 자치 사이에서,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 그들의 모색은 계속된다.
산속에서 총을 든 게릴라와 교실에서 책을 든 교사. 폭력으로 정의를 세우려는 자와 교육으로 미래를 바꾸려는 자. 쿠르드 민족의 운명은 이 두 갈래 길 사이에서 아직도 갈팡질팡하고 있다. My Sweet Pepper Land의 바란과 고벤드가 마을을 떠나며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걸어가듯, PKK와 터키 정부의 분쟁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계속되고 있다. 과연 쿠르드인들은 폭력의 악순환을 끊고 평화로운 공존의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아니면 '국가 없는 최대 민족'이라는 비극적 운명을 영원히 짊어지고 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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