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17일, 페루 아야쿠초 지방의 작은 마을 추스치에서 한 무리의 무장 청년들이 투표소를 습격했다. 그들은 투표함을 불태우고 "인민전쟁 시작"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아비마엘 구스만이 이끄는 마오주의 게릴라 조직 '센데로 루미노소(빛나는 길)'의 첫 공개 행동이었다. 이후 20년간 페루를 피로 물들인 내전의 서막이 오른 순간이었다. 진실화해위원회의 보고에 따르면, 이 기간 동안 약 7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희생자의 75%는 케추아어를 사용하는 안데스 원주민이었다. 특히 여성들은 양측 모두로부터 조직적인 성폭력의 표적이 되었다.
페루 빛나는 길 테러.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빛나는 길의 이념은 역설적이었다. 마오쩌둥의 농민혁명론을 표방하면서도 정작 농민들을 가장 잔혹하게 탄압했다. 구스만은 "역사의 쿼터를 피로 채워야 한다"고 주장했고, 전통 지도자들을 '봉건 잔재'로 규정해 처형했다. 정부군 역시 게릴라 소탕을 명분으로 무차별 학살을 자행했다. 양측의 폭력 사이에서 안데스 공동체는 붕괴했다. 특히 1983년부터 1985년 사이, 아야쿠초 지역에서는 매일 같이 집단 학살이 발생했다. 마을 광장에 시신을 전시하고, 가족에게 시신 수습을 금지하는 잔혹 행위가 일상이 되었다. 공포는 말 그대로 일상을 집어삼켰다.
클라우디아 요사 감독의 The Milk of Sorrow는 이 시대의 상처가 어떻게 대물림되는지를 보여준다. 파우스타는 내전 중 성폭행을 당한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자란 여성이다. 어머니가 겪은 공포가 모유를 통해 전달되었다는 '슬픔의 젖' 신화를 믿는 그녀는 질 속에 감자를 넣고 다닌다. 마갈리 솔리에르가 연기한 파우스타는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대신 케추아어로 된 구슬픈 노래를 부른다. 어머니의 시신을 고향에 묻기 위해 돈을 모으는 과정에서, 그녀는 부유한 백인 여성의 집에서 일하게 된다. 카메라는 리마의 빈민가와 부촌의 극명한 대비를 차분히 포착한다.
The Milk of Sorrow (2009), 클라우디아 요사 감독. ⓒ Production Company
역사적 폭력과 영화적 재현이 만나는 지점은 '침묵'이다. 빛나는 길은 원주민들의 언어를 빼앗았고, 파우스타 역시 스페인어로는 거의 말하지 않는다. 테러 조직은 공포로 침묵을 강요했고, 영화 속 파우스타는 트라우마로 인해 스스로 침묵을 선택한다. 요사 감독은 폭력의 직접적 재현 대신, 그것이 남긴 흔적들-감자, 노래, 시신-을 통해 역사를 증언한다. 특히 파우스타가 부르는 노래들은 실제 내전 생존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카메라는 안데스의 메마른 풍경과 리마의 콘크리트 정글을 오가며, 폭력이 지운 것과 남긴 것을 동시에 포착한다.
2024년 현재, 페루는 여전히 그날의 상처를 안고 있다. 진실화해위원회의 권고사항 대부분은 이행되지 않았고, 희생자들에 대한 배상은 지지부진하다. 파우스타처럼 2세대, 3세대로 이어지는 트라우마의 대물림은 계속되고 있다. 더욱이 최근 페루의 정치 불안정은 과거 내전의 기억을 다시 불러일으킨다. 케이코 후지모리 같은 권위주의 정치인들은 여전히 '테러와의 전쟁' 프레임을 동원해 지지를 얻는다. 한편 젊은 세대는 부모 세대가 겪은 폭력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채, 역사를 단순화하려는 유혹에 빠진다.
빛나는 길이 남긴 가장 큰 상처는 공동체의 파괴였고, The Milk of Sorrow가 그리는 가장 아픈 장면은 고립된 개인의 모습이다. 파우스타가 결국 감자를 제거하고 어머니를 고향에 묻는 결말은 치유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하지만 그 치유는 개인적 차원에 머물 뿐, 사회적 화해는 요원해 보인다. 폭력의 기억은 어떻게 극복될 수 있을까? 침묵을 깨고 증언하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아니면 파우스타처럼 각자의 방식으로 상처와 화해하는 길을 찾아야 할까? 역사의 슬픔은 정말로 다음 세대에게 전염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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