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12월 29일, 23세의 아르헨티나 의대생 에르네스토 게바라는 친구 알베르토 그라나도와 함께 오토바이 '라 포데로사'에 올라탔다.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출발해 칠레, 페루, 콜롬비아, 베네수엘라까지 8개월간 1만 2천 킬로미터를 달릴 대장정의 시작이었다. 의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던 청년은 이 여행에서 남미 대륙의 참혹한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칠레의 구리 광산에서 만난 노동자들, 페루의 쿠스코에서 목격한 원주민들의 삶, 아마존 강변의 한센병 환자들. 이 만남들은 부르주아 청년을 혁명가 체 게바라로 변화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체 게바라의 남미 여행.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1950년대 초 남미는 극심한 빈부격차와 외국 자본의 착취, 독재 정권의 억압이 만연한 시대였다. 미국의 경제적 지배 아래 소수 엘리트가 부를 독점하고, 대다수 민중은 극빈층으로 전락해 있었다. 특히 원주민과 메스티소들은 식민지 시대부터 이어진 구조적 차별 속에서 인간 이하의 삶을 강요받았다. 게바라가 목격한 것은 단순한 가난이 아니라 체제적 불의였다. 페루의 한센병 환자촌에서 의료진과 환자를 가르는 아마존 강을 헤엄쳐 건너간 그의 행동은 계급과 인종의 장벽을 넘어서려는 상징적 제스처였다. 이 여행은 한 개인의 모험이 아닌, 라틴아메리카의 구조적 모순을 체험하는 정치적 각성의 여정이었다.
월터 살레스 감독의 The Motorcycle Diaries는 게바라의 여행 일기를 바탕으로 혁명가 이전의 인간적 면모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이 연기한 청년 게바라는 천식으로 고통받으면서도 모험을 갈망하는 낭만주의자다. 영화는 오토바이가 고장나고, 돈이 떨어지고, 배가 고픈 두 청년의 우스꽝스러운 에피소드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포착한다. 그러나 카메라가 담아내는 남미의 풍경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 아타카마 사막을 횡단하는 칠레 노동자 부부, 마추픽추의 폐허 속에 잠든 잉카 문명, 산 파블로 요양원의 한센병 환자들. 영화는 게바라의 시선을 통해 아름다운 자연과 참혹한 현실이 공존하는 대륙의 모순을 응시한다.
The Motorcycle Diaries (2004), 월터 살레스 감독. ⓒ Production Company
여행과 영화는 모두 '보는 것'에서 시작해 '느끼는 것'으로 나아간다. 게바라의 여행이 관광이 아닌 각성의 여정이 된 것은 그가 단순히 풍경을 감상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영화 역시 이국적 풍경을 소비하는 로드무비의 관습을 거부하고, 카메라를 통해 타자의 고통을 직시한다. 게바라가 한센병 환자들과 축구를 하고, 원주민 여인에게 천식약을 건네는 장면들은 동정이 아닌 연대의 몸짓이다. 살레스 감독은 이러한 만남의 순간들을 통해 혁명이 이념이 아닌 구체적 인간에 대한 사랑에서 시작됨을 보여준다. 결국 여행과 영화 모두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제안하는 매체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세계 곳곳의 풍경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지만, 정작 타인의 고통에는 무감각해졌다. 관광은 거대한 산업이 되었고, 여행은 소비의 한 형태로 전락했다. 그러나 팬데믹과 기후위기, 전쟁과 난민 문제는 우리가 하나로 연결된 세계에 살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70여 년 전 게바라가 목격한 불평등은 형태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디지털 격차, 백신 불평등, 기후 부정의는 21세기판 구조적 폭력이다. 진정한 여행은 낯선 곳으로의 이동이 아니라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과 세계를 새롭게 발견하는 것임을 게바라의 여정은 보여준다.
체 게바라는 훗날 쿠바 혁명의 영웅이 되었지만, 그 시작은 한 청년의 소박한 여행이었다. The Motorcycle Diaries는 위대한 사상이 일상적 경험에서 탄생함을 일깨운다. 영화의 마지막, 베네수엘라 공항에서 작별하는 두 친구의 모습은 쓸쓸하면서도 희망적이다. 그들은 각자의 길을 가지만, 함께 나눈 경험과 꿈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혁명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타인의 얼굴을 마주하는 용기일지 모른다. 당신은 마지막으로 누군가의 고통에 진심으로 공감한 것이 언제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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