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5월 1일, 일본 구마모토현 미나마타시의 한 병원에서 다섯 살 소녀가 경련과 언어장애 증상으로 입원했다. 이날은 훗날 '미나마타병 공식 발견일'로 기록된다. 칫소 공장이 바다에 방류한 메틸수은이 어패류를 통해 주민들의 몸에 축적되면서 시작된 비극이었다. 손발 저림에서 시작해 시야 협착, 청각 장애, 운동 실조로 이어지는 증상들은 수천 명의 삶을 파괴했다. 1968년 정부가 공해병으로 인정하기까지 12년, 그 긴 세월 동안 미나마타의 주민들은 질병과 편견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렸다.
일본 미나마타병.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미나마타병은 단순한 환경 재해가 아니었다. 전후 일본의 급속한 산업화가 낳은 구조적 폭력이었다. 칫소 공장은 1932년부터 수은을 사용했고, 1950년대 중반 이미 어패류 이상 현상이 보고됐지만 기업과 정부는 침묵했다. 경제성장이라는 대의 앞에서 어촌 마을 주민들의 고통은 철저히 외면당했다. 더 잔인했던 것은 피해자들을 '가짜 환자'로 몰아가며 보상을 회피하려 했던 기업의 태도였다. 진실을 은폐하려는 권력과 자본의 공모는 피해를 확산시켰고, 2세 피해자까지 양산하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2020년 개봉한 앤드루 레비타스 감독의 Minamata는 1971년 미나마타를 찾은 사진작가 유진 스미스의 실화를 다룬다. 조니 뎁이 연기한 스미스는 한때 라이프지를 주름잡던 거장이었지만, 당시엔 알코올에 의존하며 추락한 상태였다. 일본계 아내 아일린과 함께 미나마타에 도착한 그는 수은 중독으로 고통받는 주민들의 참상을 목격한다. 특히 선천적 장애를 안고 태어난 아이를 어머니가 목욕시키는 장면을 포착한 사진 '토모코를 목욕시키는 어머니'는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영화는 진실을 외면하는 거대 기업과 맞서는 스미스의 분투를 통해 저널리즘의 본질을 묻는다.
Minamata (2020), 앤드루 레비타스 감독. ⓒ Production Company
역사적 사건과 영화는 '증언'이라는 지점에서 만난다. 미나마타 주민들은 오랫동안 자신들의 고통을 세상에 알릴 방법이 없었다. 유진 스미스의 사진은 침묵을 강요당한 이들에게 목소리를 돌려주었다. 영화 속에서 스미스가 말하듯, 한 장의 사진이 전쟁을 끝낼 순 없지만 제대로 찍힌 사진은 대화를 시작하게 만든다. 실제로 그의 사진들은 국제사회의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일본 정부가 공해병을 인정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예술이 현실을 바꾸는 힘, 그것은 진실을 직시하고 기록하는 용기에서 나온다.
미나마타병 공식 발견으로부터 70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소송은 계속되고 있다. 2023년 오사카 지방재판소는 미인정 환자 128명에 대해 국가 책임을 인정했다. 한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가습기 살균제 참사 등 유사한 비극들이 반복되고 있다. 기업의 이윤 추구와 정부의 묵인, 그리고 희생되는 시민들이라는 구조는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영화가 보여준 1970년대 미나마타의 풍경이 낯설지 않은 이유다. 우리는 과거의 교훈을 제대로 배웠는가.
유진 스미스는 미나마타에서의 취재 중 칫소 직원들에게 폭행당해 한쪽 눈 시력을 거의 잃었다. 그럼에도 그는 촬영을 멈추지 않았다. 진실은 때로 위험하고, 정의는 대가를 요구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기록해야 하고, 누군가는 기억해야 한다. 미나마타의 비극은 단순히 일본의 과거가 아니다. 성장과 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자행되는 폭력은 지금도 어디선가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오늘의 미나마타를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훗날 누군가 우리 시대를 기록한다면,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남게 될까.

![[3월 2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역사적 사건과 영화는 '증언'이라는 지점에서 만난다](https://pltpjrfdfxxbnivrtoew.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films/minamata_backdrop.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