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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째주 · 2025
[3월 3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역사 속 난민 아동과 영화 속 자인은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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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역사 속 난민 아동과 영화 속 자인은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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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여름, 레바논 베이루트의 법정에서 12살 소년 자인 알 라피아가 증언대에 섰다. 시리아 난민 출신인 그는 부모를 고소했다. "왜 나를 낳았냐"는 것이 소송 이유였다. 출생증명서도 없이 태어나 거리에서 자란 이 소년의 이야기는 중동 난민 아동 수백만 명의 현실을 대변했다.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당시 레바논에만 150만 명의 시리아 난민이 거주했고, 그중 절반이 아동이었다. 자인처럼 법적 지위도, 교육 기회도 없이 유령처럼 존재하는 아이들이었다.

역사 사건

레바논 난민 아이의 삶.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레바논은 인구 대비 난민 수용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가다.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 이후, 작은 나라 레바논은 감당하기 어려운 난민 물결에 직면했다. 정부는 난민캠프 설치를 거부했고, 난민들은 도시 빈민가나 농촌 지역에 흩어져 살았다. 아동 노동, 조혼, 인신매매가 일상이 되었다. 국제사회의 지원은 턱없이 부족했고, 레바논 경제마저 붕괴 직전이었다. 난민 아동들은 이중, 삼중의 소외를 겪으며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

나딘 라바키 감독의 Capernaum은 바로 이 현실을 스크린에 옮긴 작품이다. 영화는 12살 자인이 부모를 고소하는 법정 장면으로 시작해, 플래시백으로 그의 삶을 따라간다. 전문 배우가 아닌 실제 난민 출신 자인 알 라피아가 주연을 맡아 압도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불법 체류 에티오피아 여성과 그녀의 아기를 돌보며 거리를 떠도는 자인의 모습은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경계를 허문다.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관객을 불편하게 만드는 날것의 진실로 가득하다.

영화 스틸

Capernaum (2018), 나딘 라바키 감독. ⓒ Production Company

역사 속 난민 아동과 영화 속 자인은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 둘 다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가족마저 생존 앞에서 무력하다. 자인이 동생 사하르의 조혼을 막지 못하는 장면은 레바논 난민캠프의 일상적 비극을 그대로 반영한다. 영화가 포착한 것은 단순한 빈곤이 아니라 구조적 폭력이다. 출생등록조차 되지 않아 학교도, 병원도 갈 수 없는 아이들. 부모의 사랑조차 생존의 무게 앞에 질식하는 현실. 라바키 감독은 이를 감상적 연민이 아닌 차가운 시선으로 담아낸다.

2025년 현재,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또 다른 자인들이 태어나고 있다.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우크라이나, 수단에서도 마찬가지다. 유엔은 전 세계 난민 수가 1억 명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그중 40%가 18세 미만 아동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 거주 난민 아동은 3천 명을 넘었지만, 이들 대부분은 교육권을 보장받지 못한다. 우리는 여전히 이 아이들을 '문제'로만 인식할 뿐, 같은 인간으로 보지 못한다.

자인은 영화 마지막에 처음으로 웃는다. 신분증을 받고 사진을 찍는 순간이다. 존재를 인정받은 기쁨이 얼굴에 번진다. 하지만 현실의 수많은 자인들은 여전히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난민을 숫자로만 세고, 부담으로만 계산한다. 하지만 그들도 꿈꾸고, 사랑하고, 미래를 그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이다. 라바키 감독이 던진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왜 아이들을 이 세상에 데려온 뒤 방치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정말로 그들과 다른 존재인가?

공식 예고편

Capernaum (2018) — 나딘 라바키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