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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째주 · 2025
[4월 1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고바디는 스펙터클한 비극 대신 일상의 절망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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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고바디는 스펙터클한 비극 대신 일상의 절망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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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3월 16일, 이라크 북부 할라브자에서 인류 역사상 최악의 화학무기 공격이 발생했다. 사담 후세인 정권은 쿠르드족 5000여 명을 독가스로 학살했고, 생존자들은 평생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이 비극은 '안팔 작전'의 일부였다. 1986년부터 1989년까지 이라크 정부는 쿠르드족 18만 명을 조직적으로 살해했다. 할라브자의 생존자 아미나는 "새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아이들이 웃다가 숨을 거두었다"고 증언했다. 국제사회는 침묵했고, 쿠르드족은 다시 한번 역사의 고아가 되었다.

역사 사건

쿠르드족 탄압.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쿠르드족은 '국가 없는 최대 민족'이다. 3000만 명이 터키, 이라크, 이란, 시리아에 흩어져 살지만,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각국 정부는 쿠르드족의 독립 열망을 위협으로 간주했다. 터키는 쿠르드어 사용을 금지했고, 이라크는 강제이주를 시행했다. 시리아는 시민권을 박탈했고, 이란은 문화적 정체성을 억압했다. 냉전 시대 강대국들은 지정학적 이익에 따라 쿠르드족을 이용했다가 버렸다. 1975년 미국은 이란의 요청으로 쿠르드 반군 지원을 중단했고,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 키신저는 "비밀작전은 자선사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바흐만 고바디 감독의 A Time for Drunken Horses는 이란-이라크 국경 쿠르드족 마을의 참혹한 현실을 그린다. 12살 아유브는 장애를 가진 남동생 마디를 돌보며 살아간다. 의사는 마디가 수술받지 않으면 곧 죽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아유브는 동생을 살리기 위해 지뢰밭을 넘어 밀수를 시작한다. 영화는 아이들의 고단한 일상을 담담하게 따라간다. 눈 덮인 산길에서 노새에 타이어를 매달고 국경을 넘는 장면은 숨막힌다. 비전문 배우들의 연기는 다큐멘터리처럼 생생하다. 특히 마디 역의 아메드 바흐르미의 눈빛은 관객의 가슴을 찢는다.

영화 스틸

A Time for Drunken Horses (2000), 바흐만 고바디 감독. ⓒ Production Company

할라브자 학살과 고바디의 영화는 쿠르드족이 겪는 구조적 폭력을 다른 방식으로 보여준다. 화학무기는 즉각적인 죽음을 가져왔지만, 국경의 분단은 느린 죽음을 강요한다. 영화 속 아이들은 학교 대신 밀수 현장으로 향하고, 병원 대신 주술사를 찾는다. 이들에게 국경은 생존을 위해 넘어야 할 장애물이자, 가족을 갈라놓는 철조망이다. 고바디는 스펙터클한 비극 대신 일상의 절망을 선택했다. 폭탄이 터지지 않아도, 아이들은 매일 죽어간다. 이 조용한 학살은 할라브자만큼이나 잔인하다.

2025년 현재도 쿠르드족의 운명은 나아지지 않았다. 시리아 내전에서 ISIS와 싸운 쿠르드 전사들은 또다시 배신당했다. 터키는 여전히 PKK를 테러조직으로 규정하고 공습을 계속한다. 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는 내부 분열로 신음한다. 기후변화로 가뭄이 심화되면서 쿠르드 지역의 농업은 붕괴 직전이다. 젊은이들은 유럽으로 탈출을 꿈꾸지만, 지중해에서 익사하거나 난민캠프에 갇힌다. 국제사회는 여전히 쿠르드 문제를 외면한다. 석유 파이프라인과 무기 거래가 인권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고바디의 카메라가 포착한 것은 특정 시대의 비극이 아니라 쿠르드족의 영원한 현재다. 영화 속 아유브처럼 오늘도 수많은 쿠르드 아이들이 국경을 넘는다. 그들은 밀수품 대신 희망을 등에 지고 있을까, 아니면 절망을 끌고 있을까? 할라브자의 독가스는 사라졌지만, 무관심이라는 독가스는 여전히 쿠르드족을 질식시킨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들의 비명을 못 들은 척할 것인가? 국가를 가진 우리가 국가 없는 이들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을까? 아니면 우리도 언젠가는 국경 앞에서 말을 잃은 난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공식 예고편

A Time for Drunken Horses (2000) — 바흐만 고바디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