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12월 2일, 콜롬비아 메데인의 한 주택가 지붕 위에서 총성이 울렸다. 44세의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경찰의 총탄에 쓰러진 순간이었다. 한때 세계 코카인 거래의 80%를 장악했던 남자, 포브스지가 선정한 세계 7대 부호였던 그의 최후는 너무나 초라했다. 메데인 카르텔의 수장으로서 그는 15년간 콜롬비아를 공포로 지배했다. 정치인 암살, 여객기 폭파, 법원 폭탄 테러 등 그가 저지른 범죄로 2만 5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빈민가 사람들에게 그는 여전히 '로빈 후드'였다. 500개의 축구장을 지어주고, 5천 채의 집을 무상으로 제공한 은인이었기 때문이다.
콜롬비아 마약왕 에스코바르.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에스코바르의 부상은 1970년대 후반 미국의 코카인 수요 폭증과 맞물려 있었다. 콜롬비아의 지리적 위치는 코카 재배지인 볼리비아, 페루와 최대 소비지인 미국을 연결하는 최적의 통로였다. 그는 이 구조적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뇌물과 협박으로 정치권을 장악하고, 'plata o plomo'(은이냐 납탄이냐)라는 선택지로 모든 반대를 무력화했다. 1980년대 콜롬비아는 사실상 마약 카르텔이 지배하는 나라가 되었다. 정부는 무력했고, 사법부는 마비되었으며, 언론은 침묵했다. 에스코바르는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했고, 그 왕국의 법칙은 오직 하나였다. 돈과 폭력이었다.
2017년 개봉한 Loving Pablo는 에스코바르의 삶을 그의 연인이었던 저널리스트 비르히니아 발레호의 시선으로 재구성한다. 페르난도 레온 데 아라노아 감독은 권력의 정점에서 몰락까지, 한 남자의 파멸적 여정을 차분하게 추적한다. 하비에르 바르뎀은 에스코바르의 카리스마와 잔혹성을 동시에 체화하며, 페넬로페 크루스는 발레호 역을 통해 권력에 매혹되면서도 두려워하는 복잡한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한다. 영화는 1980년대 콜롬비아의 혼돈을 배경으로, 사랑과 권력, 야망과 파멸이 얽힌 비극적 서사를 펼쳐낸다. 에스코바르와 발레호의 관계는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 권력이 인간관계를 어떻게 왜곡시키는지를 보여주는 알레고리가 된다.
Loving Pablo (2017), 페르난도 레온 데 아라노아 감독. ⓒ Production Company
영화와 역사적 현실 모두에서 에스코바르는 이중적 존재다. 빈민에게는 구원자, 국가에게는 테러리스트, 연인에게는 열정적인 남자이면서 동시에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모순은 단순히 개인의 성격적 특징이 아니라, 극단적 불평등 사회가 낳은 구조적 산물이었다. 콜롬비아의 빈부격차, 미국의 마약 수요, 냉전 시대의 정치적 혼란이 만들어낸 공백을 에스코바르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채워나갔다. 영화는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서사 속에 녹여내면서, 권력의 본질과 그것이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탐구한다. 발레호의 시선을 통해 우리는 괴물이 되어가는 한 남자의 변화를 목격하게 된다.
에스코바르가 죽은 지 30년이 넘었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여전히 라틴아메리카를 떠돈다. 멕시코의 카르텔들은 그의 전략을 계승했고, 중앙아메리카의 폭력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마약 전쟁은 형태만 바뀌었을 뿐 끝나지 않았다. 더 나아가 에스코바르 현상은 현대 자본주의의 어두운 그림자를 보여준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돈이 모든 가치를 압도하는 시대. 그의 이야기는 과거의 일화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영화가 보여주듯, 권력에 대한 욕망과 그것이 가져오는 파멸의 메커니즘은 시대를 초월한다. 우리 시대에도 에스코바르는 다른 얼굴로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에스코바르의 삶과 죽음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무거우면서도 현재적이다. 극단적 불평등이 만들어내는 폭력의 순환을 어떻게 끊을 것인가. 합법적 권력과 불법적 권력의 경계는 정말 명확한가.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왜 여전히 이런 어둠의 권력자들에게 매혹되는가. Loving Pablo는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한 여인의 눈을 통해, 권력이 사랑마저도 파괴하는 과정을 담담히 보여줄 뿐이다. 어쩌면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에스코바르 같은 괴물이 아니라, 그런 괴물을 탄생시키고 용인하는 우리 자신의 욕망과 무관심인지도 모른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4월 4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영화와 역사적 현실 모두에서 에스코바르는 이중적 존재다](https://pltpjrfdfxxbnivrtoew.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films/loving_pablo_backdrop.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