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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째주 · 2025
[5월 2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그러나 새로운 형태의 억압과 불평등이 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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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그러나 새로운 형태의 억압과 불평등이 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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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21일, 김사복이라는 평범한 택시기사가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를 태우고 광주로 향했다. 전남도청 앞에서 펼쳐진 참혹한 광경을 목격한 그는 단순한 운전기사에서 역사의 증인으로 변모했다. 계엄군의 총칼 앞에 쓰러져가는 시민들, 피로 물든 금남로, 그리고 진실을 알리려는 외국 기자의 절박함. 김사복은 목숨을 걸고 힌츠페터가 찍은 필름을 서울까지 무사히 운반했다. 그의 낡은 택시는 민주화의 불씨를 품은 성화봉송 주자였고, 그가 운전한 길은 한국 민주주의가 걸어온 험난한 여정의 축약판이었다.

역사 사건

한국 택시기사와 민주화.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광주의 진실이 세계에 알려진 후에도 한국의 민주화는 더딘 걸음을 걸었다. 전두환 정권은 언론을 통제하고 시민사회를 억압했으며, 광주를 폭도들의 난동으로 왜곡했다. 그러나 김사복 같은 평범한 시민들의 용기는 계속 이어졌다. 택시기사들은 손님들에게 은밀히 진실을 전했고, 대학생들은 금서를 돌려 읽었으며, 종교인들은 미사와 법회에서 민주화를 기도했다. 1987년까지 이어진 이 기나긴 싸움은 결국 6월 항쟁으로 폭발했다. 넥타이 부대로 상징되는 중산층까지 거리로 나선 그날, 한국의 민주주의는 되돌릴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장준환 감독의 1987: When the Day Comes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서 6월 항쟁까지의 과정을 치밀하게 재현한다. 김윤석이 연기한 박처원 치안본부장의 은폐 시도, 하정우가 맡은 검사 최환의 고뇌, 그리고 유해진이 그려낸 교도관 한병용의 양심선언까지. 영화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을 개인의 선택과 용기의 연쇄로 풀어낸다. 특히 설경구가 연기한 이부영 기자의 취재 과정은 언론이 권력의 시녀가 아닌 진실의 파수꾼이 되는 순간을 생생히 보여준다.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거짓말이 무너지는 순간, 관객은 1987년 그날의 분노와 희망을 동시에 체험한다.

영화 스틸

1987: When the Day Comes (2017), 장준환 감독. ⓒ Production Company

김사복의 택시와 박종철의 죽음은 평범한 시민이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순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닮았다. 1980년의 택시기사가 광주의 진실을 세상에 알렸다면, 1987년의 교도관과 의사들은 고문의 진실을 폭로했다. 두 사건 모두 거대한 국가권력에 맞선 개인의 양심이 민주주의의 초석이 되었음을 증명한다. 영화 속 인물들이 보여준 연대와 용기는 김사복이 보여준 그것과 다르지 않다. 진실을 향한 열망, 불의에 대한 분노,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희생. 이것이 한국 민주화 운동의 본질이었다.

2025년 현재, 우리는 김사복과 박종철이 꿈꾸던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형태의 억압과 불평등이 등장하고 있다. 디지털 감시, 알고리즘에 의한 여론 조작, 그리고 경제적 양극화는 21세기형 독재의 얼굴이다. 택시기사가 외국 기자를 도왔듯, 오늘날 시민들은 내부고발자와 독립언론을 보호해야 한다. 교도관이 양심선언을 했듯, 우리도 일상에서 마주하는 부정의에 침묵하지 말아야 한다. 민주주의는 완성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이며, 각 세대가 새롭게 쟁취해야 할 가치다.

김사복의 택시는 이제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 박종철이 숨진 남영동 대공분실은 인권기념관이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남긴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택시는 무엇인가? 우리가 운반해야 할 진실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어떤 역사의 증인이 될 것인가? 1987이 보여준 것처럼, 역사는 영웅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용기로 쓰인다. 당신의 택시는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공식 예고편

1987: When the Day Comes (2017) — 장준환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