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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째주 · 2025
[6월 2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문화대혁명과 To Live는 놀라울 정도로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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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문화대혁명과 To Live는 놀라울 정도로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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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8월 18일, 베이징 천안문 광장. 백만 명의 홍위병이 모택동의 연설에 열광하며 '구사상, 구문화, 구풍속, 구습관'을 타파하자고 외쳤다. 문화대혁명의 광풍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이후 10년간 중국은 혼돈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지식인들은 '우파분자'로 낙인찍혀 농촌으로 하방되었고, 자식이 부모를 고발하는 비극이 일상이 되었다. 류사오치, 펑더화이 같은 고위 간부들조차 숙청을 피하지 못했다. 역사학자 양지셩의 추산에 따르면, 이 기간 동안 최소 172만 명이 비정상적인 죽음을 맞았다. 그러나 더 큰 비극은 살아남은 자들의 상처였다. 그들은 인간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살아남아야 했다.

역사 사건

중국 문화대혁명 생존.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문화대혁명은 단순한 정치 운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중국 사회의 모든 전통적 가치를 뒤집는 거대한 실험이었다. 모택동은 '계속혁명론'을 내세워 기존 체제를 끊임없이 파괴하고자 했다. 공자의 사당이 불탔고, 경극 배우들은 '봉건 잔재'라는 죄목으로 탄압받았다. 대학은 문을 닫았고, 교수들은 '소꼬리'를 잡는다는 명목으로 자아비판 대회에 끌려갔다. 이 광기의 시대에 평범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그들은 침묵하고, 순응하고, 때로는 가해자가 되어야 했다. 생존 자체가 도덕적 딜레마였던 시대, 인간다움을 지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했을까?

장이머우 감독의 1994년 작품 To Live는 바로 이 질문에 답한다. 영화는 1940년대부터 문화대혁명기까지 중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려낸다. 도박으로 전 재산을 잃은 푸구이(거유 분)와 그의 아내 자전(공리 분)은 격변의 시대를 견뎌낸다. 국공내전,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파도 속에서 그들은 자식을 잃고, 친구를 배신하고, 때로는 비굴하게 살아간다. 그러나 장이머우는 이들을 단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림자극이라는 전통 예술을 통해 삶을 지속하는 푸구이의 모습에서, 극한 상황에서도 인간성을 포기하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의 위대함을 발견한다.

영화 스틸

To Live (1994), 장이머우 감독. ⓒ Production Company

문화대혁명과 To Live는 놀라울 정도로 닮아있다. 둘 다 이데올로기가 개인의 삶을 짓밟는 과정을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 푸구이의 아들은 대약진운동 중 헌혈 과다로 죽고, 딸은 문화대혁명 중 의료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이는 실제 역사에서 수많은 중국인이 겪은 비극의 축소판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유사점은 생존의 방식에 있다. 문화대혁명기의 중국인들처럼, 푸구이 가족도 시대의 요구에 순응하며 살아간다. 그들은 거창한 저항을 하지 않는다. 다만 먹고, 자고, 아이를 낳고, 그림자극을 하며 일상을 지속할 뿐이다. 이 소박한 지속이야말로 가장 근본적인 저항이었다.

2025년 현재, 우리는 다시 이데올로기의 시대를 살고 있다. 좌우의 극단적 대립, 세대 간 갈등, 국가 간 패권 경쟁이 개인의 삶을 압도한다. 소셜미디어는 새로운 형태의 자아비판 대회가 되었고, 취소 문화는 현대판 홍위병처럼 작동한다. 우리는 문화대혁명만큼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여전히 거대한 힘 앞에서 무력한 개인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To Live의 푸구이처럼 그저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답일까? 아니면 더 적극적인 저항이 필요할까? 역사는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생존 그 자체가 때로는 가장 위대한 승리일 수 있음을 보여줄 뿐이다.

문화대혁명을 겪은 세대는 이제 노년에 접어들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은 여전히 그 시절을 말하기를 꺼린다. 트라우마가 너무 깊기 때문이다. 그러나 To Live는 말한다. 살아남은 것 자체가 증언이라고. 푸구이가 손자와 함께 병아리를 키우며 "병아리가 자라면 거위가 되고, 거위가 자라면 소가 되고, 소가 자라면 공산주의가 된다"고 말하는 장면은 우스꽝스럽지만 감동적이다. 그것은 미래에 대한 소박한 희망이자, 삶을 지속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우리는 모두 역사의 푸구이들이다. 거대한 힘 앞에서 무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존재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인간다움을 잃지 않으면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공식 예고편

To Live (1994) — 장이머우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