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3월 16일, 베트남 꽝응아이성의 미라이 마을. 윌리엄 칼리 중위가 이끄는 미군 찰리 중대가 이른 아침 마을로 진입했다. 베트콩 게릴라를 소탕한다는 명목이었지만, 그들이 마주한 것은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들이었다. 네 시간에 걸쳐 504명의 무고한 생명이 스러졌다. 노인과 여성,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휴 톰슨 준위가 헬기를 타고 현장에 도착해 학살을 저지하려 했지만, 이미 마을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이 사건은 1년 반 뒤 언론에 폭로되어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베트남전 전선의 도덕.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미라이 학살은 단순한 일탈이 아니었다. 그것은 베트남전의 구조적 모순이 빚어낸 필연적 비극이었다.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는 전쟁에서 미군은 점차 민간인과 게릴라를 구분하지 못하게 되었다. '프리 파이어 존'이라는 이름으로 마을 전체가 적으로 간주되었고, 'body count'라는 성과 지표가 살육을 부추겼다. 상부의 압박과 현장의 공포가 뒤엉켜 도덕의 경계는 무너졌다. 전쟁은 인간을 야수로 만들었고, 그 야수성은 시스템에 의해 정당화되었다.
올리버 스톤 감독의 Platoon은 베트남전의 이런 도덕적 혼란을 정면으로 다룬다. 1967년 캄보디아 국경 지대, 신참 병사 크리스 테일러(찰리 신)가 배치된 소대는 두 명의 상사로 나뉘어 있다. 인간성을 지키려는 엘리아스 상사(윌렘 대포)와 전쟁의 광기에 물든 반스 상사(톰 베린저). 영화는 한 마을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 장면을 통해 전쟁이 인간의 영혼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보여준다. 스톤 자신의 베트남전 경험이 녹아든 이 작품은 전쟁의 추상적 대의가 아닌 구체적 공포와 타락을 그린다.
Platoon (1986), 올리버 스톤 감독. ⓒ Production Company
미라이와 Platoon의 마을은 놀랍도록 닮아있다. 두 곳 모두에서 공포에 질린 병사들은 민간인을 적으로 몰아간다. 상관의 명령과 개인의 양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두 사건이 보여주는 구조적 유사성이다. 전쟁은 선악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고, 생존의 논리가 도덕을 압도하게 한다. 미라이의 칼리 중위와 Platoon의 반스 상사는 모두 시스템이 만들어낸 괴물들이다. 그들은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전쟁이라는 거대한 기계의 희생자이기도 하다.
베트남전이 끝난 지 50년이 지났지만, 전쟁과 도덕의 문제는 여전히 우리를 괴롭힌다. 이라크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그리고 지금 우크라이나에서도 민간인의 희생은 계속되고 있다. 드론과 정밀 유도 무기가 등장했지만, 전쟁의 본질적 딜레마는 변하지 않았다. 적과 아군을 구분하기 어려운 전장에서 인간성을 지킨다는 것은 여전히 지난한 과제다. 기술은 발전했지만, 전쟁이 인간의 영혼에 가하는 상처는 그대로다.
미라이 학살을 폭로한 기자 시모어 허쉬는 "전쟁에서 첫 번째 희생자는 진실"이라고 했다. 그러나 어쩌면 첫 번째 희생자는 우리의 인간성일지도 모른다. Platoon의 크리스가 영화 끝에서 고백하듯, 전쟁에서 우리는 적이 아니라 우리 자신과 싸운다. 그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은 가능한가? 아니면 우리는 전쟁이 존재하는 한 계속해서 우리 안의 어둠과 마주해야 하는가? 역사는 반복되고, 영화는 그 반복을 기록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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