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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째주 · 2025
[7월 3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영화와 역사는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구조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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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영화와 역사는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구조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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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7월 19일, 중앙아메리카의 작은 나라 니카라과에서 역사적인 순간이 도래했다. 42년간 철권통치를 이어온 소모사 가문의 독재정권이 마침내 무너진 것이다. 수도 마나과로 입성하는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FSLN)의 게릴라들은 붉은 띠와 검은 띠를 두른 채 환호하는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데바일레는 이틀 전 미국으로 망명했고, 그의 국가경비대는 와해되었다. 1930년대부터 시작된 소모사 왕조의 종말이었다. 젊은 혁명가들은 아우구스토 산디노의 이름을 외치며 새로운 니카라과를 약속했다.

역사 사건

니카라과 산디니스타 혁명.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산디니스타 혁명은 단순한 정권 교체가 아니었다. 이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쿠바 혁명 이후 가장 중요한 사회변혁 운동이었다. 소모사 정권은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국가 자원을 착취하고 민중을 탄압했다. 1972년 마나과 대지진 당시 국제 원조금을 횡령한 사건은 중산층마저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카를로스 폰세카, 토마스 보르헤, 다니엘 오르테가 같은 산디니스타 지도자들은 도시와 농촌을 넘나들며 광범위한 연합전선을 구축했다. 카톨릭 사제들까지 해방신학의 이름으로 혁명에 동참했다. 냉전의 최전선에서 벌어진 이 혁명은 미국의 뒤뜰에서 일어난 반란이었다.

로저 스포티스우드 감독의 Under Fire는 바로 이 격동의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닉 놀테가 연기한 종군기자 러셀 프라이스는 1979년 니카라과에 도착해 혁명의 마지막 순간들을 카메라에 담는다. 진 해크먼의 알렉스 그레이저, 조안나 캐시디의 클레어 스트라이더와 함께 그는 전쟁의 참상과 혁명의 열기를 목격한다. 영화는 서구 언론인의 시선으로 제3세계 혁명을 바라보는 복잡한 윤리적 딜레마를 탐구한다. 특히 러셀이 죽은 게릴라 지도자를 살아있는 것처럼 촬영하는 장면은 진실과 대의, 저널리즘과 정치적 신념 사이의 긴장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영화 스틸

Under Fire (1983), 로저 스포티스우드 감독. ⓒ Production Company

영화와 역사는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구조를 지닌다. 실제 산디니스타 혁명에서도 국제 언론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ABC 기자 빌 스튜어트가 소모사 군에 의해 살해되는 장면이 전 세계에 방영되면서 국제여론은 급격히 혁명군 쪽으로 기울었다. Under Fire의 러셀처럼 많은 종군기자들은 단순한 관찰자를 넘어 역사의 증인이자 때로는 참여자가 되었다. 영화는 이런 경계의 모호함을 정직하게 드러낸다. 혁명의 대의와 저널리즘의 객관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들은 실제 역사 속 딜레마를 체현한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 니카라과는 또 다른 권위주의의 그림자 아래 있다. 한때 혁명의 영웅이었던 다니엘 오르테가는 이제 새로운 독재자가 되었다. 2018년 시민 봉기를 무력으로 진압하며 수백 명을 희생시킨 그의 정권은 과거 소모사 정권을 연상케 한다. 혁명의 이상은 어디로 갔을까. Under Fire가 제기한 질문들은 여전히 유효하다. 진실을 기록하는 것과 역사를 만드는 것 사이의 긴장, 외부자의 시선과 내부자의 경험 사이의 간극은 오늘날 소셜미디어 시대에도 계속된다.

역사는 종종 아이러니로 가득하다. 자유와 정의를 외치며 독재를 무너뜨린 이들이 새로운 억압자가 되는 악순환. Under Fire의 러셀이 렌즈를 통해 포착한 것은 혁명의 순간만이 아니라 인간 조건의 모순이었다. 우리는 여전히 묻는다. 이상을 위해 진실을 왜곡할 수 있을까? 정의를 위한 폭력은 정당화될 수 있을까? 그리고 가장 근본적으로, 인간은 권력 앞에서 왜 이토록 취약한가? 니카라과의 비극은 계속되고, 이 질문들은 여전히 우리를 향해 있다.

공식 예고편

Under Fire (1983) — 로저 스포티스우드 감독.